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와 박병선 박사-제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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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도서와 박병선 박사-제 2편

0 개 2,327 정경란
지난 번에 소개한 ‘직지’와 박병선 박사의 이야기를 이어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사서로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가 발견하고 유네스코에 공식적으로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하도록 5년여에 걸친 연구를 수행했다는 사실을 소개했었다. 사실, 이 책을 구입한 프랑스 공사 드 플랑시는 직지 겉장에 ‘이 책은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한국 인쇄본이다’라는 메모를 남겼고, 서지학자 모리스 쿠랭 역시 이런 부분을 인지했지만 한국에 관한 자신의 책속에서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 수준으로 그치고 말았다.

박병선 박사의 공헌은 여기서만 그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우연찮게 파리 국립도서관 지하 서고, 그것도 이제 폐기처분할 자료들을 모아놓는 곳에서 조선시대 왕실 행사를 그림으로 그려 기록한 의궤를 발견한 것이다. 때는 1977년이었다. 말로만 듣던, 병자호란 때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의 외규장각 서고에서 탈취해 간 왕실의 귀한 자료 297권이 두툼한 먼지를 뒤집어쓰고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먼지를 털어내니 예의 그 푸르스름한 비단이 빛을 드러낸다. 그때 박병선 박사가 느꼈을 법한 감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던 박병선 박사는 이후 의궤를 새로 단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자, (수리 과정에서 누군가 의궤의 그림을 도려낸 사건이 있었고 도서관측은 이를 알아채고 의의를 제기한 박병선 박사를 오히려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으로 인식한 것이다.) 의도적으로 박병선을 따돌리고 다른 동료들로 하여금 대화도 하지 못하게끔 하였다. 이후 길거리에서 만난 동료가 이 점을 알리자 박병선 박사는 이 점을 크게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그 후 박병선 박사는 의궤를 열람하고자 하였으나 도서관측의 의도적인 방해와 핑계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사서의 자리를 그만두고 일반 시민으로서 의궤 열람권을 신청하여 의궤가 과연 어떤 자료인지 해설을 붙이는 작업(해제)을 시작한다. 그 작업은 이후 10여년에 걸쳐 이루어지게 되었고 늘 푸른 빛의 책에 둘러싸여 일하는 박사의 모습은 도서관의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 잡아간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서, 기약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린 박사의 소식이 알음알음 주변 한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주불 한국대사는 도서관 열람실에 한결같이 도서관에 앉아 일하는 박사를 불러내어 굳이 점심을 먹여 들여보내야 할 정도로 박사는 자신을 돌보는 일에는 지나치리만치 검소하고 소박했다.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당신이 평생 이룬 업적을 자신의 공로로 돌린 적이 없었다.

외규장각 도서 해제에 바친 10여년의 노력은 이후 서울대 규장각에서 해제 전집이 출간되는 결실을 보았고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외규장각 도서의 한국 송환을 위해 프랑스 미디어에도 자주 등장해서 왜 이 도서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역설했던 박병선 박사. 왜 프랑스가 그 책을 반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박병선은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만약에, 프랑스 루이 14세의 왕실 행사를 기록하고 당시의 사회, 경제, 문화를 통찰 할 수 있는 자료가 고스란히 담긴 문서의 유일본이 다른 나라에 있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프랑스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당연히 찾아와야지요.” “네, 그게 맞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당연히 되찾으려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도 이 일화를 들으면 목울대가 묵직해진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이후 외규장각 도서는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반환운동을 계기로 재불 한국인, 프랑스의 활동가들, 프랑스 파리 7대학 학장 및 여러 사회 주요 인사들의 노력으로 비록 ‘영구대여’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2011년 4월 한국행 특별 수송기에 실려 돌아왔다.

누군가는 왜 우리 물건을 ‘대려’라는 이름으로 받아야 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록 우리에게 강탈해 갔다 하더라도 그것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는 따라야 하는 그 나라의 법과 절차가 있다. 그렇게라도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은 지난한 시간에 걸친 한-불 여러 인사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사의 소망대로 언젠가는 외규장각 도서에 붙은 ‘대여’라는 꼬리표가 없어지도록 우리들이 노력해야 할 일이다. 박병선 박사는 2011년 11월 22일에 귀천하셨다.

최근, 박병선 박사의 생애를 담은 책(비록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나)이 출간되었고,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직지’의 내용을 소개하는 책자도 출간되었다. 더 나아가 앞으로는 박병선 박사의 평전이 쓰여지고, 프랑스에 남아있는 식민지시절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의 자취를 담은 기록과 자취들이 관련 학자와 연구자들에 의해서 세상에 빛을 보기를 기대해본다.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 <프랑스군인 쥐베르가 기록한 병인양요>
<참고자료들>
▶ 공지희 글, 김지안 그림,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 글로연, 2012
▶ H. 쥐베르, CH. 마르땡, <프랑스 군인 쥐베르가 기록한 병인양요>, 유소연 옮김, 살림, 2010.
▶ 쟈크 랑, “의궤가 한국 땅에 있다는 게 중요” 외규장각 의궤 귀환에 힘쓴 한불 양국인사 기자회견, 2011년 6월 11일자,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80671
▶ 박상진 엮음, <신비롭고 재미있는 직지 이야기>, 태학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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