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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0 개 1,901 박건호
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그리고 저번 주 일요일, 약간 언성을 높여가며 싸웠고, 마지막에 깨달은 것은 “아, 얘들이 돈을 아끼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구나” 혹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게으르구나, 나도 옛날엔 저랬을까”라는 결론 아닌 결론이었다.
 
그들은 무척이나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금방 고쳐주겠다고 했다. 마치 방구석에서 컴퓨터만 하는 사람 취급을 하는 느낌이랄까(전혀 그렇지 않다) 나를 포함한 7명이 살고 있는 플랫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각자 애인이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여자아이는 남자친구 집에 가서 지내기에 거의 방에 없다시피 하고, 영국에서 온 여자는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질 않는다. 나머지 키위 네 명은 두 쌍의 커플로, 하루 종일 방에서 섹스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TV나 영화를 보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그 중의 하나인 사람들이다.
 
키위 중 한 명이 플랫의 대표격인데(인터넷 사용료가 많이 나왔다며 월 초에 아무 상의도 하지 않은 채 기계를 치웠던 녀석이다) 인터넷을 고쳐보자고 제안하는 내게 그가 물었다. 너 게임하니? 아니 난 게임은 전혀 안 해. 그런데 왜 필요한 거야? 인터넷은 내게 일종의 학교 같은 거라서, 이것저것 배우고 자료도 찾아봐야 돼. 음.. 그냥 핸드폰으로 해, 난 인터넷 안 필요하고, 필요하면 대학교 도서관에 가면 할 수 있거든.

참 이기적이고 불쌍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다른 키위들은 이렇지 않다) 인터넷을 생산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생각은 전혀 못 하는 것이다. 오로지 그들에게는 소비의 엔터테인먼트일 뿐. 즉 그래서, 그들의 하루일과는 보통 이러하다. 밥먹기→학교→집→밥먹기→알바하는 여자친구 데리러 가기→ 여자친구 데리러 갔다온 후 방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소리 죽여 섹스하기→밥먹기→TV시청 혹은 디브이디 시청→ 잠자기→ 반복, 가끔 장보기. 당연히 인터넷이 필요하지 않을 수밖에. 나도 미친놈 소리 들어가며 갖가지 연애에 열을 올린 적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단순하게는 살진 않았다. 저렇게 살 순 없었다.

싱가포르 여자아이가 이 플랫에 들어오기 전에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키위 한 명이 있었다. 확실히 나이가 조금 있고, 사회인이라 그런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게감이 있었다. 뭔가 고장나면 말없이 수리에 나서는, 플랫의 리더였다. 밤에 플랫이 시끄러우면 조용히 하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성격이었다.

그랬던 그가 나가고 난 뒤, 학생들만 있으니 집이 엉망이다. 오로지 조용한 것을 원하는 것은 나뿐인 것 같으니 혼자 시끄럽다고 말하기도 참 그렇다. 19-20살 밖에 안 된 녀석들한테 말해봤자지 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티 내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주당 125불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의 댓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을, 소가 여물 씹듯 습관적으로 우물우물 반복해서 씹어댔다.

이제 결국 나를 제외한 모두가 살벌하게 시끄러운 대학생인 지금, 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이사를 하기로 했다.(사실 이번 인터넷 사건을 통해 이들과 약간 다툰 후, 화해는 했지만 이미 정이 심하게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플랫엔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홈스테이에서 두 달을 살고, 이어 살게 된 이 방은 아는 한국인 형으로부터 인계받았던 것이라, 엄밀히 말해 내가 직접 방을 구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즉 뉴질랜드에 온 지 1년 여만에 내 손으로 집을 구하게 되었고, 운이 좋았는지 집은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것도 가격은 비슷하게, 하지만 아주 깔끔한 곳으로.

2006년쯤부터 지금까지 8번의 이사(아파트, 하숙, 기숙사, 원룸, 옥탑방, 오피스텔, 반지하 등등..)를 했다. 그리고 뉴질랜드 플랫. 7명(때로는 그 이상)의 공동생활은 군대를 제외하곤 처음이었고, 내 이사의 이력 중 사실상 가장 더러운 곳이었다. 나름대로는 잘 지냈지만, 처음 온 사람 모두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니”, 라는 표정을 짓는 곳이었다. 쥐가 방을 놀이터 삼고, 내 방엔 심지어 카펫도 없어서 페인트 묻은 나무바닥이 그대로 드러나고, 창틀은 오랜 세월에 지쳐 삐뚤어졌으며, 옷장은 경첩 몇 개가 이미 떨어져나가 닫으려면 약간의 노동이 필요하고, 바로 윗방이 화장실인지라 천장 구석마다 곰팡이가 조금씩 피어있는 곳이었다.
 
이 곳 플랫메이트들이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던지라 동네에 아무도 없었던 크리스마스에는 모두 모여 하루 종일 파티를 했고, 가끔씩 마당에 불을 피우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았다. 하지만 이 친구들과 함께 산다면 앞으로도 인터넷 등의 불상사가 계속 발생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발을 빼야 할 타이밍.

뉴질랜드에서의 1년. 삶의 질을 조금 높인다 생각하고 이제 투 룸의, 단 둘이 사는 널찍한 플랫으로 옮기게 된다. 뭔가 알맞은 리듬이라 생각하고 이삿짐의 마지막 박스를 소파 위에 올린다.

화이

댓글 0 | 조회 2,326 | 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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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댓글 0 | 조회 1,726 | 2014.02.12
지금은 묻혀버렸지만, 작년 11월쯤 한국의 엠넷에서 작곡가 서바이벌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다. 티비를 안 보아서 홍보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4회 만에 … 더보기

한국에서

댓글 0 | 조회 1,764 | 2014.01.30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산스럽지만 깔끔한, 이용자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든 회색빛의 거대한 이동체. 사람들은 세포처럼 … 더보기

모자이크(Ⅲ)

댓글 0 | 조회 1,824 | 2013.12.24
호텔의 방. 창가 태양의 광선이 대기를 통과하고, 산란된 빛의 파장은 곧게 흩어져 호텔의 창가에 곱게 내려앉아있다. 먼지들이 빛의 언저리를 떠돌고, 창틀에 반쯤 … 더보기

모자이크(Ⅱ)

댓글 0 | 조회 1,232 | 2013.11.27
호텔 앞의 해변 아침에 일어나 담배 연기같은 차가운 태양이 빛나는 바다를 보았다. 빨간 투명함이 내리쬐는 백사장엔 무덤 하나가 있었고 그 위의 크림빛 소녀는 고개… 더보기

모자이크(Ⅰ)

댓글 0 | 조회 1,257 | 2013.11.12
호텔의 1층 아무도 없는 호텔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20세기 초의 미국. 시간에 엑스레이를 찍는 직업이 있었다. 소들과, 알 수 없는 짐승의 먼지 쌓인 뼈들을 … 더보기

지느러미

댓글 0 | 조회 1,456 | 2013.10.22
1. 나는 몇몇 여자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야한다. 허세, 조작, 이기가 엉켜서 나 스스로도 통제 못하던 때가 있었다. 나를 연출하는 것은 나의 처세가 되었었… 더보기

피곤한 고양이

댓글 0 | 조회 1,703 | 2013.10.08
영화학과 출신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학시절, 학과 공부는 잘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영화와 관련된 종합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편협하긴 해도- 나름대로 공부… 더보기

칼럼

댓글 0 | 조회 1,714 | 2013.09.24
칼럼. 칼럼이란 것을 쓴 지 1년이 되었다. 그 뜻은 내가 여기 온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뜻일 것이다. 2012년 6월 초순,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로 뉴질랜드로… 더보기

현재 이사

댓글 0 | 조회 1,902 | 2013.09.10
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 더보기

Boy A

댓글 0 | 조회 1,399 | 2013.08.28
초록빛 눈이 오는 날이다. 회개하기 위하여 떠나기가 쉽지가 않아 흔들흔들거린다. 너를 떠날 수 있는 날, 그리하여 다시 너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년은 늘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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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651 | 2013.08.14
딸깍. 열리는 암실의 문. 외면하고 싶은 현실은 때때로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포착은 시간을 초월한 채 머리 한 켠에 걸어지는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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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985 | 2013.07.23
17살. 나는 카페에 자주 갔었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시절 이야기다. 가게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2층에 있었던 그… 더보기

풋내기의 솔직한 노래

댓글 0 | 조회 1,554 | 2013.07.09
예전부터 “왜 그렇게 사람이 빡빡해요?”라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팍팍하다는 말은 다양한 의미의 관용구로 해석될 수 있으나, 나의 경우에는 … 더보기

외롭고, 의존적인 사람들

댓글 0 | 조회 5,769 | 201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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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419 | 2013.05.28
기차에서 피가 났다, 레일에서 피가 굉음을 내며 흐른다. 줄줄줄줄줄줄줄줄 흐른다 Medina의 You and I를 듣는다. I feel like. I’…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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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까지 각자 음악적인 재주 하나를 가져오면 되는거야. 중학교 시절, 미치광이로 유명했던 음악 선생이 말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어렵다며 불평불만, 투덜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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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438 | 2013.03.26
바람결에 흔들리는 투우사의 망토와도 같은, 서걱거리는 심장이 있었다. 영혼의 텍스트들이 두터운 긴장감으로 다다다다닥 머릿속을 훑어내고, 가느다란 담배연기가 시간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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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246 | 201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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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탈

댓글 0 | 조회 1,498 | 2013.02.13
몇 년만에 아픈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심하게 아픈 것은 군대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지금이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3일 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보기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댓글 0 | 조회 1,493 | 2013.01.31
1.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찍은 단편영화: 늦어도 2월까지는 편집 완료! 2. 랭귀지 스쿨에서 한국말 가르치기: 교재 제작! 3. 정착: 워크비자 준비할 것! 4. … 더보기

크라이스트처치 기행 메모

댓글 0 | 조회 1,391 | 20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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