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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주기율표

0 개 1,685 김준

학창시절 공부 좀 하셨던 분이라면 아직도 기억하실만한 ‘랩’이 하나 있습니다. 

 

‘수헬리베보탄질산불네나마알규....’ 

 

그렇습니다. 주기율표의 원소기호입니다. 시대에 따라 원소들 이름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고 유행하던 가요와 리듬에 따라 단락과 운율에 변화가 생기기도 했지만 화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주기율표는 아픔의 시작이요 눈물의 씨앗이었습니다. ^^ 

 

수업시간 전에는 잘 외워지는듯 했는데도 선생님 앞에만 서면 어쩌면 그리 머리속이 맑아지던지.. 서너번 더듬거리다가 얼굴이 빨개지고 나면 이 내 손바닥에도 회초리자국이 빨갛게 돗고는 했지요. 몇 번의 실패끝에 어찌어찌해서 테스트를 통과하고 나면 얼마나 속이 후련하고 마음이 뿌듯하던지요. 

 

어느 분께는 잊고 싶은 괴로운 추억일수도 있고 또 다른 분께는 목에 힘이 들어가는 자부심의 근원일수도 있었던 주기율표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118개의 원소들을 양성자의 숫자가 하나하나 늘어나는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놓은 일종의 표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표의 구성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조직적인지 심지어는 ‘주기율표를 다 이해하면 화학의 반을 이해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지요. 

 

그저 따분해 보이는 네모들의 결합이 사실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지식을 내포하고 있다 할까요.. 

 

그럼 이 주기율표는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요? 도대체 어느 누가 각각의 원자속에 존재하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들의 교묘하고도 조화로운 구성을 알아채서 하나하나 순서에 맞추어 배열해 놓은 걸까요? 

 

그 구성의 근본이야 물론 조물주의 놀라운 지혜이겠지만 그 지혜의 흔적을 추적해낸 그 누군가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드미트리 멘델례에프’ 단정한 짧은 머리에 빳빳한 교복 컬러를 칼같이 세우고 줄 맞춰 앉아 외우던 그 시절의 주기율표를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낸 러시아의 화학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일생은 단순히 한 명의 화학자라고 단언하기엔 조금 더 복잡한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물리학, 기술학, 경제학, 측지학, 석유의 채굴과 정제, 음악, 사진, 전시기획, 공예 등등 너무도 다양한 방면에서 전문가적인 두각을 나타내었던, 인류 역사의 여러 천재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각 방면에 대한 그의 능력이 얼마나 출중했던지 어떤 분들은 그를 천재적 공예가의 한 사람으로, 또 다른 분들은 러시아 산업혁명을 일군 경제학자로.. 여러 관심 분야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의 전문가로 기억되는 분이 멘델례에프 입니다. 

 

주기율표의 완성이 그의 모든 업적 중 가장 두드러진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위대한 발견의 배경엔 세상 모든것에 끝없이 매료되고 그 모든 것들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의 독특한 학문적 개방성이 존재했습니다. 

 

다시말해 화학사에 길이 남을 그의 발견은 물리, 철학, 종교학, 예술 등등 그리 직접적이지 않은 많은 이질적인 것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당시 과학계의 큰 흐름은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원자들의 발견 이었습니다. 원자가 물질의 구성 단위인것은 밝혀졌지만 도대체 몇 종류의 원자들이 자연계에 존재하는지는 알지 못했기에 닥치는 대로 하나하나 찾아내는 수 밖에는 없었던 거지요.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길 가다가 이상한 돌이 하나 보이면 실험실로 냉큼 들고가서 부수고 가루내어 분석해서 새로운 원자를 찾아내는.. 그런 방식으로 발견을 하다보니 들인 공과 시간에 비해 그 결과는 초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평생을 다 바쳐도 원자 몇 개 발견할 수 없는 지극히 비 제적인 연구 활동이 계속되다 보니 급기야는 일부 화학자들이 자신이 세상의 모든 원자들을 발견했으며 더 이상의 새로운 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몇 년뒤 새로운 분석방법에 의해 또 다른 원자가 발견되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다시 한 번 정리가 되는가 싶더니만 또 다른게 튀어 나오고... 결국 몇 십개 되지 않는 원자들을 어떻게든 꿰 맞추어 나름의 도표를 만들어 보려 했던 여러 시도들은 그야말로 시도로 끝이 나곤 했습니다.  

 

이런 지리하고 멸렬한 원자 발견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어이없게도 ‘발견의 끝’이 아니라 ‘강박의 끝’이었습니다. 바로 멘델례에프의 개방적 사고가 세상 모든 원자를 밝히 드러내야 원소들의 도표를 만들 수 있다는 강박관 념에 종식을 고했기 때문입니다. 

 

멘델례에프는 그 동안 발견되었던 모든 원자들의 성질이 양성자의 숫자에 따라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는 비슷한 성질을 가진 원소들을 세로 줄로 나란히 묶어 만든 주기율표를 제작했는데 그의 도표는 다른 화학자들이 주창했던 이전의 도표들과는 달리 듬성듬성 빠진 자리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되풀이되는 일정 한 패턴에 맞추어 원소들을 배열하다보니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들은 빈자리로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그의 이가 빠진 주기율표는 다른이들의 조롱을 사기도 했으나 그도 잠시, 새로 발견되는 원소들마다 멘델례에프가 예견한 성질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주기율표의 빈자리에 딱딱 들어맞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견된 원소들을 채굴(이미 그 정체를 알고 있으므로)하는 작업은 그의 사후에도 계속 이어져 현대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드미트리 멘델례에프를 ‘주기율표의 아버지’라 부르며 기념합니다. 멘델례에프가 이러한 영광스러운 별칭을 획득하게 된 것은 그가 자연계의 모든 원자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원자들의 크기에 따라 화학적 특성의 흐름인 ‘주기율성’ 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이 발견하고, 알고 있고, 연구했던 원소들 이 세상의 ‘모든’원소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는, 빈 자리 뻥뻥 뚫린 주기율표에 ‘아직 발견 못함’이라는 자기인식의 솔직함을 적어 넣은 겸손함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화학자들이 진실의 가치 보다 높은 곳에 자신들의 명예를 세우려 안간힘을 쓸 때 그는 정반대의 논리로 물질계를 바라 보았고 진실의 고귀함을 위해 자신의 얄팍한 명예를 포기했습니다. 

 

2017년 한 해의 마지막 컬럼을 쓰며 우리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아이들에게, 그리고 저의 졸문을 애정어린 마음 으로 읽어주시는 부모님들께 어떤 이야기를 펼쳐 놓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생각의 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가다가 결국 다다른 곳은 ‘스스로를 인정함’이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저 뿐아니라 그 어느 누구라도 아쉬움이 남을수 밖에 없는 사건들을 기억하게 됩니다. 운이 없었기 때문에, 시기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에, 심지어는 누구누구 때문에 실패하고, 놓쳐버리고, 기가 꺽인 사건과 사고들은 작게는 자존감에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크게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원치않는 선택을 종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 고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 중 몇몇은 세상으로 나가는 생애 첫 관문에서 희망과 현실 사이의 심각한 차이때문에 절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이 주는 무게 보다는 더 밝은 미래를 바라보고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교육의 원리이겠지만 스무살도 채 되지않은 어린나이에 인생의 가능성보다 한계를 먼저 경험했다면 공부고 인생이고 다 집어치우라며 좌절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도 미완성의 인격체들입니다. 그 완성의 시기가 언제일른지는 알수 없지만 (대다수의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랑스러운 작은 인간들은 성숙해야만 하는 당위를 안고 살아가는, 그래서 스스로의 미숙함을 권리로 내세울 수 있는 종족입니다. 

 

오늘의 실패와 실망이 항상 그러하리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들이며 그러기에 오늘의 실패에 눈물을 흘릴 수는 있을지언 정 날개를 접을수는 없는 존재들입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해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온 2017년은 또렷한 원칙이 없이 듬성 듬성 지어놓은 징검다리일 수도 있고 여기저기 빈 칸들이 엉뚱하게 자리잡은 멘델례에프의 주기율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젠 지난 한 해의 불완전함에 더 이상 묶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주기율표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스스로의 인생이 완벽할 수 없었음을 겸손하게 인정했으면 합니다. ‘아직 이루지 못했음’이라는 솔직한 자기인식의 표찰을 번듯한 결과가 없이 텅 비어있는 과거의 어느시간과 사건 붙일수 있을 때에야 그 빈자리의 의미가 구체화되고 다음 단계를 살아가는 목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멘델례에프의 주기율표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원소들의 빈 자리로 인해 완벽했듯이 사랑하는 우리의 아이들의 인생 또한 아직은 이루지 못한 목표로 인해 완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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