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입관합니다. 곡하세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작위적이던 곡소리는 신음소리가 섞이더니 점차 통곡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부지 이래 가믄 어뜨캅니꺼.”
살아생전 유난히도 할아버지와 많이 싸우시던 큰 고모는 장례 내내 눈물을 훔치신다. 고성을 주고받던 모습에만 익숙하던 나에게는 사뭇 낯선 모습이다.
할아버지와 큰 고모의 싸움주제는 주로 술이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병이 술 때문이 아님을 굳게 믿으시던 할아버지와 그런 고집을 지독히도 보기 싫어하던 큰고모셨다. 어찌 보면 그 고집마저 닮아있었지만 말이다.
부녀간에 어찌 애뜻한 정일랑 없었겠느냐만은 한 번도 다정한 모습을 뵌 적이 없었기에 상상이 가질 않는다. 전형적인 경상도 집안이고 표현에 서툰 옛날 사람이라손 치더라도 좀 너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 인사에는 속마음이 나오나 보다.
가슴 속 깊이깊이 묻어두었던 사랑은 조금씩 그 얼굴을 비치더니 이제는 수십 년 쌓아 둔 마음을 한꺼번에 토해낸다. 그 동안 상처받아 서운했던 마음들은 어느 새 녹아 오장육부를 적시고 눈물로 화(化)했으니 그 눈물은 피보다 진한 것이리라.
눈물과 함께 비로소 감사함은 터져 나온다.
“아부지 제가 잘못했습니더.”
마음속에 품어왔던 원망은 어느 새 사라지고 감사함만이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때때로 깨닫는다. 그리고 때때로 그 깨달음이 너무 늦었음을 깨닫는다.
장례식장에 사촌여동생이 왔다. 근 2년만이다. 하나뿐인 친 사촌동생인데 말이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이지만 왠지 불편한 눈치다. 괜스레 옆에 가 따스하게 쳐다봐준다. 괜찮다고 눈으로 얘기하면서 말이다.
작은 아버지와 숙모는 따로 산지 꽤나 오래 되셨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한 것도 아닌, 이혼한 것도 아닌 상태라 해야겠다. 가정불화에다가 능력부족, 돈 문제까지 겹쳐있다. 게다가 돈 문제가 친척들과 얽혀져 있고, 이미 신뢰를 잃어 이래저래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그러다 보니 이 어린 녀석에게까지 불똥이 튀게 되어 그리 따스한 대접은 못 받는 듯 하다.
“많이 힘들지?”
따뜻한 말 한마디에 한참이나 웅크리고 있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나 보다.
“사람들에겐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어. 그 상처의 크기만이 다를 뿐이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상처를 어떻게 승화시키냐에 달려있어. 그건 더 나은 네가 되는 원동력이야.”
너무 어려운 얘기를 했나 싶었더니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녀석은 어린나이에 이미 부모를 책임지려 하고 있었다. 자신이 책임지지 못하면 부모 스스로는 일어서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보다.
자신은 너무나 쉬운 듯, 당연한 듯, 어른이 된 듯 행동하고 있었지만 그 눈은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은 아직 아이라고, 아직 어리다고, 아직은 어리광을 더 부리고 싶다고.
“가끔 전화해.”
전화번호를 건네주며 눈을 바라본다. 억지 어른이었던 녀셕은 비로소 아이가 되어있다. 세상이 밉고 사람이 미워 어른이 되어야 겠다 결심했던 그 아이는 다시 사랑받고 싶고 이쁨받고 싶은 20살 여자아이로 돌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