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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길 삼십분

오소영 0 692 2018.03.2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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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길 삼십분은 짧은 여행길이다.  

쾌적해서 기분좋게 타는 훼리(ferry). 감질나고 아쉽다. 

 

특별한 볼 일이 없으면 마냥 누워서 뒹구는 날이 있다. 그러나 편한 것은 잠시뿐. 몸과 마음이 바닥으로 처진다. 잠깐 눈붙인 오수(午睡)에는 두려운 악몽만 달겨들고. 갑자기 암담한 나락에서 헤맨다. 나이 무게에 짓눌린 헐헐한 영혼 때문일까? 

 

정신을 차리려면 일어나 밖으로 뛰쳐 나가야 한다. 갇힌 공간을 벗어나 사람들 속에 섞이고자 혼탁한 세상 속으로 다시 몸을 던진다. 

 

이럴 때, 한 시간이면 되돌아올 수 있는 뱃길 여행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배에 오르면 낯선 세상을 달려온 여행자의 마음으로 설렌다. 한 번도 본적없는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창가에 앉아 출렁이는 물살을 벗 삼아 뒤로 멀어지는 시티를 바라본다. 내가 발딛고 사는 땅을 잠시 벗어나 아주 먼 곳을 떠나는 것 같은 착각도 새롭다. 까만 어둠 속에서 저 도시를 바라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시드니’의 깨어나는 새 아침을 보던 때의 경이로움이 생각났다. 또 하루의 일출을 맞이하려는 도시의 꿈틀거림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어둠속에서 하나 둘 불빛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숫자가 늘어가면서 반딧불 동굴처럼 불꽃으로 화사해져 가는 도시. 천천히 솟아오르는 태양빛을 받으며 반짝이는  ‘오페라 하우스’의 모습이 보석처럼 빛났다. 각도를 잘 잡아 찍은 전문 사진가의 멋진 사진 한 장이었다. 

 

그 아름다움을 혼자서만 본다는게 얼마나 안타깝던지... 

 

“얼른 일어나셔요. 시드니가 열리는 저 멋진 걸 보셔야죠.” 호들갑을 떨며 일행들을 깨웠던 그 어느 해의 크루즈 여행. 

 

미끄러지듯 부두를 찾아 들어가는 배는 이미 그 곳을 지나쳤다. 

 

아침 잠이 유난히 단 내가 무슨 행운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갈매기들의 여유로운 날개짓. 멋진 곡예로 비상하며 파란 하늘을 수놓는다. 마치 내게 아양을 떨듯이.... 

 

저기 하얗게 긴 띠를 두른듯 따라오는 길은 밋션베이 로드다. 

 

그 길 끝이 누드 비치 언덕이다. 호기심으로 벼랑밑을 내려다보면 정말로 벌거숭이의 사람들이 보였다.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굉장한 문화의 충격을 받곤했다. 

 

대자연 앞에서 진짜 자연인이 되어 보려는 인간의 귀소본능 때문일까? 그 길을 달리는 차들이 장난감처럼 앙징스럽게 귀엽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웅장한 크루즈가  바다 한 가운데 버티고 서 있다. 너무 커서 부두에 정박하지 못한 떠다니는 호텔이다. 마치 하얀 섬이 하나 우뚝 솟아난듯 보인다. 그 규모로 보아 쉽게 볼 수 있는 만만한 크루즈가 아닌게 틀림없다. 

 

“삼만불짜리 세계일주 쿠르즈나 타보고 마지막 갑시다” 

 

아내에게 약속했다던 어느 남편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속절없이 저 세상 벌써 가 버렸다. 크루즈 이야기만 나오면 눈가가 촉촉해 지는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치 앞을 모르는게 인생이거늘. 지금 우리 나이가 얼마인데... 우리는 쓴 웃음을 흘렸다. 

 

배가 닿은 터미널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정말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바다 풍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양편 길가 카페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관광객을 손짓하는 갖가지 상품들이 오색으로 찬란하다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우리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알아서 데려다 달라”고 기사님한테 부탁했더니 섬 한 코스를 다 돌아 다시 데려다 준 곳이 여기였다. 카페겸 바에는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앉을 자리가 없다. 늙은이들 기웃거리기엔 과감한 용기가 필요했다. 

 

2번 버스던가? 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달려간다. 

 

인기척도 없고 집도 별로 없는 한적함만이 나그네를 반긴다. 나무 숲 우거진 등성이 밑으로 내려가면 거긴 정말 별천지의 세상이 펼쳐진다. 카렌다에서나 보았던 멋진 풍광에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둥그렇게 아담한 비치가 잔잔한 물을 품고 졸듯이 조용하다. 소리치면 들릴 것처럼 물건너 푸르른 마을이 건너다 보인다. 이쪽 낚시터의 새빨강 지붕이 그림처럼 물위에 떠있다.

 

보이는 사람 하나 없는데 식탁위에 하늘색 비치파라솔은 누가 펴놓았는 지? 누군가가 마시고 간 빈 프라스틱 컵 네 개가 심심함을 덜어준다. 

 

처음부터 그 숨겨진 비경을 찾은게 아니었다. 헝크러진 나무숲에 가려진 그 곳을 몇번이나 그냥 지나쳤었다.

 

같은 곳이지만 여행은 누구와 같이 가느냐에 따라 느낌도 기분도 달라진 다. 처지가 같은 동병상련의 말 통하는 친구와 함께라면 부담이 없어 좋다. 어떤 말이든 허물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점심 준비를 해 온 친구와 밥 먹을 자리를 찾다가 보물처럼 찾아낸 곳. 빛나는 우정에 내린 선물이었을까? 

 

어느 누구 우울 소리만 나오면 죽이 맞아 떠나는 우리들의 비밀 아지트.

 

‘와이헤케’ 

노인이란 호칭을 더께더께 무겁게 달고사는 우리들. 혼미해져 가는 영혼을 흔들어 깨워주는 멋진 밀애(?) 장소다. 

 

아직 미지의 1,3,4번 코스가 더 남아있다. 또 다시 숨어있는 비경을 찾아내야지. 어떤 정보도 없이 부닫히면서 찾아내는 쾌감을 모험처럼 즐기려고 한다. 

 

여지를 남겨두고 늘 호기심을 자극하는. 뱃길 삼십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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