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학교

JJW 0 1,927 2013.03.26 17:23

 
교육부는 지난해 문제의 연속이었다. 시행된 지 2년 밖에 안된 ‘내셔날 스탠다드(National Standards)’ 제도의 학교별 결과를 전격 공개하여 일선 초∙중학교들과 마찰을 빚는가 하면 학급 규모를 늘리겠다고 했다가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쳐 철회했다. 또 크라이스트처치 학교들의 통폐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이 지역 학교들의 반발을 샀고, 넬슨 지역의 지적 장애인 특수 여학교를 폐쇄하고 크라이스트처치의 특수 남학교에 편입하려 했다가 법원의 위법 판결을 받기도 했다. 교사들에 대한 급여 지급 시스템에 대한 결함이 발생하기도 했고, 연말에는 헤키아 파라타(Hekia Parata) 교육장관과의 갈등으로 레슬리 롱스톤(Lesley Longstone) 비서관이 사임했다. 교육부가 내년에 도입할 계획인 챠터스쿨(Charter School)도 일선 학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교육계의 또 다른 불씨가 되고 있다.
 
챠터스쿨은 공적자금으로 운영되는 자율형 공립학교

정부가 2011년 12월에 처음 발표한 챠터스쿨은 현행 뉴질랜드 공교육 체계에서 기존 학교들과는 다른 제3의 형태를 띠고 있다.

‘파트너쉽 스쿨(Partnership School)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을 가지고 있는 챠터스쿨은 계약을 통해 재정은 정부가 부담하고 운영은 민간이 하는 형태이다.

챠터스쿨을 운영하는 민간은 종교단체일 수도 있고 회사, 대학, 마오리 단체일 수도 있다.

정부와 검증된 챠터스쿨 운영주체와의 계약에는 계약 기간과 최대 학생수, 커리큘럼, 자격증 소유 교사 비율, 1~8학년 내셔날 스탠다드 보고 조항, 교육부의 중재 권한 등이 명시된다.

결국 챠터스쿨은 정부로부터 학교운영비를 받아서 사립학교 같은 형태로 운영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챠터스쿨은 학교설립자의 교육철학과 교장선발, 커리큘럼, 과외활동 등 많은 분야에서 제약이 없고 교사와 직원의 보수도 주어진 예산안에서 자체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

수업료는 공립학교와 같이 무료이고 신청자가 많을 경우 공평하게 추첨을 통해서 입학할 수 있다.
 
하위 20% 학생들 돕기 위해 챠터스쿨 도입

정부가 기존의 형태와는 다른 챠터스쿨을 굳이 도입하려고 하는 이유는 기존 교육방법으로는 구제하기 어려운 하위권 학생들의 학업 향상을 위해서이다.

뉴질랜드의 교육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말 영국 교육전문기관인 피어슨(Pearson)이 세계 주요 40개국을 상대로 실시한 교육 시스템 경쟁력 평가에서 뉴질랜드는 8위에 올랐다.

핀란드와 한국이 1, 2위를 차지한 이번 평가는 2006~2010년 사이에 치러진 국제 학력시험 결과와 각국의 대학 졸업률 등을 토대로 이뤄졌다.

좋은 평가를 받는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하위 20% 학생들의 성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터키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이다.

이들 학생들은 대부분 가난한 가정 출신이거나 마오리 또는 파시피카 출신 갈색 인종이다.

이들의 가난과 교육실패는 세대를 이어 반복되고 있고 기존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난 연말 사임의 뜻을 밝힌 롱스톤 비서관은 뉴질랜드 교육 시스템이 결코 세계적 수준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사실 롱스톤 비서관은 챠터스쿨 도입 등 교육행정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해 50만달러가 넘는 고액의 연봉을 주고 5년 계약으로 영국에서 초빙한 교육 전문가이다.

그러나 1년을 조금 넘긴 시점에서 파라타 장관과의 충돌로 갑자기 사임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상위의 학생들은 세계적으로도 뛰어나지만 하위 20% 학생들은 아무런 기술없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교육현실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70여년 전에 이미 챠터스쿨 필요성 제기

챠터스쿨은 현재 미국과 영국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뉴질랜드의 챠터스쿨은 미국 빈곤 지역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는 키프(Kipp, Knowledge is power programme) 모델을 따르고 있다.

1990년대 초에 미국의 대도시에서 공립교육의 질이 떨어지면서 제기된 가장 획기적인 대안이 챠터스쿨이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이미 1939년 당시 노동당 출신의 피터 프레이저(Peter Fraser) 총리가 새로운 교육방법으로 챠터스쿨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같은 사실은 국민당 정부가 챠터스쿨을 반대하는 노동당에 반박하는 좋은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국민당은 오래 전에 노동당 출신 총리가 공약했듯이 챠터스쿨은 성적이 좋든 나쁘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모든 사람이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무상교육을 받을 권리를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챠터스쿨은 국민당과 연정의 대가로 액트당이 요구하여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나 액트당의 총선 공약에도 없던 내용이다.

노동당은 선거 공약에도 없었던 챠터스쿨을 국민당 정부가 갑자기 추진하는데 의혹을 나타내며 챠터스쿨 설립을 허용하는 교육개정법이 챠터스쿨에 대한 느슨한 감독을 허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마치 맥도날드 학교에 영양학을, 모빌 학교에 기후변화를, 몬산토 학교에 유전공학을, 데스티니 처치 학교에 과학적 발견을 연구하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교육개정법은 챠터스쿨을 운영하는 ‘스폰서’에 대해 공적 조사를 면제해 주고 자격증이 없는 교사도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노동당은 크라이스트처치 지역 학교 통폐합 조치도 정부가 폐쇄된 곳에 챠터스쿨을 세우기 위해서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연합교육장관인 존 뱅크스(John Banks) 액트당 대표는 폐쇄 예정인 크라이스트처치 학교 지역에 챠터스쿨을 설립할 어떠한 계획도 없으며 고정된 기간으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챠터스쿨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은 확고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교육계 챠터스쿨 도입 반대의견 우세

교육계는 챠터스쿨이 공교육을 해체하고 가난한 학생들에 대한 실험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교육 경험이 부족한 단체나 극단적인 종교단체가 학교 운영을 할 수도 있고 자격이 없는 교사가 학생들을 잘못 가리킬 수 있다는 것이다.

챠터스쿨 도입을 반대하는 신문광고까지 냈던 고교교사협의회(PPTA)의 로빈 더프(Robin Duff) 전회장은 “가난한 학생들을 돕기 위한 챠터스쿨이 외국의 사례들에서 분명한 실패를 보여 주었다”며 챠터스쿨 도입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더프 전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교육 시스템으로 칭찬받는 핀란드의 비결은 1970년대부터 이미 ‘선택’ 교육이 아닌 ‘평등’ 교육을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동당의 교육 담당 크리스 힙킨스(Chris Hipkins) 대변인은 “우리는 이미 충분한 학교를 가지고 있다”며 “학생들을 챠터스쿨로 빼돌리면 결국 기존 학교들이 폐교하고 정부 예산이 학생 교육보다 새로운 학교건물 건축과 홍보비 등에 쓰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무부의 보고서도 챠터스쿨이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 회의적이며 인근 학교의 학생과 교사를 빼앗아 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보고서는 자격증이 없는 교사를 챠터스쿨에 허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양질의 교육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열린 국회교육과학위원회에서 미국 뉴올린스의 교육 운동가인 카렌 하퍼 로얄(Karran Harper Royal)은 “미국에서 챠터스쿨의 37%가 공립학교보다 성적이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며 “뉴질랜드가 같은 실패의 길을 밟을 이유가 없고 챠터스쿨은 마오리와 파시피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챠터스쿨 운영에 대해 이미 데스티니 처치 등 종교단체들과 미국의 학교 체인들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해 챠터스쿨 도입에 대한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의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특히 오클랜드 남부처럼 빈곤 지역 학부모들에게 좀더 많은 교육 옵션을 제공하겠지만 공교육 체계는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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