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 언니가 오셨네

[275] 언니가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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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제법 살맛이 난다. 사람은 더불어 사는 사람이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면서…. 언니가 오셨다. 인생살이가 그렇듯이 한지붕 밑에서 철없을 때 같이 살아 본 이후 서로가 출가해서 각자의 인생을 살았다. 거의 반세기만에 오붓하게 한 이불 속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자매의 정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늙어 갈수록 어머니의 모습을 드러내는 언니가 어쩌면 어머니 같기도 해서 이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니의 함께하는 기분도 들고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살림 같지도 않은 엉터리 살림을 하다가 제법 아낙네다운 모습으로 주방을 서성이는 것도 즐겁고 그와 함께 음식다운 끼니를 맞이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아기처럼 내 뒤를 쫓아다니며 그러나 말썽을 부리는게 아니고 무슨 일이든 알아서 척척 뒷바라질 해 주시지 않는가. 지나간 긴 세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으니 그 동안 살아온 자잘한 이야기며 아이들 키워 시집 장가 보내고 살아간 이야기, “잘 다녀 와서 다시 만나요” 여기 떠나올 때 송별회를 해주시며 건강하게 보내 주시던 형부가 갑자기 병이 나서 돌아 가셨던 때의 안타까운 속사정 등, 할 이야기가 태산같다. 잉꼬처럼 다정하게 부부 정을 이어오던 분이 용케 잘도 견디어 내는 언니가 대견하기만 하다. 아내 사랑을 남유달리도 하시더니 어떻게 혼자 남겨 두고 눈 감으셨는지 그 길은 아무도 어쩔 수 없는 길이 잖은가. 일흔일곱의 노구임에도 백수를 사시려는 어머니 앞에서의 불효를 하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살아 보려는 의지와 싸우다가 지셨다는 가슴 무거운 이야기를 들으며 이 세상 떠날 때 순서 지키는 일도 그리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칠 년전이다, 두 분을 모시고 남섬여행을 갔을 때다 “마운트 쿡”에서 헬리콥터를 타자고 했더니 그 비싼 것 타고 신선이라도 되느냐며 사양을 하시더니 언니의 권유로 비행기에 올랐다. 빙하의 계곡을 누비다가 하얀 눈을 덮은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아이처럼 좋아하며 사진 찍어 달라고 보채시던 형부의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 거린다. 어찌 언니를 이 먼 길에 혼자 오도록 할 수가 있을까. 형부답지 않다고 살아 계신 분처럼 혼자 씁쓸해하는 내 마음을 언니는 모르시겠지.

  특별하게 남편 사랑은 무한히 받았지만 언니는 층층시하에 어려운 시집살이를 했다. 할머님이 구십넷인가에 돌아가셨는데 시어머님이 계셔도 남자처럼 바깥일만 좋아하시던 분이어서 할머님 모시는 일도 손주 며느리인 언니의 몫이었다. 조용하신 성품의 시아버님 떠나 보내고 시어머님이 구십일곱까지 장수하시어 언니는 칠십 넘어까지 시집살이를 해야만 했다. 오남매 잘 키워 시집 장가 다 보내 손주가 주렁주렁해도 어른 대우를 못 받고 며느리 자리 지키느라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다, 어디 그 뿐인가. 아이를 둘이나 낳은 신식 며느리는 맞벌이 하느라 아이들과 살림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나 몰라다. 이제 시어머님 저 세상 보내 드리고 칠십 넘어 시집살이에서 해방은 되었으나 몸도 지나치게 썼으니 고장이 안 날리없다. 다리가 아파 많이 고생하셨다. 그리고 이제서야 긴 휴가를 맡아 여기까지 오셨다. 목에 건 효부상 금목거리가 자랑스러워도 내 피붙이가 몸이 안 좋으니 그게 무슨 소용이람, 그러나 나는 자랑스럽다. 언니는 천생 여자로서 여자다운 삶을  모범으로 이룬 성공한 인생이다.

  남편에 대한 남으랄데 없는  추억을 가슴에 묻고 시어른들을 지극 정성으로 모셨던 보람된 삶을 살아왔기에 오남매 자식들 모두가 또한 어머니를 끔직한 사랑으로 받들지 않는가, 지난주 언니의 생일을 이 곳에서 맞았다. 아침부터 차례로 전화를 해 와서 온 종일 국제전화 받느라 바빴다. 몸은 비록 고달프고 힘들었어도 보람있은 인생을 사신 언니가 부럽다.

  요즈음 나를 따라 아침마다 십리 정도를 거뜬히 걸어내신다 보폭도 처음보다 좋고 몸놀림이 가볍고 유연하다. 퉁퉁 부어오른 무릎에서 물을 말리느라 병력이 만만치 않은 다리다. 여기 오실 때까지 객지에 나가 고생할까봐  많이 망서렸다는데 이게 웬일인가. 약을 한 봇따리 지어 들고 오셨는데 한 번도 안 드셨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그 동안 너무 힘들고 지쳤던게 틀림없다. 이번 휴가가 그렇게 멋지고 가볍게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어서어서 이 심술궂은 날씨가 개이고 화창해서 언니의 마음도 활짝 더 밝았으면 좋으련만…, 뉴질랜드의 온갖 꽃들아 한껏 피어나서 뽑내다오 그리고 새들아 목청껏 아름다운 노래로 내 언니를 더욱 기쁘게 해 주렴, 이 동생이 바치는 선물이 그 뿐이지만 욕심없는 언니가 바라는 것도 더 이상은 없겠기에 이 작은 소망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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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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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0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