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 무진기행(霧津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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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373] 무진기행(霧津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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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Ⅰ. 스무살 무렵,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만났다. 주인공 윤희중, 그는 산업화가 막 시작된 1960년대의 전형적 인물이다. 출세하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고 권력을 얻기 위해 계략도 꾸미는 속물이며, 욕망과 경쟁이 삶의 대부분인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가 현실에서 일탈하고 싶을 때, 혹은 기쁠 때 찾는 곳이 그의 고향 '무진'이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는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소설 속의 묘사처럼 도저히 '헤쳐버릴 수 없는 안개' 속의 삶이 곧 우리들 인생이어서, 나는 '무진'과 금세 친숙해졌다.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가, 재수까지 한 자식놈이 대학입시에 합격할까, 뉴질랜드 이민 문은 언제나 열리려나, 이자율은 떨어질까 올라갈까, 집을 살까 팔까, 내 자식들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까, 오늘 저녁은 뭘 해먹지?'

  옅은 안개, 짙은 안개가 해답을 살짝 보여 주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나는 소설 '무진기행'을 옛사랑처럼 껴안고 살았다. 작가의 감수성과 감각적 표현이 잘 벼려진 칼로 싹 잘라진 볏단이거나 맑고 청량한 밤하늘의 별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로니칼하게도 안개 속의 풍경을 그려 낸 그의 소설은 보송보송하기만 하다.

  Ⅱ. 소설 '무진기행'은 1967년, 신성일 윤정희 주연의 '안개'로 영화화 되었다(막내 동생이 'EBS명화극장'에서 녹화 떠서 보내 주었다). 밤안개가 자욱한 무진의 어느 갈림길, 윤정희가 신성일에게 “저를 바래다 주시지 않겠어요?” 유혹의 실마리를 던진다. 그를 이용해 무진을 탈출하고 싶어서. 뭐가 뭔지 답답하기만 한 삶, 그래서 “나를 도시로 데려가 줘요” 애원하는 윤정희. 오래된 필름의 뿌연 기운에 안개마저 덮친 무진, 정훈희의 노래, 밤길 더구나 갈림길, 흘러내린 단발머리를 쓸어 올리는 여자, 나는 ‘헉’ 숨이 막혔다.

  사람들은 지독한 안개를 빌미 삼아 깊은 잠 속에 빠지기도 하고,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원초적 욕망에 몸을 내맡기기도 한다. 동이 터서 시야가 좀 확보되면, 어디론가 떠나야 겠다고 짐을 꾸리기도 하고, 안개가 침입하면 짐 보따리를 다시 풀기도 한다.

  안개는 그랬다. 짙은 장막을 드리우고 사람들을 가뒀다. 한발자국도 헤쳐 나가지 못한다고, 만약 한발 내딛기라도 한다면 낭떠러지로 떨어지거나, 깊은 늪으로 빠질 지도 모른다고 협박한다.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짙은 안개는 음흉하게 최면을 건다. ‘안개가 싹 걷히면 희망하고 기대했던 모든 것이 네 앞에 드러날 거야.’

  안개여, 어리석게도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Ⅲ. 그 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신촌역 근처의 '무진기행'. 코끝이 얼얼하게 추운 겨울날, 무작정 신촌 뒷길을 걷다가 나는 ‘무진기행’이라고 부옇게 달떠 있는 네모난 등불을 만났다. 반가웠다. 카페 이름이 ‘무진--’이라니.

  낡은 문을 밀고 들어가자 어두컴컴한 다락방 같은 실내에는 난로가 있었고 주전자에서는 물이 끓고 있었다. 주인은 머리가 허연 중년 아저씨였고, 안주인은 윤정희 같은 단발머리의 앳된 여인이었는데, 자칭 '빈궁마마'(자궁을 들어냈다)였다.

  나는 따끈한 차를 마셨다. 벽에는 동자승의 사진이 검은 안개에 싸인 듯 오래 되어 낡은 모습으로 애닯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윤희중이 무진의 안개 속으로 숨어 들 듯, 자주 그 곳에 갔었다. 허깨비 같고 불안하고 쓸쓸했던 날, 혹은 나의 기쁜 생일날. 즐거워지면 주인 아저씨는 섹서폰으로 패티김의 '빛과 그림자'를 연주했다.나는 안개처럼 뿌연 입자로 흩어져 평화롭게 무진을 떠돌았다.

  사는 일이 잘 닦인 유리창처럼 명확하고 똑 부러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합리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며, 미래도 확실히 보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롯이 길이 보인다면---실패도 절망도 없고 타인 때문에 내가 답답해질 일도 휘둘릴 일도 없을텐데.

  안개를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 모닥불을 피워 증발시킬까, 대형 선풍기를 돌려 날려 버릴까. 지금까지 아무도 안개를 물리쳤다는 사람은 없다. 안개가 없다면 진정 행복할까? 아니, 끔찍했다. 수술대 위 환자의 환부를 모자이크 처리 없이 볼 때처럼.

  이길 수 없다면 타협해야 한다. 어릴 적 연막차를 쫓아가며 즐거워했던 것처럼, 안개, 밤안개, 물안개, 안개 속의 데이트, Foggy Highway---노래를 즐겼던 것처럼, 검은 커피 속에 하얀 우유나 생크림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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