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박종배
정석현
정동희
한일수
정윤성
크리스티나 리
Shean Shim
송영림
김준
엔젤라 김
오클랜드 문학회
박현득
박명윤
김영안
Mina Yang
써니 림
여디디야
강명화
새움터
수선재
휴람
봉원곤
마리리
김임수
이윤수
조성현
박기태
유영준
성태용
김철환
피터 황
Jane Jo
신지수
오즈커리어
Jessica Phuang
김수동
박승욱경관
최성길
동진
이동온
김지향
이현숙
한 얼
빡 늘
CruisePro

‘나’라는 말

오클랜드 문학회 0 322 2017.10.25 18:30

심 보선

 

나는 ‘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판돈인 양

나는 인생에 ‘나’라는 말을 걸고 숱한 내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주 간혹 나는 ‘나’라는 말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밤에 침대에 누워 내가 ‘나’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지평선처럼 아득하게

더 멀게는 지평선 너머 떠나온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나’라는 말이 공중보다는 밑바닥에 놓여 있을 때가 더 좋습니다.

나는 어제 산책을 나갔다가 흙 길 위에

누군가 잔가지로 써 놓은 ‘나’라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그 말을 쓸 때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그 역시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거나

홀로 나아갈 지평선을 바라보며

땅 위에 ‘나’라고 썼던 것이겠지요.

나는 문득 그 말을 보호해 주고 싶어서

자갈들을 주워 주위에 빙 둘러 놓았습니다.

물론 하루도 채 안 돼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서

혹은 어느 무심한 발길에 의해 그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나는 ‘나’라는 말이 양각일 때보다는 음각일 때가 더 좋습니다.

사라질 운명을 감수하고 쓰인 그 말을

나는 내가 낳아 본 적도 없는 아기처럼 아끼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나’라는 말을 가장 숭배할 때는

그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하여

당신의 온몸을 한 바퀴 돈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내게 되돌려질 때입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이 없다면,

나는 ‘나’를 말할 때마다

무(無)로 향하는 컴컴한 돌계단을 한 칸씩 밟아 내려가겠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은 내게 미소를 지으며

‘너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압니다. 나는 오늘 밤,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물인 양

‘너는 말이야’, ‘너는 말이야’를 수없이 되뇌며

죽음보다도 평화로운 잠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입니다.

 

■ 오클랜드문학회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021 1880 850 digdak@hotmail.com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플러스 광고

Bodycare Clinic 내몸사랑 클리닉
카이로프랙터, 물리치료, 한의사, 마사지,클리닉, ACC, 피지오, 통증, 내몸사랑, Bodycare T. 094104770 093691313
AMS AUTOMOTIVE LTD
전자 제어, 컴퓨터스캔, 사고수리(판넬페인트, 보험수리), 타이어, WOF , 일반정비  T. 09 825 0007
KS Trans Co. LTD (KS 운송 (주))
KS TRANSPORT / KS 운송 (YEONGWOONG Co. Ltd) T. 0800 479 248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댓글 0 | 조회 1,467 | 2018.09.14
김중식밤늦게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 더보기

장마

댓글 0 | 조회 182 | 2018.08.24
김주대아버지만 당신의 생애를 모를 뿐 우리는 아버지의 삼개월 길면 일 년을 모두 알고 있었다 누이는 설거지통에다가도 국그릇에다가도 눈물을 찔끔거렸고 눈물이 날려고 하면 어머니는 아… 더보기

물빛

댓글 0 | 조회 152 | 2018.08.09
마 종기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냇물에 섞인 나는 물… 더보기

40년 만의 사랑 고백

댓글 0 | 조회 358 | 2018.07.27
성 백군한 시간 반이면 되는 산책길 다이아몬드 헤드를 한 바퀴 도는 데 세 시간 걸렸다 길가 오푼마켓에서 곁눈질하고 오다가다 스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일일이 간섭하고 쉼터에서 잠시… 더보기

안개 속에 숨다

댓글 0 | 조회 383 | 2018.07.15
류시화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 더보기

체 게바라 생각

댓글 0 | 조회 257 | 2018.06.30
주 영국삶은 달걀을 먹을 때마다체게바라 생각에 목이 멘다볼리비아의 밀림에서 체가 붙잡힐 때소총보다 더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는삶은 달걀 두개가 든 국방색 반합밀림에 뜬 애기 달 같은… 더보기

바람의 냄새

댓글 0 | 조회 263 | 2018.06.17
윤의섭이 바람의 냄새를 맡아보라어느 성소(聖所)를 지나오며 품었던곰팡내와오랜 세월 거듭 부활하며 얻은무덤 냄새를달콤한 장미향에서 누군가마지막 숨에 머금었던 아직 따뜻한 미련까지바람… 더보기

마당을 쓸며 Sweeping the Yard

댓글 0 | 조회 519 | 2018.05.27
이 산하옛날 할아버지들은아침에 일어나면 마당부터 쓸었다.매일 쓸지만 어느새 또 어지럽다.오랜만에 집 청소를 한다.잠시 두 가지 방법을 놓고 고민한다.빗자루로 쓰레기를 밖으로 밀어내… 더보기

혼례

댓글 0 | 조회 752 | 2018.05.13
복 효근이른 아침 미나리아재비꽃대에 갈고리나비 한 쌍 신혼방을 차렸다미나리아재비꽃망울 솜털이 가늘게 떤다꽃에서 꽃으로 날며꽃들이 피어나는 허공쯤에 문패를 걸고자갈고리 닮은 날개를 … 더보기

고독의 온도

댓글 0 | 조회 533 | 2018.04.27
문정희침대에 나를 눕힌다두 팔로 내가 나를 안아본다무엇이 여기까지 나를 끌고 왔을까오랫동안 시(詩)에게 물어보았지만시는 답을 주지 않았다내 몸을 흐르는 36도 5부고독의 온도는 왜… 더보기

예술가들

댓글 0 | 조회 478 | 2018.04.13
심보선우리는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모든 것을 똑같이 견디진 않아요.방구석에 번지는 고요의 넓이.쪽창으로 들어온 별의 길이.각자 알아서 회복하는 병가의 나날들.우리에게 세습된 건 재산… 더보기

지하도로 숨다

댓글 0 | 조회 383 | 2018.03.30
장정일공습같이 하늘의 피 같은 소낙비가 쏟아진다그러자 민방위 훈련하듯 우산 없는 행인들이마구잡이로 뛰어 달리며 비 그칠 자리를 찾는다나는 오래 생각하며 마땅한 장소를 물색할 여유도… 더보기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2

댓글 0 | 조회 555 | 2018.03.14
김승희아침에 눈을 뜨면 세계가 있다.아침에 눈뜨면 당연의 세계가 있다.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있다.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거기에 있다.당연의 세계는 왜, 거기에,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더보기

길에 관한 독서

댓글 0 | 조회 201 | 2018.02.28
이 문재1한때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주곤 했을 때어둠에도 매워지는 푸른 고추밭 같은 심정으로아무 데서나 길을 내려서곤 하였다떠나가고 나면 언제나 암호로 남아 버리던 사랑을이름… 더보기

때로 나는 지루한 서정이 싫다네

댓글 0 | 조회 231 | 2018.01.31
김 용택시냇가에 파란 새 풀이 돋아나고풀잎 끝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물은풀잎들 사이를 지나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오, 내 사랑은 어디에서 어디를 지나 내게로 와 이리 슬프게 내 몸에 … 더보기

날아라, 시간의 우울한 포충망에 붙잡힌 우울한 몽상이여

댓글 0 | 조회 356 | 2018.01.18
장 석주1신생의 아이들이 이마를 빛내며동편 서편 흩어지는 바람속을 질주한다짧은 겨울해 덧없이 지고너무 오래된 이 세상 다시 저문다인가 근처를 내려오는 죽음 몇 뿌리소리없이 밤눈만 … 더보기

찬란

댓글 0 | 조회 250 | 2017.12.20
이 병률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오래도록 내 뼈에 … 더보기

그집 앞

댓글 0 | 조회 278 | 2017.12.07
글쓴이: 기 형도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나 그 술집 잊으려네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사내들… 더보기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댓글 0 | 조회 346 | 2017.11.22
글쓴이 : 류근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친구여 나는 시가 오지 않는 강의실에서당대의 승차권을 기다리다 세월 버리고더러는 술집과 실패한 사랑 사이에서몸도 미래도 조금은 … 더보기

우리 살던 옛집 지붕

댓글 0 | 조회 605 | 2017.11.08
이 문재 떠나오면서부터 그 집은 빈집이 되었지만강이 그리울 때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강이나 바다의 높이로 그 옛집 푸른 지붕은 역시반짝여 주곤 했다가령 내가 어떤 힘으로 버림받고… 더보기

현재 ‘나’라는 말

댓글 0 | 조회 323 | 2017.10.25
심 보선나는 ‘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내게 주어진 유일한 판돈인 양나는 인생에 ‘나’라는 말을 걸고 숱한 내기를 해왔습니다.하지만 아주 간혹 나는 ‘나’라는 말이 좋아… 더보기

가수는 입을 다무네

댓글 0 | 조회 572 | 2017.10.11
기 형도걸어가면서도 나는 기억할 수 있네그때 나의 노래 죄다 비극이었으나단순한 여자들은 나를 둘러쌌네행복한 난투극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어리석었던 청춘을, 나는 욕하지 않으리흰 김이… 더보기

갈색가방이 있던 역

댓글 0 | 조회 407 | 2017.09.27
심 보선 작업에 몰두하던 소년은스크린도어 위의 시를 읽을 시간도 없었네갈색 가방 속의 컵라면과나무젓가락과 스텐수저.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아니, 고작 그게 전부야?”읽… 더보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삶을 위하여

댓글 0 | 조회 444 | 2017.09.13
채 성병한때는 밥 먹듯이 詩를 쓸 때가 있었다詩를 쓰면서 詩가 곧 밥이라 생각했다아니다, 아니다 詩는 결코 밥이 될 수 없고밥은 詩가 될 수 없지만아니다,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더보기

경계를 넘어

댓글 0 | 조회 462 | 2017.08.23
송 경동 나는 내 것이 아니다.오늘은 평택 쌀과 서산 육쪽마늘과영동 포도와 중국산 두부와칠레산 고등어를 먹었다내 뼈와 살과 피와 내장과상념도 실상 모두 이렇게태어난 실뿌리가 다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