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구조와 준법, 무엇이 우선일까?

서현 0 3,183 2015.10.2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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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6일(금) 카이코우라 지방법원에서는 한 헬리콥터 조종사의 항공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정 안팎에는 그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TV와 신문에서도 재판 진행과정을 폭넓게 보도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법정에 선 조종사를 지지하는 온라인 서명까지 진행 중인 이번 사건은 법과 현실 사이에서 그야말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사건 중 하나로 비쳐지면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사냥 중 생사의 기로에 처한 커플>
 
사건은 작년 4월 5일 남섬 동해안에 자리 잡은 카이코우라(Kaikoura) 북쪽 인근의 빽빽한 삼림 지대인 푸히 푸히(Puhi Puhi) 계곡에서 한 20대 사냥꾼이 추락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크라이스트처치 출신의 스코트 리(Scott Lee, 28)는 파트너인 리사 매켄지(Lisa McKenzie)와 함께 사냥에 나섰던 길이었는데 그만 급경사의 절벽 끝으로 추락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
 
그는 15m 가량 추락했지만 문제는 깊이 50m나 되는 절벽의 한쪽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로 더 이상의 추락을 막으려 파트너의 옷으로 간신히 나무에 몸을 묶은 채 버티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추락 과정에서 대퇴부가 골절되는 등 부상 상태도 아주 심해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구조가 요구되는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더 이상 추락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그를 구해낸 것은 당시 카이코우라에서 출동한 의사가 포함된 수색구조팀(LandSAR).
 
극히 안 좋았던 기상 상황에도 불구하고 헬기 편으로 현장에 투입된 이들은 어려운 작업 끝에 절벽에서 그를 끌어낸 후 들것으로 6시간이나 운반해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게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날아와 준 헬리콥터 조종사와 수색구조팀의 노력으로 무사히 구조돼 생명을 잃을 뻔한 위기를 모면했던 스코트 리에게 말도 안 되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얼마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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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이 먼저인가 법규 준수가 먼저인가?>
 
소식은 자신을 구하러 출동했던 헬리콥터 조종사가 기소돼 자칫하면 징역형까지 살 수도 있는 재판을 받게 됐다는 사실.
 
이유는 그가 당시 적법한 ‘건강증명서(medical certificate)’가 없었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출동했던 카이코우라 헬리콥터사의 데이브 암스트롱(Dave Armstrong, 63)은 2012년에 ‘가벼운 뇌졸중(mini stroke)’으로 추가 검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구조비행과 관련된 건강증명서가 유보된 상태였다.
 
재판정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그는 2012년 7월에 이 같은 사실이 발견돼 비행기 조종을 일시 정지 당한 상태에서 리를 구하기 위해 출동했었으며, 이후 그 해 6월에 비행을 허용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뜻밖의 소식을 들은 리는 카이코우라까지 단숨에 달려가 암스트롱을 만났으며 재판정과 민간항공국(Civil Aviation Authority, CAA)에 그가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간곡한 내용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했다.
 
암스트롱은 내 목숨을 구한 영웅이며 나와 파트너는 그에게 목숨의 빚을 지고 있다고 밝힌 그는, 당시 첫 번째 접근했던 헬기가 구조를 포기하고 돌아갔을 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암스트롱의 헬리콥터가 자신을 살렸다고 전했다.
 
그는 CAA는 생명의 가치를 얼마로 보는지 모르겠지만 암스트롱은 결코 유죄가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암스트롱은 이번 구조 외에도 여러 차례 구조 수색작전에 참여한 베테랑 조종사이다.
 
<위험 무릅쓴 비행 대가가 피고인석>
 
암스트롱이 구조에 나서던 당일은 날씨도 극히 안 좋았으며 당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먼저 출동했던 웨스트팩 구조 헬리콥터는 두터운 구름 속에서 조난자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한데다가 연료가 떨어져 귀환한 상황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출동 요청을 받게 된 그는 4인승 로빈슨 R44 헬리콥터에 의사와 구조대원을 각각 태우고 감독자로서 조종사 옆 자리에 앉아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경험이 적은 조종사가 제대로 조종을 하지 못하자 직접 조종간을 잡았다.
 
그가 조종간을 잡은 데에는 인명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작용했지만 함께 출동했던 의사이자 카이코우라 수색구조대의 일원인 마이크 모리시(Mike Morrissey)의 요청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공교롭게도 모리시는 그의 뇌졸중 증상을 처음 발견했던 의사였다.
 
모리시는 암스트롱이 조난지역 인근에서의 강수량 측정을 위해 몇 년 동안 매달 주기적으로 그 지역으로 비행해왔으며 자신들을 정확한 지역에 내려주었다고 말해 당시 상황에서는 그가 비행에 나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결국 몇 차례 비행을 통해 그가 내려 놓은 8명의 구조대원들이 조난자를 살렸지만 그의 행위는 CAA에 알려져 나중에 ‘운항기록부(flight-logs)’가 CAA를 대신한 경찰에 압수되고 항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까지 이르렀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의사인 모리시는 조난자를 그대로 하룻밤 동안 현장에 방치할 경우 생명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며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을 분명하게 밝혔으며, 구조에 동참했던 경찰관들도 기상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으며 암스트롱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고 전했다.
 
<온라인 청원에 나선 지지자들>
 
관련 항공법에 따르면 조종사는 인명이 경각에 달린 비상시에는 법을 위반할 수도 있지만 조종사가 건강증명서 자격이 없는 것을 포함해 합법적 비행자격이 없거나 비행기 자체가 비행에 적합한 자격(airworthy)이 부여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각각의 혐의에 대해 2년의 징역형이나 1만 달러까지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데 현재 이 법은 일부 조항에 대해 검토(review)가 진행 중이다.
 
또한 암스트롱을 처벌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An online Change.org petition)에는 10월 20일 현재 4,600명 이상이 서명한 상태이며, 현역 조종사를 포함한 비행 관계자들 다수도 모임을 만들어 캠페인을 벌이면서, CAA의 이번 처사는 책상에서 서류만 보는 관리들의 지극히 관료적 행동이라며 비난했다.
 
16일 열린 재판에서 암스트롱의 변호사는 주어진 3건의 법률 위반에 대한 혐의를 인정하면서, 그가 처벌을 받더라도 ‘유죄가 아닌(without conviction)’ 판결이 내려지길 요청한 반면 CAA 측에서는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암스트롱은 자신에게 향한 많은 사람들의 지지에 감사하다고 전했는데 그는 회사 대표이자 수석 조종사로 1990년에 카이코우라에서 헬기 한 대로 관광객을 상대로 한 고래 관람 비행을 시작했으며 현재 4대의 헬리콥터를 운용 중이다.
 
반면 비난 여론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CAA 측은 재판 중인 사항이라면서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는데 이번 사건에 대한 선고는 오는 12월에 크라이스트처치 지방법원에서 내려질 예정이다. 

남섬지국장 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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