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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개 1,497 박건호
몇 년만에 아픈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심하게 아픈 것은 군대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지금이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3일 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굶고 있다. 뭐가 원인이었던 걸까.

내가 보기엔, 짬뽕이 원인이었다. 짬뽕탐험을 한답시고 버스를 타고 30분을 달려, 뉴질랜드에서 제일 맛있다는 짬뽕가게에 도착했다. 원래 그리 많이 먹진 못하지만, 그래도 짬뽕 정도는 곱빼기가 아니라면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중국인 종업원에게 어렵사리 주문을 마친 후, 테이블 위에 놓여지는 짬뽕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건 나로서는 거의 3인분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하지만 왜였을까. 예전 같으면 분명 많다고 남겼을 테지만, 15불에 이 정도면 정말이지 뉴질랜드 최고라고 외쳐버렸고, 입은 이미 벌겋게 물이 들어 있는 해물을 흡입하고 있었던 것(매운 것도 잘 못 먹는 주제에)이다. 그리고 하루의 잠복기(배탈 주제에 잠복은)를 거쳐 이틀째, 배를 잡고 뒹굴며 왜인지 모를 오한까지 겹쳐 부들부들 떠는 침대 위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엔, 짬뽕이 문제였다.

같이 사는 친구가 보기엔,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말했다. 최근에 내가 컷팅하는 닭고기의 양만 70KG로 확 늘어난 데다 나머지 7개 품목도 전부 양이 늘었고, 그것을 전부 혼자서 하고 있다. 그리고 돌아오면 교재준비를 하고 수업준비를 하고 강의를 하러 간다. 돌아오면 젊은 게 뭐야, 이것저것 하며 놀다가 잠이 든 후, 아침 6시 30분에 눈을 뜬다 일 나가야지! 덧붙이길 이건 너무 빡세다, 뭐 하나를 조금 줄여야 할 것 같다, 고 내게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능력 이상의 일을 계속하면 그게 평균능력이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라 잘 모르겠다고, 아픈 배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구르며 대답해 주었다.

아는 동생이 보기엔 늙은 게 원인이란다.

제일 절망적인 것은 세 가지 모두 원인에 포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일하고 있는 가게의 사장이 병원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뉴질랜드에서 병원은 처음이었다. 30여분을 기다려 간호사를 만나 지금 상황들을 이야기했다. 상체에서 꿀물을 먹으면 하체에서 꿀물이 바로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간호사가 웃었다. 웃기는. 갑자기 의사를 기다리란다. 1시간을 더 기다려 의사를 만났다. 청진기 한 번 대보지도 않고 배가 몇 분간 아팠니? 10분? 15분? 류의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하고는 약을 받아가란다. 그리고 나의 대변을 채취해서 가까운 병원에 제출하라고 하는 이상한 말을 남겼다. 그러면 또다른 약을 받을 수 있을 거라 했다. Bio Hazard의 글씨와 더불어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 붉은 표식이 적혀있는 채취통을 바라보았다. 나는 나의 대변을 채취해야 하는 원인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채취통에는 차라리 짬뽕을 담아가는 것이 맞을 듯 싶었다. 배가 아프다.

집에 돌아와 약들을 살펴보니, 물에 섞어 마시면 체내 흡수가 더 잘 된다는 주황빛 가루약과... 지사제가 전부였다. 의사는 이 약들을 적으며 별 문제 없어 보인다고, 차차 좋아질 거라 했었다. 청진기 한 번 대지 않고, 칼로 쑤시는 것처럼 배가 아프니? 주먹으로 때리는 것처럼 배가 아프니? 라고 내게 물었었다. 칼로 난도질 당한 적도, 주먹으로 맞아본 적도 없는 나는, 설사를 억제하는 지사제를 받아왔다. 물론 다행히 사장이 돈을 지불했지만, 약값을 제외한 진료비가 200불이 넘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병원에 갔었던 날을 포함해 4일째 꿀물과 생강차, 물을 제외하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더 이상 짬뽕을 원망하진 않게 되었다. 19세기 초 인천으로 들어와 짬뽕이란 것을 만들었던 화교들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같이 사는 키위친구는 노옹심노옹심 노래를 부르며 신라면을 끓여댔다. 아는 동생은 고맙게도 생강차를 끓여주며 고맙게도 자꾸만 오빠늙었다 오빠늙었다를 연발했다. 한국의 친구들은 타지에서 아프면 더 힘들텐데..라는 말들을 했다. 애초에 홈시크가 전혀 없던 나는, 여기가 설령 우주선 안이라도 아프면 그냥 힘든거야..라고 하나마나한 대답을 했다. 세상 참, 잘 돌아간다, 라고 생각했다.

아침, 눈을 뜬다. 뉴질랜드에는 새들이 참 많이도 운다. 지사제 때문인지 뱃속에선 나가려는 변과 막으려는 균이 사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 끄응, 신음소리를 낸다. 새들과 복부와, 신음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리는 열정적인 아침이다. 아직 출근하기엔 조금 이른 탓에, 서둘러 눈을 감는다. 나의 침대 위에서는 짬뽕의 면발들과 반짝거리는 해물들, 껄껄거리는 화교들이 늙은 공작새처럼 날개를 펴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공작새가 근엄한 표정으로 낡은 부리를 열어 말한다.

음식 좀 조심해서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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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댓글 0 | 조회 1,489 | 20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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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스트처치 기행 메모

댓글 0 | 조회 1,391 | 20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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