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는 거대한 사건만 뉴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아흔을 넘긴 나이에 수천 킬로미터의 산길을 걷고, 우연히 발견한 작은 새 두 마리 때문에 하루아침에 ‘아빠’가 되기도 한다. 재난이 덮친 뒤 모두가 희망을 내려놓을 무렵 살아 있는 사람이 발견되고, 인간을 위해 실험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동물들이 비로소 숲과 가까운 곳에서 노년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수백 년 된 손부채 하나가 최첨단 전자제품을 제치고 다시 젊은이들의 손으로 돌아온다.
2026년 8월 31일부터 9월 6일까지 세계 곳곳에서 실제 보도된 뉴스 가운데에는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 시작은 미국의 한 산 정상이다.
91세 노인이 71번 넘어지고도 다시 정상에 섰다
8월 31일 미국 메인주의 Mount Katahdin 정상.
백발의 남성이 정상 표지판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이름은 Dale ‘Grey Beard’ Sanders. 나이는 91세였다.
그가 막 끝낸 길은 동네 산책로가 아니었다.
미국 남동부 조지아주에서 북동부 메인주까지 이어지는 Appalachian Trail, 전체 길이 약 2,193마일, 3,530km에 달하는 세계적인 장거리 트레일이었다.
Associated Press에 따르면 Sanders는 이번 도전으로 Appalachian Trail을 완주한 최고령자 기록을 다시 되찾았다. 그는 이미 2017년 82세 때 최고령 완주 기록을 세운 적이 있었지만 이후 다른 등산객에게 기록을 넘겨줬고, 다시 도전에 나섰다.
이번 도전은 결코 낭만적인 산책이 아니었다.
Sanders의 계산으로 그는 도중에 71차례 넘어졌다. 그중 여섯 번은 스스로 ‘심하게 넘어진 경우’라고 부를 정도였고, 한 번은 병원까지 가야 했다. 완주지점에서 불과 약 180m를 남겨두고 넘어지기도 했다.
6월 버몬트주의 바위지대를 내려오다 크게 넘어져 팔과 다리를 다쳤고, 몇 주 뒤에는 왼팔이 마비되는 증상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처음에는 뇌졸중 가능성까지 우려했으나 검사 결과 신경이 눌린 것으로 확인됐다. 한때 그는 포기를 생각했다.
그런 그를 다시 길로 돌려보낸 사람은 아내였다.
집으로 돌아온 Sanders에게 아내는 계속 걸으라고 격려했다.
그리고 결국 8월 31일, 그는 Mount Katahdin 정상에 도착했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마지막에 기록 자체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응원하고, 모르는 사람들이 음료와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온라인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그의 도전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Sanders는 자신 때문에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다는 사실이 기록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AP에 말했다.
그는 87세 때에는 87일 동안 미시시피강 전체를 노로 내려가는 기록도 세운 사람이다.
91세라는 숫자가 누구에게는 ‘이제 그만해야 하는 나이’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Sanders에게 그것은 단지 조금 더 천천히 걷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런데 같은 주, 뉴질랜드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걷기 친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장작을 가지러 갔다가 에뮤 두 마리의 ‘아빠’가 된 남자
뉴질랜드 동해안 Ruatoria에 사는 자연보호 활동가 Graeme Atkins에게 모든 것은 장작을 주우러 갔다가 시작됐다.
그가 차를 세운 곳 바로 옆에는 뜻밖에도 수컷 에뮤가 알을 품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과 차량에 놀란 수컷 에뮤는 자리를 떠났다.
Atkins가 발견한 둥지에는 약 12개의 알이 있었고 이 가운데 다섯 마리가 부화했다. 하지만 거센 날씨 속에서도 어미 역할을 하던 수컷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Atkins가 다시 둥지를 찾아갔을 때 상황은 더 나빴다.
야생 고양이가 갓 태어난 새끼들을 공격하고 있었고, 결국 살아남은 에뮤는 두 마리뿐이었다.
Atkins는 두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 자신도 에뮤를 키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먹이와 사육방법을 하나씩 배웠다. 새끼들에게는 지역의 산 이름을 따 Po와 Hautea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에뮤의 식단도 제법 건강하다.
Silverbeet와 kale, spinach를 먹고 딸기와 포도도 즐긴다. Atkins는 뒷마당에 울타리를 만들고 이틀마다 위치를 옮겨주며 새 풀이 있는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의 손자 Te Ahupo는 이제 두 에뮤의 운동 상대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됐다.
이 이야기에는 더 놀라운 배경이 있다.
Ruatoria 인근에는 원래 야생 에뮤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1990년대 이 지역의 한 농부가 에뮤 사육을 시도했다가 중단하면서 일부가 야생으로 퍼져나갔고, 이들의 후손이 약 30년 동안 Waiapu River 하구 주변에서 살아남아 번식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Atkins는 현재 Ruatoria 주변에 적어도 세 개의 에뮤 집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강바닥에서 거대한 새 발자국을 발견하고 “이게 대체 뭐냐”고 놀란 적도 있었다.
한 달 된 Po와 Hautea는 빠르게 자라고 있다.
Atkins의 예상대로라면 약 6개월 뒤에는 키가 5피트, 약 1.5m에 이를 수 있다.
장작 몇 개를 가지러 갔던 한 번의 우연한 선택이 한 남자의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은 셈이다.
그는 자신 때문에 수컷 에뮤가 둥지를 떠났다는 생각에 구조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때로 책임감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내가 원인의 일부였으니 내가 돌봐야겠다”는 아주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그보다 훨씬 절박한 장소에서도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기적에 가까운 장면이 만들어졌다.
재난 9~10일 뒤, 땅속에서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
네팔에서는 지난 8월 26일 거대한 홍수와 산사태가 히말라야 지역을 덮쳤다.
빙하 붕괴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홍수와 흙·암석의 흐름은 마을과 도로, 수력발전 시설을 휩쓸었다.
수많은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대재난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존자를 찾을 가능성도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9월 4일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구조대가 Trishuli River의 수력발전소와 연결된 지하 터널에서 두 명의 작업자를 살아서 구조한 것이다.
이들이 갇힌 지 9일 만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희망은 이어졌다.
AP는 재난 발생 10일 뒤, 중국인 남성과 또 다른 여성 생존자가 각각 구조됐다고 보도했다. 중국인 Lu Haitao는 약 225m 길이의 수력발전소 터널에서 네팔과 한국 구조팀의 도움으로 구조된 뒤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안정된 상태로 전해졌다. 다른 지역의 무너진 주택에서도 한 여성이 살아 발견됐다.
재난 자체는 너무나 큰 비극이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기적’이라는 한 단어로 낭만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구조대가 열흘 가까이 지나도록 탐색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실제 생존자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재난 현장에서 시간이 흐르면 구조는 점점 수색과 수습의 성격으로 바뀌기 쉽다.
그럼에도 “혹시 한 명이라도 더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땅을 파고 터널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작은 가능성이 실제 사람의 생명으로 돌아온 것이 이번 네팔 구조였다.
그런 ‘두 번째 기회’라는 말은 이번 주 아프리카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실험실에서 살던 침팬지들에게 찾아온 ‘두 번째 삶’
라이베리아의 맹그로브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섬들.
이곳에는 평범하지 않은 노년을 보내고 있는 침팬지들이 있다.
일부는 과거 B형 간염 백신 연구를 위한 실험에 사용됐던 침팬지들이다.
Associated Press는 9월 5일 이 침팬지들이 라이베리아의 Second Chance Chimpanzee Refuge에서 대규모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검사는 사람의 정기 건강검진 못지않다.
마취 상태에서 치아를 치료하고 X-ray를 촬영하며 혈액검사와 예방접종 등을 진행한다. 개별 침팬지의 건강상태를 확인해 앞으로의 관리계획도 세운다.
이 침팬지 가운데 상당수는 어린 시절 야생에서 포획돼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연구에 이용됐던 개체들이다.
동물보호단체 Humane World for Animals는 2015년 약 60마리의 침팬지에 대한 평생 보호 책임을 맡았고, 지금은 이들이 가능한 한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여생을 보내도록 관리하고 있다.
보호시설의 이름이 ‘Second Chance’, 즉 두 번째 기회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
침팬지들이 실험실에서 보낸 시간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도 없다.
대신 남은 시간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줄 수는 있다.
좋은 음식을 먹고, 햇빛을 받고, 다른 침팬지와 지내고, 아프면 치료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91세에 다시 산길에 오른 노인과, 구조된 에뮤, 열흘 만에 구조된 네팔의 생존자, 그리고 실험실을 떠난 침팬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야기지만 공통점이 있다.
한번 끝났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번 주 마지막 이야기는 훨씬 가볍다.
첨단기술의 시대에 수백 년 된 물건 하나가 다시 인기를 얻었다.
휴대용 선풍기 시대에 다시 돌아온 스페인의 ‘손부채’
2026년 여름 스페인은 극심한 더위에 시달렸다.
마드리드의 기온이 39℃ 안팎까지 오르는 날이 이어지자 지하철과 광장, 콘서트장과 축구경기장에서 사람들의 손에 비슷한 물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자식 휴대용 선풍기가 아니었다.
수백 년 동안 사용해온 스페인의 전통 접이식 부채, abanico였다.
AP에 따르면 이번 여름 abanico는 노년층뿐 아니라 젊은이 사이에서도 다시 일상적인 물건으로 자리 잡았다. 여성은 물론 남성 사용자도 늘었고, 음악축제와 대중교통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20세 여성 Ana Feliu는 여름이면 부채를 항상 들고 다닌다고 했다.
53세 남성 David González는 처음에는 부채가 주로 여성의 물건이라는 인식 때문에 조금 어색했지만, 사용해보니 실용적이고 기분까지 좋아진다고 말했다.
사실 접이식 부채 자체의 뿌리는 스페인에만 있지 않다.
역사가들은 15~16세기 포르투갈의 아시아 해상무역을 통해 접이식 부채가 유럽에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스페인에서 독자적인 산업과 문화가 발달했고, 19세기에는 플라멩코 공연에서도 중요한 소품으로 자리 잡았다.
마드리드에서 150년 넘게 부채를 판매해온 Casa de Diego에서는 단순한 나무 부채부터 손으로 정교하게 제작한 고급제품까지 판매한다.
가게 측은 전통 부채의 장점을 아주 현실적으로 설명했다.
배터리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전자제품은 가장 필요할 때 배터리가 떨어질 수 있지만 손부채는 손목만 움직이면 된다.
최신 기술이 넘치는 2026년에 사람들이 다시 수백 년 된 물건의 장점을 발견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새로운 것이 언제나 오래된 것보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작은 증명이기도 하다.
우리가 놀라는 이유는 ‘기록’보다 그 안의 사람 때문이다
이번 주의 다섯 이야기는 규모도 장소도 완전히 다르다.
미국에서는 91세 노인이 3,530km의 산길 끝에 정상에 섰다.
뉴질랜드 Ruatoria에서는 장작을 가지러 갔던 한 남자가 두 마리 에뮤의 보호자가 됐다.
네팔에서는 재난 발생 열흘 가까이 지난 뒤에도 생존자가 땅속에서 살아 돌아왔다.
라이베리아에서는 실험실에서 삶의 상당 부분을 보낸 침팬지들이 숲과 가까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거리에서는 수백 년 된 손부채가 다시 젊은 세대의 여름 필수품이 됐다.
처음 들으면 모두 “정말?”이라는 말이 나올 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놀라움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다른 부분이다.
넘어져도 다시 걷게 해준 사람의 의지와 주변의 응원, 우연한 실수를 책임지려는 마음, 생존 가능성이 작아져도 수색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이미 지나간 고통은 바꿀 수 없지만 남은 삶은 바꿔주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 전기도 필요 없는 오래된 부채처럼,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잠시 잊었던 해결책이 다시 필요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