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민들레 김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312] 민들레 김치

0 개 2,770 코리아타임즈
비가 자주 내리더니 말라 붙었던 잔디가 기승을 부리듯 살아나고 온갖 잡초들이 서로 다투어 키자랑을 하듯 쑥쑥 모습을 드러낸다. 거기 빠질세라 민들레도 한 몫끼어 나풀거리는 잎새에 윤기를 더한다. 그것을 보며 지나칠 때마다 내 가슴은 축축해지고 수채화같은 잔잔한 두가지 추억이 그림으로 그려진다.
  그 날은 유난히 해가 길었는지…, 이른 저녁을 먹고 나서 산책길에 나섰다. 시원하게 트인 티티랑이 파크에서 만났던 타는듯 붉은 노을은 아니지만 집들 사이로 회색빛에 싸인 연분홍 하늘이 그런대로 아름다웠다. 무엇이든 늘상 혼자서만 하던 내 옆에 말벗이 되고 길동무가 되어주는 언니와 함께라는게 더 없이 즐거웠다.
  “어머 이게 다 민들레다”길섶 파란잔디속에 펑퍼짐하게 늘어진 잎사귀들을 가르키며 놀라워 하셨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쭈구려 앉은 언니 손엔 벌써 한 줌의 민들레가 쥐어져 있었다. 당뇨에 좋고 건강에 좋다고 매스컴을 하더니 서울에서는 민들레가 씨가 마를 정도로 사라져 버렸단다. 시궁창 옆 냄새나는 곳이거나 쓰레기장 근처 오물속에서도 남아나질 않는데 이렇게 깨끗한 민들레가 지천이라니…….
  아무래도 산책은 더 이상 지속이 안 될 것같아 슬며시 집으로 돌아와 비닐백을 준비하고 본격적으로 함께 뜯어 담았다. 지나가던 얼굴 검은 여인이 의아한 듯 무엇에 쓰느냐며 묻는 것같다. 약으로 쓴다고 했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어깨를 흠칫한다.
  해가 거의 넘어가고 서서히 어둠이 내려 앉을 때까지 부풋하게 채워 가지고 돌아왔다. 큰 횡재를 한 것처럼 뿌듯해 하시는 언니, 누구도 못 말리는 영원한 살림꾼, 일등 주부의 타이틀을 달고 다니는 분, 지켜보는 내게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게 하신다.
  “이거 바로 김치 담자 욹으면 약성이 빠지니까 쌉쌀하겠지만 그냥 담아야겠어”
  일 속에 파묻혀 살다가 여기와서 며칠 쉬니까 심심하셨을까? 장난감 만난 아이처럼 신바람이 나셨다. 그릇을 대령하고 양념을 꺼내 놓았더니 손질해 다듬어서 바지런하게 씻어 먹음직스럽게 버무렸다. 밤 가는 줄 모르고 해 담은 김치가 작은 통에 두 통이다.  
  “이것봐라, 제법 많은 걸, 냉장고에 넣고 천천히 익혀서 두고두고 먹어요.”
  대견해 하는 언니, 그 넉넉한 표정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나는 또 얼마나 행복해 보였을까? 젓국에 폭 삭고 간이 잘들어 익었지만 약이 된다는 씁쓸한게 사실은 별로여서 정말로 약처럼 참 오래오래 먹었다. 그 김치를 먹을 때마다 언니의 정성과 그 날의 추억이 떠올라 곁에 언니가 계신듯 착각하곤 했다.
  멀리 떨어져 살아도 어머니같은 보살핌으로 신경 써 주시는 언니의 절반도 이 동생은 못하고 있으니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꼭 맞는 말이 잖은가. 이제 민들레 이야기만 나와도 언니가 생각나고 그리움으로 가슴이 죄어온다.
  또 한 사람, 전에 살던 우리집 안마당에서 민들레를 뜯다가 우연히 친구가 되신 ㅇ집사님. 그 분은 정말로 당뇨환자여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 김치 봇따리를 안고 가셨다. 매일 아침식사가 끝나면 반드시 산책을 해야 했고 그 길목에 있는 우리집엘 꼭 들려 놀다 가곤 했다. 정스럽고 경우도 분명한, 같이하면 마음 편하고 대화도 통하는 그런 분이여서 만나기만 하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수다에 출출해지면 옥수수, 호박, 감자 등을 쪄놓고 시골 마실처럼 놀다 가면 다음 날은 그 분이 그 만큼을 도로 들고 와서는 어제의 빚을 갚는다. 사는 집이 우리집에서 멀지 않다는 것 뿐 직장에 나가는 딸을 도와 살림을 맡아하는 것 말고는 깊이 아는 게 없지만 우리는 늘 그렇게 잘 지냈다. 늙으면 부부 함께 지내는게 권태롭고 짜증나는 일일까? 같이 귀국하자는 영감님을 먼저 돌려 보내고 혼자 여기 남아 사는게 너무 홀가분하고 편해서 가고 싶지 않다고 속이야기는 서슴이 없다. 아마 동생같은 나를 위로해 주려고 하는 말이려니 생각도 들지만 반 쯤은 진실인게 틀림없다.
  민들레 김치 들고 한국 들어 가면서 다시오면 또 만나자고 당부 약속 단단히 했건만 이제 그 분은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따님 가정이 모두 호주로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민들레가 지천인 이 나라에 와서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되겠다고 집 정리하고 돌아 오겠다더니……, 지금은 어찌 지내고 계실까?  

사람 구경

댓글 0 | 조회 3,101 | 2009.06.23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합창의 향연이 한바탕 끝난 한나절, 유리창에 부디치는 소슬한 바람소리뿐. 인적없는 절간같이 고요만이 남는다. 이럴때 아늑하고 마냥 … 더보기

꿈나무 동산

댓글 0 | 조회 2,892 | 2009.05.26
거기는 활기차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린 꿈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아름다운 꽃동산이었다.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맘껏 소리치고 노해라고 공부하면서 조국의 문화를 익… 더보기

왕 밤 줏으러 갔다네

댓글 0 | 조회 3,384 | 2009.04.28
무엇을 그리도 두려워해서일까? 그 누구도 침범 못하게 단란한 가시로 무장을 하고 의좋게 달라붙어 꼭꼭 숨은 삼형제일까 삼자매일까? 윤끼 자르르한 갈색으로 매끈하지… 더보기

희망을 주는 사람들

댓글 0 | 조회 3,039 | 2009.03.24
이른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이름모를 진보라색 작은 꽃무더기, 그 보라색 꽃을 보면서 문득 가을이 느껴졌다. 그지없이 센치하고 공허해지는 가을을.... 그리고보니 피… 더보기

어둠속의 아이들

댓글 0 | 조회 3,572 | 2009.02.24
길을 걸어가는데 열살안쪽 검은 애들 서너명이 거칠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중 한 애가 갑자기 내 앞을 가로막고 서더니 "빼롱--" 하고 혀를 쏙 내밀며 놀리질… 더보기

검은 진주 가족의 아름다운 삶

댓글 0 | 조회 3,094 | 2009.01.28
딸 다섯에 막내로 아들 하나, 그 아들을 얻으려고 줄줄이 딸을 낳았을까? 여덟식구 대 가족이 한줄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앉을 자리가 없는 … 더보기

나의 기쁨조 사람들

댓글 0 | 조회 3,138 | 2008.12.23
이 해도 마지막 달,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살다보면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기복의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지만 될… 더보기

양귀비꽃 하루

댓글 0 | 조회 2,742 | 2008.11.26
찌프린 하늘이 회색으로 어둡다. 그 침침함 속에 문득 시야를 밝혀 오는 화사한 다홍색 물결, 두리번거리는 낯선이의 발길을 유혹하는 곳은 잘 정돈된 넓직한 파크였다… 더보기

쌀밥에 뉘

댓글 0 | 조회 2,972 | 2008.10.30
주차장 옆, 시커먼 고목나무 팔 벌린 가쟁이에 장난치듯 길다란 밧줄을 던지고 있는 노인, 사람 키를 훨씬 넘는 위치에 여러 차례 던져 보지만 잘 걸리지 않는다. … 더보기

봄이 오는 소리

댓글 1 | 조회 3,162 | 2008.09.24
연일 쏟아지는 비속에서 그토록 안달하며 재촉을 했던가? 연두빛 봄이 찢긴 햇살사이를 비집고 성큼 성큼 한달음으로 다가들고 있다. 양지녘에 앉은뱅이 보랏빛 작은꽃이… 더보기

나나니 춤

댓글 0 | 조회 3,377 | 2008.08.27
삼십년만의 큰 태풍이란다. 홍수에 집이 잠기고 고목이 뿌리째 뽑혀 벌렁 누운 모습도 보게 되는 그런 특별한 겨울이다. 이 나라가 태풍의 소용돌이에 깊숙이 갇혀 버… 더보기

"DOULOS"의 사람들

댓글 0 | 조회 3,106 | 2008.08.13
그 날은 왜 그리도 비바람이 사나웠는지? 춥고 음산했다. 그 폭풍우 속을 해상에 나간다는게 잠시지만 고생을 각오해야겠기에 두툼한 옷으로 무장을 했다. 이 년이라는… 더보기

[383] 일탈(逸脫)의 쾌감

댓글 0 | 조회 2,888 | 2008.06.25
길고 긴 여름 가뭄에 늦더위가 기승이더니 모처럼 귀한 비가 밤새 제법 많이 내린 어느 날이다. 메말랐던 세상이 한껏 물끼를 머금고 생동감으로 넘치는데 그쳤는가 했… 더보기

[381] 멋쟁이 멋쟁이! (황혼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어라)

댓글 0 | 조회 2,816 | 2008.05.28
요즈음같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 한줄기 밝은 빛으로 모든 사람들 가슴속에 훈훈한 감동을 심어준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지난 4월 어느날, 아침 방송 뉴스시간에 … 더보기

[379] 이 가을에는.....

댓글 0 | 조회 2,975 | 2008.04.23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 세월에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 주는 고국의 친구들, "지금 꽃철이 한참인데 놀러 오지 않고 거기서 뭘 하느냐?"는 화사한 유혹이 번거롭다 … 더보기

[377] 우리동네 시장 풍경

댓글 0 | 조회 3,466 | 2008.03.26
화요일 아침, 다른 때 같으면 잠자리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딩굴고 있을 시간이지만 벌떡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바지런을 떤다. 나이를 잊고 살자는 착각 속에 아직 여… 더보기

[375] 짧은 만남, 긴 행복

댓글 0 | 조회 3,003 | 2008.02.26
금년(2008년) 설에 내 가족모임은 멋지게 끝이 났다. 이제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 본래의 일상으로 살아간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듯.... 참 멀고도 먼 길… 더보기

[373] 그 나무님!

댓글 0 | 조회 2,820 | 2008.01.30
티티랑이 언덕길 위에 우뚝 서 있는 기품있게 잘 생긴 한 그루의 고목. 아무리 나무가 잘 자라주는 이 나라라고 해도 백 년은 훌쩍 넘었음직한 위용을 갖추어 지체 … 더보기

[371] 예술처럼 늙고 싶다

댓글 0 | 조회 2,848 | 2007.12.20
"이제 늙고 볼품없어 제대로 보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옷인들 신경 써서 입으면 뭘하나 츄리닝이나 걸치고 헐렁하게 살아야지" 그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충실해서 한결같… 더보기

[369] 나누며 사는 사람들

댓글 0 | 조회 2,565 | 2007.11.28
생각보다 무겁고 두툼한 그것을 건네 받으며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앞섰다. "뭣이 이리도 많을꼬?" 금방 자를 것을 깜박하고 이른 아침에 흠뻑 물을 주어 젖어서 무거… 더보기

[367] 무지개를 따라서

댓글 0 | 조회 2,735 | 2007.10.24
무슨 사연인지 묻지는 못했지만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어느 중년의 여인. 아쉬움 속에 마지막 라운딩을 우리와 함께 하던 날이었다. 십칠홀을 끝내고 라스트 … 더보기

[365] 오빠와 취나물

댓글 0 | 조회 2,824 | 2007.09.26
이 나이에도 친정 식구들을 떠올리면 그냥 그때의 아이로 돌아 가는 게 그리 좋다. 언니가 보고싶어 목소리라도 들어야 한다며 전화를 주실 때, 외국생활 힘들지 않느… 더보기

[363] 제니의 지팡이

댓글 0 | 조회 2,761 | 2007.08.28
"처음에는 네 발로 기어 살다가 두 발로 서고 나중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 이름이 뭐게?" 어렸을때 수수께끼로 재미있어 했던 놀이였다. 허지만 철없던 시절 사람이… 더보기

[361] 바보가 되어가는 이야기 하나

댓글 0 | 조회 2,552 | 2007.07.23
"여기 우산 떨어졌는데요" 등 뒤에서 들려 오는 말에 흘낏 돌아보니 어떤 젊은이가 내 우산을 집어서 작은 돌담에 얌전히 걸쳐 놓고 간다.(어머나 큰일 날 뻔 했네… 더보기

[358] 서울내기 전원에 살다

댓글 0 | 조회 2,478 | 2007.06.13
숨가쁘게 달리던 차가 여주 "세종대왕 능" 부근에서 한숨 돌리듯 속도를 늦춘다. 엄청 조용하고 아늑했을 명당이련만 지금은 개발의 붐을 타고 근처까지 파헤쳐져 어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