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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물결 효과, 고맙다

새움터 0 576 2017.11.07 11:17

 ♥ 정인화의 민낯 보이기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편해서 좋긴 한데 발전이 없다. 내용만 보면 같은 일의 반복이다. 언제 여기를 떠날 수 있을까. 오늘도 공상이다. 그 놈의 은행 빚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모습에 짜증이 몰려온다. 숨이 막힌다. 

 

공원에 앉아 책을 붙들고 있다. 글은 읽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책을 베개 삼아 눕는다. 파란 하늘은 조금씩 사라지고 보르네오 정글이 나타난다. 오랑우탄이 보고 싶다. 여행이나 가볼까. 눈이 절로 떠진다. 

 

나이 들어 가치의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모험을 해볼까. 직장을 때려치울까. 생각의 끝을 가보면 항상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그러면 현실적인 문제는...’머리 안은 복잡하다. 절망감은 아니지만 괜히 우울해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 질문은 요사이 내 인생의 화두다. 언제부터인가 ‘무엇’을 위해보다는 ‘왜’와 ‘어떻게’살아야 하냐에 더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이란 영화를 관객으로만  만나지 말고  직접 감독하며 아름답게 만들어 보고 싶다. 

 

사회 복지사 뿐만 아니라 심리 치료사와 심리 상담사도 변화의 대리인(agent of change)이다. 나름대로 사회의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많이 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무리 소리쳐도 메아리만 들려올 때가 많다. 

 

기득권과 하는 논쟁은 번번이 힘들다. 피곤하고 짜증스럽다. 자기 계발서의 지은이들은 할 수 있는 부분만 찾아 변화를 꾀하라고 주장한다.

 

‘가장 쉬운 곳이 타인이 아니라 본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그뿐만 아니라, “행동과 사고의 장단점을 인식, 인정하면서 소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온전함을 느끼라”는 답도 준다.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설명도 첨가해준다. 참 고맙고 깨어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식을 쫓다보면 가끔 화가 난다.

 

나만 바뀌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얘기하는거 같아 기분이 나빠진다. 불공평하다.

 

‘당신들은 훈계하는대로 살고있어’라는 의심의 눈길도 보낸다.  이럴 때는 변하지도 않는 세상을 상대로 발길질이라도 해본다. 대부분은 후회하지만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이 질문에서 아직 자유스럽지 않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을 때 이 물음은 나를 짓누른다. 발전하고픈 이상과 현실의 만족 사이에서 갈등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살고 싶다. 안전한 직장이지만 과감하게 박차고 떠나야 하나. 

 

동료가 쪽지하나 건넨다. 전에 나를 만났던 피상담자라고 한다. 누굴까. 

“Thank you for your presence in my life. I would not be here if I had not met you. I am happy now and am seeing more beauty in life.” (감사합니다. 선생님을 안 만났으면 저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요. 지금 행복하고 세상이 아름다와요.) 

 

가슴이 뭉클하다.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엷은 웃음이 스친다.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내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들은 상담실 안에서 무슨 얘기를 한지는 기억에 없으나 변했다고 한다. 공통으로 본인부터 시작한 변화가 가족의 행복을 가져왔다고도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잔물결의 효과’(rippling effects)가 생각난다. 우리 각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 그 변화가 다른 사람에게도 파문처럼 퍼진다는 말이다. 나로 인해 변화가 조금이라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아직도 답이 없다. 매사추세츠 의과 대학의 명예 교수인 존 카밧진(Jon Kabat-Jin)은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의 창시자다. 

 

그는“마음챙김은 의도적으로 현재 순간에 판단을 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생각과 욕구를 멈추고 관찰자로써 자신에게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당분간은 조바심을 내지 말고 마음의 흐름을 봐야겠다. 

 

생활이 힘들고 변화가 없는 경우에는 능력을 인정받으며 알려지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린다. 이런 순간에는 잡(job)과 커리어(career)사이에서 고민한다. 

 

또한, 나한테 감사해하는 피상담자들을 잊어버리며 그들의 얘기에 흥미를 잃곤 했던 모습이 지나친다. 공감없이 기계적으로 대했다. 후회한다. 아직은 돈벌이를 위해 나를 소모시키고 싶지는 않다. 

 

삶의 방향을 돌아보게 한 쪽지의 주인에게 감사한다. 변화의 대리인으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발전 하고픈 의지가 솟는다.  나도 잔잔한 물결에 영향을 받았나 보다. 

 

오늘은 동네 바닷가에 들려야겠다. 편평한 돌을 한두 개 던져볼까. 어릴 때 개울가에서 물수제비(stone skipping)를 하던 게 떠오른다. 

 

오랜만에 어깨 근육이나 풀어봐야지. 돌이 물에 닿을 때 그 파문도 보자고 생각하며 상담실 건물을 나선다. 

 

* 새움터 회원 정인화는 1991년 뉴질랜드에 이민와서 스무 해 가까이 상담과 심리치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움터는 정신 건강의  건전한 이해를 위한 홍보와 교육을 하는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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