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통보하면서 교묘한 언어를 사용해 실제 인상폭을 숨기는 이른바 '불투명한 마케팅'이 기승을 번지고 있어 소비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많은 소비자가 최근 기업들로부터 가격을 "조정(adjusting)"하거나 "변경(change)"한다는 안내 메일을 받고 있지만, 정확히 기존 가격에서 얼마가 오르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 불편을 겪는 상황이다.
웰링턴에 거주하는 직장인 제시카 씨는 최근 기업들의 '가격 업데이트' 통보 방식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제시카 씨는 "새로운 가격만 달랑 알려줄 뿐, 기존 가격이 얼마였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며 "소비자에게 이전 가격을 고지하도록 법적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비밀번호 관리 프로그램인 '대시레인(Dashlane)'과 여러 스트리밍 서비스로부터 이 같은 메일을 받았다며, "바쁜 일상 속에서 과거 은행 계좌 내역이나 결제 기록을 일일이 뒤져보지 않는 한 얼만큼 올랐는지 알 길이 없어 그냥 새 가격을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루 오라일리(오라일리앤코 대표)는 이러한 현상이 '고객 이탈에 대한 기업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라일리 대표는 "'가격 조정'이라는 표현은 소비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무의미한 언어적 장치일 뿐이며, 단지 '요금 인상'이라는 직설적인 메시지를 희석하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다수 소비자가 인플레이션과 원가 상승으로 인한 가격 인상 자체는 이해하지만, 진짜 문제는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직접 찾아내야 하는 번거로움에 좌절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 청구서를 찾아보게 만드는 수고를 끼치는 행위는 결국 브랜드에 대한 원망을 낳고 투명성이라는 장기적 신뢰 자산을 무너뜨린다는 설명이다.
보도 매시 대학교 마케팅 분석학의 보도 랑 교수는 이를 '의도적 불투명성(deliberately opaque)'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는 철저히 2단계로 작동합니다. 첫째, 법적 의무나 소비자의 눈을 의식해 가격 변동 사실 자체는 공지합니다. 둘째, 그러나 소비자가 명확히 알 수 없도록 모호한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합니다." 라고 말했다.
랑 교수는 이전 가격을 은폐함으로써 기업과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로 인해 소비자는 가격이 합리적인지,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는지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기업들은 대개 가격 인상, 품질 저하, 용량 줄이기(슈링크플레이션), 서비스 축소 등 '나쁜 소식'을 전할 때 이처럼 불투명한 태도를 취한다.
반면, 뉴질랜드 초콜릿 브랜드 '위타커스(Whittaker's)'의 사례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위타커스는 원가 상승 당시 "품질을 낮추고 가격을 유지할 것인가, 품질을 지키고 가격을 올릴 것인가"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브랜드 신뢰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랑 교수는 "대기업일수록 이러한 꼼수를 쓸 확률이 높으며, 동네 정육점이나 카페 같은 소상공인들은 오히려 투명하게 사정을 밝히는 편"이라며 "향후 AI 기술의 도입이 기업들로 하여금 이러한 '불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더 쉽고 정교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오클랜드 대학교의 마케팅 전문가 마이클 리 교수 역시 "기업들은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소식에는 극도로 명확하게 수치를 제시한다"며, 기업에 직접 문의해 이전 가격을 확인할 권리가 소비자에게 있지만 실제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문의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는 점을 기업들이 악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소비자 권익 단체인 '컨슈머 NZ(Consumer NZ)'의 대변인 제시카 워커는 현재 이러한 고지 방식 자체를 규제하는 명확한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기업이 가격 관련 주장으로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오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이러한 관행이 가격 인상 폭이나 실제 할인율을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 깊이 공감한다"고 덧붙였다.
Source: R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