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바람이 흘리고 간 티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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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바람이 흘리고 간 티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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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어머니가 아마 지금의 내 나이때쯤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인가, 우리집엘 오셨는데 핸드백 안에서 불쑥 사진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네셨다. 모서리가 닳고 색도 약간 바랜 듯한 아주 오래된 사진이었다.
  내가 단발머리 열 한 살때, 삼십대 후반의 눈매 서늘하고 복성스러운 어머니는 그 시절에 한복저고리 위에 신식양복을 걸치고 한참 멋을 내셨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내가 오른편에 바로 밑의 남자동생이 왼편에 귀여운 모습으로 앉아 있고 갓 시집온 새색시 숙모님과 나란히 언니가 뒤에 서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숙모님의 어정쩡하게 들어 올린 팔 모습 때문에 마냥 웃음이 나오곤 했는데 손목시계를 보이려고 그런 것이 아마 그 시절에는 흔치 않은 자랑거리 였었나 보다.
“이젠 네가 가지고 있는 게 좋을 듯 싶다.”
  닳아 빠지도록 백에 넣고 다니며 보시던 아끼는 사진을 내게 주시는 뜻을 모를 리 없는 나는 금방 저 세상가실것 같아 무척이나 속으로 슬펐었다. 그 후 십 수년을 더 사시긴 했지만 어머니는 주변정리를 일찌감치도 서두르셨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함께 하기가 쉽지 않아서일까 아버지와 오빠가 빠진 사진이었는데도 유독 어머니는 그것만을 고집스럽게 넣고 다니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끝내 물어 보지 못했다. 내가 어른되어 시집가서 아이들 낳으며 그 답을 스스로 얻었는데 어머니 무릎에 앉은 깜찍스럽게 귀여운 네 살 박이 동생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난스럽게 총명하고 똘똘해서 가족들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그 애는 봉오리 꺾인 꽃처럼 1ㆍ4 후퇴당시 피난길에서 일곱살 늦은 나이에 홍역을 앓다가 끝내 못 일어나고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충청도 어느 낯선 마을 야산자락 꽁꽁 언 땅에 어린 딸을 묻어 놓고 그 곳을 떠나 볼 때에 소복하게 하얀 눈을 얹고 앉은 어린 소나무를 보면서 저기 ㅇㅇ이가 있다고 통곡하며 발걸음이 얼어 붙어 걷지를 못하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어린 자식을 가슴 속에 묻고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또 하나 어머니의 일생 중에 가장 행복했던 그 때가 황금기로 사진 속에 남아 있다. 아버지의 사업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기에 오래오래 추억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던가 문득 뒤돌아 보게 된다. 남겨진 흔적들을 추슬러 보석처럼 싸안고 싶은 요즈음이기에…, 짤막짤막한 순간의 영상들을 엮어 가며 살아온 날들을 반추해보면 내게도 그럴듯한 때가 있기는 있었다. 어느 술집 빈대떡이 맛있다고 기름 철철 흐르는 빈대떡 봉지를 식을세라 코트 속에 넣고와 가족들 입맛을 즐겁게 하면서 행복해 하던 남편. 아이들 도시락을 예술하듯 정성으로 만드는 옆에서 나보다 더 흐뭇해 하던 얼굴도 크게 떠오른다.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들고 볼 사진은 별로 없지만 머리 속에 헝크러진 필름은 영원히 남아 있어 잊혀지지 않는다. 어제 일만 같던 일들이 아득한 세월 저편으로 밀려 가고 지금 나는 그 때의 어머니처럼 주변 정리를 해야 하는 때에 이르지 않았나. 어떻게 그리 빨리 지나가 버렸을까. 비, 바람 몰아치는 격랑 속에서 햇볕 찬란한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보다는 반드시 내일이 나을 거라는 기대 속에 참고 견디며 살다보니 그 날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에 흰서리를 이었다.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는 인생 막바지 언덕에서 긴 여정의 뒤를 돌아다 보니 그것은 한줄기 회오리 바람이었다.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인가? 누군가가 말했던 어떤 생각이 난다. “젊어서 아름다운 것은 타고난 것이지만 늙어서 아름다운 것은 인생의 예술작품이다.”라고. 늙어서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리라. 내 인생의 예술작품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 간다는 기분으로 살자. 미움과 시기와 질투같은 못된 감정들을 정으로 쪼아 내고 둥글고 부드럽게 갈고 닦아서 바다같이 가슴 넓은 사람으로 사랑을 배우며 살자. 늙어서 초라해지는 옹졸함을 내면의 풋풋한 향기로 포장하고 내가 있어 어느 한 곳 작은 빛이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제 물질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대신 따뜻한 인간성의 축적에 욕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바람같은 인생, 미풍에 떠도는 은은한 향기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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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 나누며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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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오빠와 취나물

댓글 0 | 조회 2,841 | 2007.09.26
이 나이에도 친정 식구들을 떠올리면 그냥 그때의 아이로 돌아 가는 게 그리 좋다. 언니가 보고싶어 목소리라도 들어야 한다며 전화를 주실 때, 외국생활 힘들지 않느… 더보기

[363] 제니의 지팡이

댓글 0 | 조회 2,774 | 2007.08.28
"처음에는 네 발로 기어 살다가 두 발로 서고 나중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 이름이 뭐게?" 어렸을때 수수께끼로 재미있어 했던 놀이였다. 허지만 철없던 시절 사람이… 더보기

[361] 바보가 되어가는 이야기 하나

댓글 0 | 조회 2,564 | 2007.07.23
"여기 우산 떨어졌는데요" 등 뒤에서 들려 오는 말에 흘낏 돌아보니 어떤 젊은이가 내 우산을 집어서 작은 돌담에 얌전히 걸쳐 놓고 간다.(어머나 큰일 날 뻔 했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