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퇴직연금 제도인 키위세이버(KiwiSaver)가 국민의 전체 자산을 실제로 늘리고 있는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뉴질랜드 국민의 키위세이버 계좌에는 110억 달러가 유입됐고, 전체 잔액은 약 1,5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를 보면 키위세이버가 국민을 더 부유하게 만들고 있다는 답이 분명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에 가까워지고 일부 정당이 가입과 납입 의무화를 요구하면서, 키위세이버가 기대만큼 국민의 부를 늘리지 못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클랜드대학교 은퇴정책·연구센터의 공동 소장인 마이클 리틀우드는 뉴질랜드가 호주와 비교해 불리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호주는 더 높은 의무 납입률을 바탕으로 4조 호주달러가 넘는 퇴직자산을 축적했다. 호주의 퇴직연금 자산은 가계 금융자산의 49%를 차지하는 반면, 뉴질랜드의 키위세이버 비중은 11%에 그친다.
그러나 리틀우드는 호주의 경험이 퇴직연금 제도를 확대한다고 해서 반드시 국민이 더 부유해지거나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순자산은 소득의 9~10배 수준으로 비슷하다. 세계 성인 가운데 뉴질랜드 성인의 자산 중간값 순위는 4위로, 호주보다 한 단계 낮을 뿐이다.
리틀우드는 퇴직연금 제도가 납세자에게 상당한 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호주의 퇴직연금 세제 혜택으로 인한 정부 세수 감소는 연간 600억 호주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호주는 연금 수급자산 심사를 통해 연금 지출을 줄이고 있다. 호주 정부 예산에서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8.4%로, 뉴질랜드의 12.6%보다 낮다. 현재 제도가 유지될 경우 호주의 비율은 하락하는 반면 뉴질랜드의 비율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호주 가계의 부채는 소득의 177%까지 상승했지만, 뉴질랜드의 가계부채 비율은 20년 동안 125% 수준에 머물렀다.
리틀우드는 이러한 차이가 호주 국민들이 퇴직연금으로 부채를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해 더 오랫동안 부채를 부담하려는 경향을 보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키위세이버가 도입된 지 18년이 지난 시점에도 퇴직연금 자산이 1999년 수준으로 회귀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국민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저축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호주와 뉴질랜드의 제도 환경은 매우 다르지만, 두 제도가 납세자에게 부담시키는 총비용은 알려진 것만큼 큰 차이가 없고 최종 결과도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은퇴위원회는 지난해 은퇴정책을 검토하면서 키위세이버가 국민의 전체 경제 상황을 개선했는지 살펴봤다.
은퇴위원회는 2010년 자료를 활용한 초기 연구에서 키위세이버가 저축을 늘렸다는 증거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당시에는 제도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상당히 컸다.
다만 2010년 자료는 키위세이버가 도입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의 자료이기 때문에 제도의 효과를 충분히 평가하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았을 가능성이 있다. 2008년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의 영향도 자료에 반영됐을 수 있다.
현재의 키위세이버는 2010년 당시와 크게 달라졌지만, 최신 추정치가 없는 것은 관련 자료의 한계 때문이라고 은퇴위원회는 설명했다.
키위세이버가 성숙하면서 정부 보조금의 역할은 줄어들었고, 현재 계좌 잔액에서 새로운 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
은퇴위원회는 공식적인 모형 분석이나 장기간 추적 자료가 있어야 확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뉴질랜드에서는 키위세이버에 들어간 저축 가운데 추가로 새롭게 형성된 저축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원래라면 저축하지 않았을 ‘수동적 저축자’의 저축과 관련된다. 반면 ‘능동적 저축자’는 어차피 저축했을 사람들이 세제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 저축 방식을 바꾼 경우를 뜻한다.
키위세이버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자료도 점차 늘고 있다.
2023년 저축 형태와 관계없이 어떤 방식으로든 저축한 뉴질랜드 가계의 비율은 60%로, 2007년의 18%에서 크게 증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중간소득 계층에서 나타났다. 이들의 저축률은 9~15% 수준에서 54~69% 수준으로 높아졌다.
젊은층의 금융자산도 증가했다. 25~34세의 금융자산 중간값은 물가를 반영하면 2014년 9,000달러에서 2024년 2만2,000달러로 늘었다.
2016년 이후 키위세이버에 납입하는 가계 비율은 43%에서 59%로 상승했다. 다른 퇴직연금이나 운용형 펀드에 납입하는 비율은 6%에서 4%로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
키위세이버는 첫 주택 구매자들이 계약금을 마련하는 데도 점점 더 도움이 되는 제도로 자리 잡고 있다.
심플리시티의 샤무빌 이쿱 수석 경제학자는 키위세이버 납입금의 100%가 원래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저축이라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가 가계 저축률을 넓히고 젊은층의 자산을 늘렸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2026년 8월까지 12개월 동안 국세청을 통해 키위세이버에 납입된 금액은 111억 달러였다.
이 가운데 가입자가 납입한 금액은 68억 달러, 고용주 부담금은 38억 달러였으며 정부 부담금은 5억 달러였다.
이는 제도 초기와는 반대되는 구조다. 2008년 6월까지 1년 동안 키위세이버 유입액의 55%는 정부가 부담했으며, 다음 해에도 정부 부담 비율은 40%에 달했다.
매시대학교의 금융·은행 분야 전문가인 클레어 매슈스도 키위세이버가 저축률을 높였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키위세이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는 받기 어려웠을 고용주 부담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클랜드대학교 전 금융학 선임강사인 거트얀 페르딕트는 키위세이버가 전반적으로 금융시장에 참여하도록 장려하는 효과도 냈다고 평가했다.
Source: R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