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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랬었지

0 개 1,253 여디디야

잔잔한 이야기 (17)

해외에서 살다 보면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돌아와도 그저 다른 날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와는 달리 고작 떡만두국이나 송편에 잡채랑 모듬전, 갈비찜 그리고 약식 정도 만드는 것으로 그런대로 족한 듯 하다. 그런데 이 음식들은 평소에도 가끔 해 먹는 것이어서 별로 명절 음식이다 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긴 올해 이 나라에선 처음으로 송편을 만들어 보긴 했지만 생각 외로 작품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두 접시 만들려고 할 바에는 차라리 한국 마트에서 사다 먹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송편보다 인절미를 더 좋아하니 더 이상 송편 만들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요즘 한국은 김장철이어서 나의 절친은 백 포기나 되는 한 접 양의 배추를 구입하여 언니네와 두 집 김장을 함께 하느라 무척 힘도 들고 즐겁고 바빴다고 한다.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는 김장 하는 날이면 항상 양지머리 사다가 무우 넣고 푹 끓인 쇠고기 무우국, 굴을 넣고 버무린 겉저리, 그리고 통삼겹살을 사다가 돼지고기 수육을 만들어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이 김장하는 날의 고정 메뉴였다. 

 

절여 놓았던 배추를 씻어 물을 뺀 후에 배추 켜켜에 속을 넣는 날에는 오빠까지 온 식구가 총동원 되어 돕기도 했고,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처럼 도와주러 오기도 했다.

 

월동 준비로 김장을 하면 겨울 내내 때로는 이른 봄이 되도록 기본 반찬이 준비되는 것이니 비록 며칠간 고생은 하지만 그 김치가 가득 채워져 있음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가! 

 

김치 찌게, 김치 볶음밥, 콩비지 찌게, 김치 빈대떡, 김치 만두, 감자탕, 메밀전병, 김치를 넣은 김밥, 김치국, 순두부 찌게, 두부 김치 등등… 그리고 고등어나 꽁치 통조림에 김치를 넣고 조림을 만들어 보니 너무 맛이 있었다. (요리 강좌도 아닌 데 왜 이렇게 음식 이야기가 나오는 지 모르겠다 ^^)

 

김장을 담근 후에는 온 몸에 배어 있는 냄새와 피곤을 없애러 목욕탕에 가서 한증탕에서 땀을 내고 집에 돌아왔던 일도 생각이 난다. 예전에는 그랬었다.

 

그런가하면 예전에는 딸 보다 아들을 우선으로 여기곤 했다. 나의 아버지 역시 전형적인 그런 분이셨는 데, 아들의 경우에는 결혼한 후에 살 집을 한 채씩 사서 장만해 주시곤 했는 데,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혼수감 잘 챙겨서 시집 보내면 그만이었다.

 

큰 오빠가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에는 항상 아버지는 병원비를 모두 다 지불해 주셨다. 아들인 데다가 특별히 장남이어서 그러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결혼한 둘째 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경우에는 한 푼도 도움을 주지 않으셨는데 나는 아버지의 아들과 딸을 차별 대우 하시는 것이 너무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무서운 아버지 앞에 앉아서 큰 오빠의 경우에는 병원비를 모두 내 주시면서 왜 형편이 어려운 둘째 언니에게는 병원비로 사용하라고 한 푼도 주지 않으시느냐고 말씀 드렸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세 명의 오빠와 두 언니, 동생 모두 아버지를 무서워했었고 나 역시 아버지를 무서워 했었는 데 그 날 입바른 소리를 하고 나서 부터는 나 혼자 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하핫!


아버지는 마음 속으로는 나를 대견해 하시고 무척 사랑해 주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친척 어른들이 오시면 아버지는 나에 대하여 잠깐 이야기를 하시며 칭찬하시는 것을 듣기도 했다.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명절이 되면 모두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모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하시던 그대로 하셨던 것 같다. 


이를테면 설날에 자식들이 세배를 하면 아들에게는 세뱃돈을 딸에게 주시는 것보다 더 많이 주셨던 것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 데 그도 그럴 것이 시집 가지 않은 딸인 나는 아들과 동격으로 대우하셨기에 몰랐던 것이다.


예전에는 유산 상속 받을 때도 그 당시 법으로는 시집 간 딸은 아들이 받는 유산의 4분의 1을 받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에는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유산 상속이 이루어져서 그동안 상속법이 변경됨으로 아들과 같은 금액으로 받게 되었었다.


아무튼 어머니 앞에서 세배를 하고 온 막내 올케가 내 방으로 와서 어머니가 세뱃돈을 주셨다며 보여주었다. 나는 어머니 방으로 가서 큰 언니와 어머니께 세배를 했더니 세뱃돈을 주셨는 데 막내 올케가 받은 금액이랑 다르기에 아무런 말 없이 그냥 돌려 드렸다. 


차별대우 받음이 싫었던 것이었는데, 옆에 있던 큰 언니는 영문도 모르고 내 얼굴을 쳐다 보더니 이상하다 싶었는지 큰 언니도 어머니께 세뱃돈을 돌려 드렸다. 어머니는 화를 내시더니 “이제부터 세뱃돈 주지 않는다”라고 하셨고 결국 없어졌다.


나는 그 때 마음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네에, 지당하십니다. 어머니! 결혼해서 아이들까지 둔 장성한 자식들이 세배를 하고 세뱃돈 받아 가는 것보다 도리어 어머니께 드려야지요. 세뱃돈은 어린 손주들에게만 주시면 되지요. 7 남매 키우느라 아버지랑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요. 재물이 넉넉하고 많이 있다 하더라도 자식들이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기회도 주셔야지요.”라는... 


생각 같아서는 “어머니께 세배드리며 오히려 어머니께 드리자”라고 말하고 싶었는 데 내가 7 남매 중 6 번째이다 보니 소극적이었던 나로서는 말 꺼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언젠가 기도를 하고 있는 데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외에  “어머니께도 내가 받는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려라”는 마음을 주셨다. 


나는 그 때부터 어머니께 다달이 드리게 되었다. 그 당시 어머니는 재정적으로 전혀 궁핍하지 않으셨지만 어머니 몫의 많은 유산을 오빠가 차지하게 된 후에는 미약하나마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기억은 나의 삶 중에 기뻤던 일 중의 하나다. 어머니를 살아 생전에 섬길 수 있어서 감사했고, 어머니께 자식으로서 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고…


친구로 부터 김장을 했다는 말을 듣고 예전에는 그랬었던 이야기 몇 가지를 글로 쓰다 보니 아련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서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4장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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