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 베티의 웃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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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294] 베티의 웃음소리

0 개 2,445 코리아타임즈
무슨 꽃일까? 부스럼 앓는 나무처럼 꺼칠한 고목나무에서 바람결에 떨어져 내린 손톱같이 가느다란 꽃잎이 온통 바닥에 하얗다. 소복하게 차를 뒤덮은 어느날 아침 긴 털이개로 그것을 쓸어 내리는데 옆집의 캔 노인이 보더니 그게 바로 키위 스노우가 아니겠느냐며 너스레를 떤다.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그렇게 보이더니 너무나 멋진 비유다. 눈 구경을 못하고 사는 여기 사람들에겐 얼마나 멋져보였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들이 앉았다 날아가며 오물세례를 퍼부어 차가 엉망일 때는 손가락으로 총을 만들어 쏘는 시늉도 잘한다.

  그가 갑자기 털이개를 빼앗아 자기 겨드랑이를 문지르는 시늉을 하며 나를 웃긴다. 뒤에서 지켜보던 그의 아내 베티가 코미디언, 코미디언 하면서 자즈러지게 웃는다. 그의 끼가 발동이 걸린 것을 우리는 함께 알고 있다. 그와 마주치기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재주가 있는 캔노인. 사십팔년이라는 긴 세월을 버스기사로 일했다고 자랑한다. 그래서일까 엉덩이를 약간 뒤로 빼고 걷는 걸음걸이가 처음에는 보기에 좀 이상했다. 칠십이 넘었어도 기운이 젊은이처럼 펄펄하고 박력이 넘친다. 혈색 좋은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환하고 화낸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혼자 밥 먹는게 심심하지” 몸짓 손짓으로 말을 나누어도 서로 알아듣고 재미있게 나를 웃긴다. 자주 외롭지 않느냐고 물어주는 자상함에 문득 내 외할아버지가 떠오르곤 한다. 허우대 좋았던 할아버지를 그가 닮았나?

지금 이 나이에 어렸을적 외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는 것은 나를 아이로 돌아 가겠끔 따뜻한 인정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그의 아내 베티는 육십육세라는데 뚱뚱보다. 나이답지 않게 가느다란 목소리를 가진 아주 상냥하고 아기처럼 천진스럽다. 그것은 든든한 남편이 그렇게 아내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마치 아이들 장난치는 것처럼 순수함을 느낀다. 천박하거나 점잖지 못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아온 그들의 문화 때문일까.

  어느 날인가 내 창가에 일렁이는 아름답지 못한 나무 한 그루를 컷팅하던 때다. 나를 도와주려 달려들어 나무가지를 꺾다가 손등에 피를 흘렸다. 깜짝 놀래는 내게 괜찮다며 혀로 쓱 핥아 버린다. 베티가 보았으면 얼마나 속 아파할까. 얼른 약을 내다 발라주고 테잎으로 감아주었다. “땡 큐”내가 할 말을 그가 먼저한다.

  언제나 머슴처럼 쇼핑해서 양손에 잔뜩 들고 오는 남편 앞에 여왕처럼 곱게 차려 입은 베티가 불뚝 튀어나온 배를 안고 귀엽게 뒤뚱거리며 들어온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울까. 가느다란 쇳소리의 베티 웃음소리가 항상 밖으로 흘러나온다. 천길 물 속같이 조용한 이웃에 사람 사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들의 집. 그들 인생에도 화려한 꽃만 피우고 살지는 않았을 테지. 삼남매 다 시집 장가 보내고 호젓이 둘이만 남아 그렇게 산다. 언제인가 그들도 어느 쪽이든 혼자가 된다는걸 모를리 없건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재미있게 사는 모습이 보기에 참 아름답다.

  작은 텃밭에 계절 바뀔 때마다 꽃 바꿔 심으며 아직도 남은 기운으로 아내 뒷바라지가 그렇게나 즐거운 것인지? 매일매일 너무나 행복하단다.
  머지않아 시원하게 열어 젖힌 창 밖으로 베티의 웃음소리를 또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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