지느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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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지느러미

0 개 1,456 박건호
1. 나는 몇몇 여자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야한다. 허세, 조작, 이기가 엉켜서 나 스스로도 통제 못하던 때가 있었다. 나를 연출하는 것은 나의 처세가 되었었고 그것이 연애에도 적용되기도 했다. 사회에서의 정치적으로는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진심마저 처세로 대해 버렸던 나의 모습이 가끔은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차가움과 뜨거움을 번갈아 오가던 말도 안되는, 훗날 사과조차 못할 연애들이 살인자의 노래처럼 내 귀를 울린다.
 
2. <Gravity>를 보았다. 내가 본 헐리우드 영화 중 가장 고독한 블록버스터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3D 안경 너머로 눈물을 흘렸다. 우주에 홀로 버려진 그 영상들. 살려고 어떻게든 발버둥치는 모습은 실상 우주를 배경으로 한 지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 방도, 내 머릿속도 하나의 우주가 아닌가. 결국 외부에서 오는 시련들을 맞아가며 살아내려 버티고, 소중한 인연들을 생각하고, 죽기를 결심하고... 우주선 유리창의 균열은 내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다. 고독은 영화에서의 롱테이크처럼 지루할 듯 지루하지 않을 듯한 인생처럼 끊임없이 순환된다. 반짝이는 별들이 무섭다. 그런 아름다운 것들이 고독을 비출 때, 그것은 가까운 미래의 비참한 외로움을 예견하는 빛이 되어버린다. 아름다운 것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들 틈 속의 나를 견딜 수 없다. 내게는 그런 중력의 영화였다.
 
3. 혼자 있을 때의 나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안달이고,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의 나는 어떻게든 숨고 싶어 안달이다. 이 두 가지의 모순 속에 내가 우두커니 서 있다고 느껴질 때, 나는 사라져 버려야 한다. 숨는 것이 아니라 나조차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사라져 버려야만 한다. 곧은 마음과 비틀어진 마음들 그 자체를 멍하게 쳐다보고 앉아있어야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와 세상 모두를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나의 숙명처럼,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를 감싸 쥐고 있었다.
 
4. 낯선 곳이 두렵지 않다. 난 어디를 가도 내 공간이라고 정확하고 명백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집을 내 공간으로 만들려고 애쓴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내게는 낯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디를 가든 낯선 곳이라고 느끼는 버릇이 생긴 이유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뭔가 행동을 할 때도 아, 이렇게 살다가도 갑자기 차가 날 치인다거나, 내가 넘어졌는데 머리부터 넘어진다거나, 해서 굉장히 허무하고 우스꽝스럽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지구는 다음 일을 알 수 없는 허무한 찰나들로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그 허무가 내겐 낯설다. 즐겁게 웃다가 죽는다면 죽는 순간에도 행복할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우습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공포와 허무에 대한 방어는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계속해서 낯설어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은 확실히 있다. 고로 나는 낯선 시간 그 자체가 되고 싶다.
 
5. 지느러미의 날이 곧게 서 있는 생선 한 토막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물고기들을 실고 가던 트럭의 틈에서 떨어진 듯, 한 낮의 검은 아스팔트 위에 청명한 비늘을 드리우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팔락이는 지느러미의 의미를, 나는 눈으로 열심히 좇고 있었다. 그 생선은 바다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트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혹은 그저 생존을 목적으로 목적지 없는 지느러미를 그렇게도 까딱였던 걸까.

화이

댓글 0 | 조회 2,326 | 2014.02.25
영화 <화이>. 다섯 명의 아빠 중 한 명인 석태가 아들 화이에게 말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거라. 괴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은 순수성의 증… 더보기

서바이벌

댓글 0 | 조회 1,726 | 2014.02.12
지금은 묻혀버렸지만, 작년 11월쯤 한국의 엠넷에서 작곡가 서바이벌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다. 티비를 안 보아서 홍보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4회 만에 … 더보기

한국에서

댓글 0 | 조회 1,764 | 2014.01.30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산스럽지만 깔끔한, 이용자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든 회색빛의 거대한 이동체. 사람들은 세포처럼 … 더보기

모자이크(Ⅲ)

댓글 0 | 조회 1,825 | 2013.12.24
호텔의 방. 창가 태양의 광선이 대기를 통과하고, 산란된 빛의 파장은 곧게 흩어져 호텔의 창가에 곱게 내려앉아있다. 먼지들이 빛의 언저리를 떠돌고, 창틀에 반쯤 … 더보기

모자이크(Ⅱ)

댓글 0 | 조회 1,232 | 2013.11.27
호텔 앞의 해변 아침에 일어나 담배 연기같은 차가운 태양이 빛나는 바다를 보았다. 빨간 투명함이 내리쬐는 백사장엔 무덤 하나가 있었고 그 위의 크림빛 소녀는 고개… 더보기

모자이크(Ⅰ)

댓글 0 | 조회 1,257 | 2013.11.12
호텔의 1층 아무도 없는 호텔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20세기 초의 미국. 시간에 엑스레이를 찍는 직업이 있었다. 소들과, 알 수 없는 짐승의 먼지 쌓인 뼈들을 … 더보기

현재 지느러미

댓글 0 | 조회 1,457 | 2013.10.22
1. 나는 몇몇 여자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야한다. 허세, 조작, 이기가 엉켜서 나 스스로도 통제 못하던 때가 있었다. 나를 연출하는 것은 나의 처세가 되었었… 더보기

피곤한 고양이

댓글 0 | 조회 1,703 | 2013.10.08
영화학과 출신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학시절, 학과 공부는 잘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영화와 관련된 종합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편협하긴 해도- 나름대로 공부… 더보기

칼럼

댓글 0 | 조회 1,714 | 2013.09.24
칼럼. 칼럼이란 것을 쓴 지 1년이 되었다. 그 뜻은 내가 여기 온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뜻일 것이다. 2012년 6월 초순,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로 뉴질랜드로… 더보기

이사

댓글 0 | 조회 1,903 | 2013.09.10
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 더보기

Boy A

댓글 0 | 조회 1,399 | 2013.08.28
초록빛 눈이 오는 날이다. 회개하기 위하여 떠나기가 쉽지가 않아 흔들흔들거린다. 너를 떠날 수 있는 날, 그리하여 다시 너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년은 늘 … 더보기

너의 스위치였다

댓글 0 | 조회 1,651 | 2013.08.14
딸깍. 열리는 암실의 문. 외면하고 싶은 현실은 때때로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포착은 시간을 초월한 채 머리 한 켠에 걸어지는 … 더보기

카페

댓글 0 | 조회 1,985 | 2013.07.23
17살. 나는 카페에 자주 갔었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시절 이야기다. 가게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2층에 있었던 그… 더보기

풋내기의 솔직한 노래

댓글 0 | 조회 1,554 | 2013.07.09
예전부터 “왜 그렇게 사람이 빡빡해요?”라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팍팍하다는 말은 다양한 의미의 관용구로 해석될 수 있으나, 나의 경우에는 … 더보기

외롭고, 의존적인 사람들

댓글 0 | 조회 5,769 | 2013.06.26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보통 잠이 오지 않으면 가까운 바닷가로 나가 혼자 돌아다니다 오곤 한다. 핸드폰은 꺼두고 엠피쓰리만 켜두고 이곳저곳 쏘다닌다. 그런데 그것… 더보기

자기소개서

댓글 0 | 조회 1,553 | 2013.06.11
본의 아니게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도와주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대학원이 뭐하는 곳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충격적인 초고를 이메일로 … 더보기

생산자와 소비자의 시의성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1,419 | 2013.05.28
기차에서 피가 났다, 레일에서 피가 굉음을 내며 흐른다. 줄줄줄줄줄줄줄줄 흐른다 Medina의 You and I를 듣는다. I feel like. I’… 더보기

허세

댓글 0 | 조회 1,399 | 2013.05.14
내가 다녔던 대학교에는 커다란 잔디밭이 있었다. 오월의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광장이 가져다주는 어떤 암울한 느낌을 5월이라는 봄 냄새 가득한 단어로서 상… 더보기

음악시간

댓글 0 | 조회 1,453 | 2013.04.24
다음 주까지 각자 음악적인 재주 하나를 가져오면 되는거야. 중학교 시절, 미치광이로 유명했던 음악 선생이 말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어렵다며 불평불만, 투덜투… 더보기

얼굴

댓글 0 | 조회 1,358 | 2013.04.10
영화 <접속>, <공감>,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 수많은 애틋한 만남들과 우연을 가장한 필연과 미필적 대본 속 우연들이 교집… 더보기

소리

댓글 0 | 조회 1,438 | 2013.03.26
바람결에 흔들리는 투우사의 망토와도 같은, 서걱거리는 심장이 있었다. 영혼의 텍스트들이 두터운 긴장감으로 다다다다닥 머릿속을 훑어내고, 가느다란 담배연기가 시간 … 더보기

적과 빛

댓글 0 | 조회 1,246 | 2013.02.27
그 일은 2011년 3월 중순 너무도 갑작스레 일어났다. 일종의 컨설팅 회사가 내가 다니던 대학교를 한 번 다녀갔고, 이틀 뒤 한 강사 분이 우리에게 소식을 전해… 더보기

배탈

댓글 0 | 조회 1,498 | 2013.02.13
몇 년만에 아픈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심하게 아픈 것은 군대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지금이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3일 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보기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댓글 0 | 조회 1,493 | 2013.01.31
1.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찍은 단편영화: 늦어도 2월까지는 편집 완료! 2. 랭귀지 스쿨에서 한국말 가르치기: 교재 제작! 3. 정착: 워크비자 준비할 것! 4. … 더보기

크라이스트처치 기행 메모

댓글 0 | 조회 1,391 | 2013.01.15
1. 백패커. 나는 1층에 있었고 호주에서 왔다는 한국인은 2층에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고, 머리 위에 있는 할로겐 조명을 켠 채 노트북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