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삼합(三合)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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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삼합(三合)을 아느냐

3 3,546 코리아포스트
가로등도 가물가물 졸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 밤에 나는 가만히 누워 있다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 녀석이 참 그립군.’

어느 환절기의 밤, 마침 딱 맞게 익어 걸러 낸 막걸리 한 잔과 삼합(三合) 생각이 간절했다.

홍어 삭힌 것과 보드랍게 삶은 돼지고기, 손으로 쭉쭉 찢은 묵은지가 환상적으로 어울리는 삼합.누군가는 죽음과도 같은 맛이라고 했다. 맞다. 치명적이다. 저항할 수 없는 관능적이고도 신비한 매력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처럼, 혹은 카리스마와 악독함으로 여자를 망쳐 놓지만 미워할 수 없이 자꾸 빠져 들어가는 매력적인 남자 옴므 파탈(homme fatale)처럼, 홍어는 도발적이고 매혹적이다. 홍어는 ‘쁘아송 파탈(poisson fatale)’일까? 지독하게 삭은 놈은 입안이 홀딱 벗겨질 정도로 나쁜놈(?)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사로 잡혔다. 암모니아 향 때문에 울컥, 역했던 일 조차도 사는 게 민숭민숭 재미 없는 날, 거부할 수 없는 기억으로 나를 유혹한다.

삼합을 먹을 때는 볼이 메어지게 불룩해진다. 참 복스럽게 먹을 수 밖에 없는 삼합. 누가 말을 붙여도 대꾸할 수가 없다.입 안은 전쟁 중이다. 크고 작은 지랄탄이 지랄스럽게 터진다. 그러면 머리를 한 번 후두둑 털고 막걸리 한 모금 들이킨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코끝에서 퍽 터지면 또 한잔, 머리가 찌르르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면 지랄은 끝이 난다. 아, 삼합의 오르가즘이다! 나는 콧물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잠시 훌쩍거린다. 그리곤 무념무상의 상태에 잠긴다. 삭힌 홍어의 치명적 매력은 무지 긴장시켰다가 한없는 이완 상태로 평화를 주는 것, 한(恨)스럽다가 한이 확 풀려 버리는 것, 바로 그것이다.

미식가들의 리스트에서 흔히 보아온 그 유명한 삼합(三合)을 나는 뉴질랜드에서 맛보았다. 한국 남도 지방의 전통 음식을 남태평양의 섬 나라에서 맛 볼 줄이야! 어차피 용한 점쟁이나 예언가가 아닌 이상 삶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일이지만, 정말이지 뉴질랜드에서 삼합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참 기이하게 느껴졌다. 생각지도 않았던 미지의 장소에서 치명적인 사랑을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J씨 부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부창부수라는 말이 정말 딱 들어맞는 부부다. 남편이 홍어를 잡아 오면 아내는 막걸리는 담근다. 홍어가 삭아 가는 시간과 막걸리가 익어가는 시간을 딱딱 맞추는 것도 참으로 신기하다. 먼 조상님들은 과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데 어찌 홍어와 막걸리의 궁합을 생각해 냈는지. 요즘처럼 다들 잘난 체 하며 부산 떨어 대며 살지 않고,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 사물을 가만히 들여다 보곤 그 본질과 이치를 무릇 깨달은 것일까. 홍(洪)탁(濁)은 그렇게, 조상님들의 명징한 삶의 자세에서 발견해 낸 매혹적인 찰떡 궁합이다. 홍어는 차고 막걸리는 뜨거운 성질이다. 홍어의 암모니아를 막걸리의 유기산이 중화시켜주기도 한다는 것. 홍탁! 막걸리 없는 홍어를 생각할 수 없다. 혹 막걸리를 구하기 어려워 양주, 와인과 홍어를 먹는다면? 이몽룡과 줄리엣, 로미오와 춘향이가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하는 꼴이다.

J씨 집에 모이기만 하면 먹고 또 먹고 웃고 떠들고 먹고 ---. 배를 두드리면서도 식도락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라 맛 있는 것 앞에선 쉽게 숟가락을 놓지 못한다. J씨의 부인 U씨는 얼마나 후덕스러운지 음식을 내오고 또 내오고 권하고 또 권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먹어라! 덕을 쌓는 일에 열심인 J씨 부부, 복 많이 받을진저. 맘보가 좋아서인지 J씨가 보트를 끌고 바다로 나가면 생선들이 알아서 미끼를 물어준다. 소박하지만 애지중지 꾸며 놓은 배 이름도 덕을 쌓는 배---덕적선이라나 뭐라나. 인생 뭐 별 거 있어? 열심히 일하고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면 되지. 안그래요? 막걸리 한잔에 세상 시름 잃고 주절거리는데, 꼭 토를 다는 남편 왈--- “인생 별 거 있어!”
 
“아따---, 이거이 홍어 애, 여자들 먹으면 예뻐지는 거, 자 한 점씩 드셔보더라고요.”

“남자들은? 붕알은 없다냐?”

“아따 참, 시방--- (애들은 가라)이눔이 암눔이라니까 그러네.”

“(일동)하하하---크크크”

홍어 때문에 눈물이 핑 돌다가 웃겨서 또 눈물이 난다.

사람은 눈물을 흘리던 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듯 싶다. 정확히 말하면 눈물을 흘리도록 만든 그 어떤 일들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눈물을 거름삼아 인생은 성장하고 조화로움을 갖추게 되고 꽃도 피우게 되는 것이리라. 슬프다거나 억울하다거나 자존심이 상해서 흘리는 눈물에는 독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런 눈물은 나쁜 거름이 되어 식물을 고사 시키듯 인생을 삭막하게 만든다.반면, 다정한 이들에 둘러싸여 행복했던 시간들의 웃다가 흘린 눈물은 좋은 거름이 되어 인생을 활짝 피어나게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그리워했던 삼합은 ‘기쁨과 감동과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살고싶은나
그리운 맛이네요... 먹고싶다.. 삼합..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는 맛이죠...
anatech
진짭니까? 뉴질랜드에도 홍어가 있다구요? 와따~ 제가 전라도 출신이라 홍어 맛 좀 먹고 자란 사람인데 여기 10년 살면서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홍어회하고 돼지머리누름과 새우젖... 돼지머리랑 새우젖이야 쉽게 찿을 수 있는데 홍어회가 있으리라곤.... 오죽했으면 가오리로 함 삭혀 볼려고도 생각했었는데... 배가 없어서 바다나가 잡는 것은 글렀고 어디서 파는 데라도 있능가요?
김영나
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윗 사진의 홍어가 오클랜드 바닷가에서 잡힌 것입니다.

일전에 아시는 분이 Pak'n Save 핸더슨 점에 홍어가 있다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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