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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쬐는 태양 아래 논물은 끓는 듯 뜨겁고, 심겨져 있는 벼 포기들이 설익은 낱알들을 감아 안고, 한여름을 견디어 내고 있다. 농부의 하루는 바쁘기만 한데, 긴낮의 길이에 밀려, 짧아진 밤은 고단한 농부의 밤잠을 감질나게 한다.
밤이 되어도 쉬지 식지 않는 더위로, 금방 등목을 하고 난 몸이 어느새 땀으로 번들거리는데, 타는 쑥 연기 사이사이로 모기들이 지치지 않고 달려든다. 실컷 잠든 듯하던 농부는 습관처럼 철석철석 손바닥을 때려 모기를 쫓지만, 끝내는 몰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떨어진다. 모깃불을 중심으로 모여 앉았던 이들도 하나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모깃불도 사위어 가는데 쏟아질 듯 은하수가 고요한 한여름 밤하늘을 지키고 있었다.
이튿날, 어제 저녁에 뜬 회색달이 채 지기도 전에, 붉게 퍼지는 동녘의 햇살이 오늘도 만만치 않게 뜨거운 하루를 예고하는 듯하다. 햇살이 더 퍼지기 전에 어제 끝을 못 낸 밭갈이를 나가야 되니 어미는 새벽에 일어나 서둘러 개다리 소반에 고봉밥 얹어 머리맡으로 들이밀며 젊은 농부를 깨운다. 몇 번을 흔들어 깨우니, 눈도 못 뜬 농부 하는 말 “자리 깔구 자라구?” 얼마나 달게 또 모자란 잠을 잤는지 짐작이 되는 말이다. 요즘엔 보기 드문 일이긴 하지만…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
학창 시절 체육시간이 오전에 들어있는 날,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난 나른한 오후는, 견디기 힘든 졸음과의 전쟁이기 쉽다. 특별히 오후 시간이 좋아하는 과목이든지, 선생님이 재밌으시든지, 아니면 조는 아이에게 분필을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러 무섭게 하지 않으면, 졸음이란 녀석의 공격은 그야말로 참기 힘든 고문이었다. 결국엔 머리를 끄덕여 졸기도 하고 책을 방패 삼아 눈속임으로 꾀를 부려보기도 한다.
나는 국어시간을 좋아하고, 또 선생님도 좋아했었는데, 그날은, 드르륵 문 열고 들어오시는 선생님을 뵌 것 같았는데, 아득하게 반장의 차렷 경례 소리를 들은 후가 기억이 끊겼다. 어수선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고 계셨다. 잠깐, 정말 찰나 같은 한 시간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후 교무실에서 사적으로 만난 국어 선생님 “너 아주 자_알 주무시더라, 아주 꿈까지 꾸는 것 같던데…” 옆에 계시던 다른 선생님들이 한마디씩 거들며 놀려댔었다. 나는 왜 교무실을 갔었는지조차 잊고 도망치듯 되돌아왔었다. 정말 보시고 하는 말씀인지, 아니면 놀리는 목적으로 하시는 소린지, 교실에 돌아오자 선생님이 보셨음 직한 그 자리에 서 보니 내가 자고 있었던 모습을 보신 게 확실했다. 왜냐하면 내 자리는 맨 앞줄 교탁 바로 앞 자리였으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그 말은, 어디에든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란 걸 알았다.
그렇게 달던 잠은 다 어디로 가고 주치의 처방전대로 때론 수면 유도제를 먹기도 한다. 이번엔 가서 약효가 떨어진 듯하니 단위를 좀 높여달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갔었는데, 젊은 인도인 주치의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이, 아주 애교스럽게 웃으며 지금부턴 약을 반으로 줄였으면 좋겠단다. 거짓말하려다 들킨 아이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왔다.
내 안엔 두 종류의 내가 있다. 잠을 자려고 애쓰는 나와, 잠을 안 들려고 버티는 또 다른 나. 안 자려고 버티는 내가 이기는 걸 나는 불면증이라 한다. 잠은 타의에 의해서 못 이루면, 대단한 형벌이 되어서 중죄인을 다룰 때 때론, 잠을 안 재운다 하니 잠은 어떤 형태로 보이는 것은 없지만 무한한 힘을 가진 듯하다. 옛날 유럽의 기사들은 “자고 있는 사람은 적이라도 베지 않는다”는 룰이었었다 하니 어쩌면 잠을 신성시하는 일종의 “기사의 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너무 억지로 잠을 자보려 애를 쓰다 보면 무지근하게 두통이 오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지난 옛날의 일들, 물론 아름다웠던 추억도 생각나지만, 그건 옛날의 얘기고 요즘의 불면의 밤엔, 되뇌고 싶지 않은 생각들이, 마치 쇠스랑에 찍혀 올라오는 뿌리채소처럼 뭉텅뭉텅 떠올라, 결국 부스스 머리에 새집을 지은 채 일어나 껐던 불을 다시 켜고 TV에도 불을 올린다.
오지 탐험을 주로 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틀에 한 번씩 잔다” 하던데, 그러고도 생활에 지장이 없이 그 험한 오지 탐험까지 한다니, 몇 시간을 자야 하고, 또 몇 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이론은 사람에 따라 다른가 생각해 본다.
나는 저녁 시간대에는 아무리 늦게, 그러니까 내일 자고 내일 일어난다 해도 무방하나, 한마디로 아침형 인간이 못 되어서 대부분의 일들을 할 수 있으면 있는 대로 아주 늦은 시간까지라도 하고 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도시락을 싼다든지 등교 준비로 일찍 일어나야 하는 부담이었지만 이제 그것과도 무관한 일상을 살며 편해졌다. “좀 늦게 일어난들…” 하지만 늦게 자도 늦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진다. 잠이 줄어든 게다. 그리고 낮에 잠깐씩 조는 낮잠도 한몫을 한다. 그렇게나 좋아하던 영화를 보면서도 중간중간 사연이 건너뛴다. 그런 행위는 젊어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리곤 저렇게 주인공 남자가 여자를 안아 옮기는 데도 잠이 깨지 않는, 그 잠을 자는 여자는 얼마나 깊은 잠을 자는 걸까 하고 단편적인 생각을 하곤 혼자 웃는다.
잠을 잘 자야 키도 크고, 머리 회전도 잘 된다던데… 하긴 젊어서 아기 키울 때 잘 자고 깬 아기는 발그레하게 상기된 볼에 기지개를 연신 켰었다. 방글방글 기분 좋은 웃음을 웃기도 하며, 엄마들은 그걸 보면 “키 큰다, 키 큰다.” 하며 좋아했었지… 그러고 보면 결과론적으로 볼 때 나는 아기 때 잠을 잘 자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작은 키가 증명하지 않는가?
수면에도 종류와 질이 있는 것 같다. 같은 불면의 밤이라도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의 달콤한 불면, 또는 일상 속에서 겪는 스트레스로 인한, 아니면 아픈 이들의 불면, 어떻든 이 모든 불면의 밤들은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이십사 시간 안에 지나간다. 다시 돌이킬 수도 없고, 같은 밤 같은 수면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잠은 보약이고 하루에 일곱여덟 시간을 자야 좋다는 말은 예로부터 들어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은 통계적일 뿐이지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수면이고 또 그 질인 것 같다.
어쩌다 버거운 일을 치른 날엔 쉬이 잠이 드는 때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너무 피곤해도 잠은 저만치서 기웃대기만 하지 가까이 오지 않는 경우도 흔히 있다. 즉 노동의 강도가 수면의 양과 꼭 비례하진 않는 것 같다.
수십 년 전 돌아가시기 전 시아버님이 여러 날 잠에 빠져 자손들이 걱정하고 있을 때, 문병 오신 친구분들이 “저승잠을 자고 있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 새댁이었던 나는 사전을 뒤적여 보았었다. “저승잠” 주무시다 떨치고 일어나신다는 건지 또는… 거기엔 의학 용어가 아니며 민간이나 문학에서 비유적으로 쓰는 말로, 업어가도 모를 잠,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할 임종 직전의 잠이라 쓰고 있었다. 신체 지능과 대사 활동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몸에 남은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수면 상태를 유지하는 잠이라 했다.
좋은 질의 잠은 낮 동안 쌓인 뇌 속의 독성 단백질을 씻어내며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데… 아! 치매
나는 치매라는 단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나이를 살고 있다. 좀 일찍 솎아지더라도 치매만큼은… 하지만 그것조차도 내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수치에 둔감하고 몸의 균형에도 빠른 반응이 어렵다. 의사의 치매 테스트도 받았다. 아직은 문제없으나, 마지막으로 잠은 잘 자느냐 묻는다. 간밤을 이유 없이 하얗게 밝힌 할머니가 움찔했다.
좋은 잠은 꼭 필요하긴 한 게 발달된 의학으로 판명된 일이다. 태초에 사람이 생길 때부터 우린 각자 다르긴 해도 시간을 할애해서 잠을 자곤 했다. 키가 커야 하는 아기는 아기대로, 휴식을 필요로 하는 일 많은 그들은 그들대로, 또 사랑하는 이들을 앞세운 이들은 만날 수 있는 길이 꿈길밖에 없고, 잠을 자야 꿈길로 열리는 것일 테니…
그냥, 그냥, 나는 기도한다.
먼 훗날 설핏 기우는 저녁노을에 창살 그림자가 거실 바닥에 길게 내려앉을 때, 빛깔 고운 무릎담요조차 버거워 보이는, 하얀 서리 머리에 인 작은 노인이 있다. 콧등에 걸쳐 있는 돋보기 아래 조글조글 주름 많고 작아진 손으로 받쳐 든, 금빛 갈피도 닳아 퇴색되어 있고, 화르르 넘어가는 장장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밑줄을 보이고, 가끔은 회한과 감사의 눈물로 얼룩진 낡은 성경책을 받쳐 든, 그 노인이 나이기를…
붉은 노을이 창살 그림자조차 거두어 안고 서산으로 넘어간다. 살포시 잠들어 안고 있는 그 책 떨어지는 소리에 무릎담요 끝에 코 박고 잠들어 있던 고양이가 게으르게 눈떠 올려다보곤 무심히 돌아눕는다. 깜빡 조는 잠이어도 아니 영원한 잠이면 더욱 좋겠다. 그 노인이 나이기를…
휘뿌연한 새벽 막 원고를 끝내고 한가로운 마음으로 따끈한 둥굴레차 한잔을 감싸 쥐고 뒷뜰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한 건의 부고가 뜬다.
아! 대모님이…
얼마 전 댁에 가 뵈었을 땐 똑똑한 발음으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보고 가” 하셨었는데 열흘 후 요양병원에 입원하셨을 땐 나를 몰라보셨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눈물 같은 웃음을 흘리고 돌아섰었는데…
긴 투병의 고통을 벗어놓으시고 평안한 잠을 주무시길 기도하며 훗날 가시는 길 뒤쪽에서 허둥대는 발소리 들리시면 뒤돌아봐 주시기를… 이 세상 속에서도 별로 여물지 못한 삶을 살고 뒤따라가는, 그게 저일 테니까요. 먼저 가시는 것일 뿐 이 세상일에 마지막이란 없으니 또 만나 뵙죠.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