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과 봄을 잃어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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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그 해 겨울과 봄을 잃어 버렸네

0 개 1,155 한일수

개인의 운명은 각자 의지의 산물이다. 

운명처럼 되어버린 그날 12월 9일, 

54세 생일에 뉴질랜드로 왔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 54년을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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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만드는 것은 해와 달, 사회는 모자이크, 인생은 하나의 종잇조각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데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것은 영원성이다. 그 영원성의 한 점의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개인 인생이다. 그 개인 인생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사회는 역사를 써내려 간다. 그리고 그 역사는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단순한 것 같은 뉴질랜드 생활이지만 해와 달이 너무 빨리 뜨고 지는 것 같다. 월요일이 지나더니 바로 주말이 다가오고 연초 신년 인사 나눈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휩싸인다. 지나온 뉴질랜드 생활을 헤어보니 어언 22년 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이민 온 후 3년 만에 뉴질랜드 태생의 외손자를 보게 되었고 그 아이를 갓난애 때부터 캐어(Care)를 해왔는데 이미 칼리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진학하였으며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앞으로 22년이라는 세월이 다시 흐른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지 생각해본다. 지나온 세월과 같이 앞으로의 세월도 순식간에 지날 것이며 오히려 더 빨리 지나갈 것으로 짐작된다.

 

이민 오던 해에는 겨울과 봄을 잃어버렸다. 뉴질랜드에 정착하러 온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첫 해에는 두 계절을 건너뛰었을 것이다. 1995년 12월 8일 김포 공항에서 한국 생활과 작별을 고했다. 

 

공항에는 친척 친지 등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까지도…….

 

이민 이삿짐을 꾸리기 전에 두 번 뉴질랜드에 다녀왔고 3-4개월 후에는 비즈니스 관계로 다시 한국에 다녀올 참이었다. 서울의 살던 집은 아직 팔리지도 않았고 아내의 직장도 정리가 안 된 상태였다. 두 아이도 그대로 서울에 남아 있고 군대에서 막 제대한 막내만이 뉴질랜드 대학 진학을 위해서 먼저 떠난 상태였다. 

 

이민 이삿짐은 선박 편으로 보내졌고 나는 마치 해외 출장을 떠나듯이 혼자 태평양을 건너 왔는데 그것이 나의 반생을 마감하고 새로운 반생을 시작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겨울이 짙어갈 무렵 12월에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 왔더니 한창 여름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가을 겨울로 이어졌으니 완전히 계절이 뒤바뀐 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게 된 것이다.

 

개인의 운명은 각자 의지의 산물이다. 의지가 강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국가 사회의 운명을 개인이 비켜갈 수는 없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발발과 더불어 태어나서 해방과 6.25 전쟁 참화를 온 몸으로 체득하고 청년기에 4.19, 5.16, 10월 유신 등 역사의 전환점에서 긴장의 끈을 풀 수 없는 세월을 보냈다.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미래의 꿈을 펼쳐보고자 해외 유학길에 부딪쳐보기도 하고 결혼 초에는 미국 이민 길을 답사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마음대로 풀려 갈리는 만무하였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생활인으로서 직장에 매달릴 수밖에…….

 

이민 병은 이민을 가야 낫는 병이다(?). 1984년도에 미국에 단기 연수차 다녀온 일이 있었다. 그 때 이미 미국에 대한 환상은 접었다. 광대한 국토, 풍부한 자원, 선진화된 시스템으로 세계 사람들이 동경하는 사회같이 보였지만 내부는 치유할 수 없는 병폐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흑백 문제, 총기 문제, 치안 문제, 사회적 갈등의 깊은 골 등은 아무리 풍요를 누리는 미국 사회이지만 쉽게 해결 할 수 없는 일로 판단되었다. 1993년 말에 다시 미국을 여행하였는데 그 때 미국은 아니지만 다른 대안이 있으면 해외 이주를 실천해보겠다는 꿈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그리고 그 대안으로 떠오른 꿈의 나라가 뉴질랜드가 되었다.

 

1986년 정초에 향후 인생계획(Life plan)을 작성해서 안방 벽에 붙여놓았다. 자기개발 측면, 사회활동 측면, 가정적인 측면의 세 분야로 나누어 년도 별로 달성해야 될 목표를 2036년까지 모눈종이에 기록한 것이다. 

 

그 때 당시 45세의 나이인데 95세가 되는 향후 50년 계획을 세운 것이다. 아내가 그걸 보더니 누가 보면 창피하니까 웃기지 말고 치우라고 했다. 그래서 사무실 책상 유리판 밑에 깔아 놓고 매일 매일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그 때 계획했던 일들이 거의 비슷하게 이루어졌다.

 

뉴질랜드에 온 후 12년차 2007년 정월에는 인생계획을 108세까지로 수정해서 2049년까지 42년 향후 계획을 수립했다. 그 후 다시 10년이 지나 금년 기준으로 32년 남은 인생을 실천할 처지이다. 건강에 대한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의료 기술의 발달로 앞으로는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도래 할 전망이다. 

 

그래서 평균 수명보다 약간 기대치를 높여서 108세를 목표로 계획을 수립한데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고 본다. 그리고 예로부터 108세를 일컫는 다수(茶壽)라는 말이 있는 걸보면 과거에도 108세를 누리는 장수자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평균 수명이 80이 넘는 현재에 앞으로 30년 후를 고려해서 108세를 목표를 잡은 것이다.

 

과거에는 흔히 그러했듯이 출생 신고가 1년 늦게 되었다. 그래서 족보 나이와 호적 나이는 다르다. 음력 생일은 1941년 10월 20일인데 출생 신고는 1942년 11월 27일로 되어 있다. 선친께서 그렇게 한 것인데 아마 출생 당시 양력 일자가 잘 못 기재된 것 같다. 달력 표를 보면 1941년 음력 10월 20일은 양력으로 12월 9일에 해당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운명의 날자 인 것 같다. 1995년 12월 8일 서울을 떠나 12월 9일 뉴질랜드에 도착했는데 이는 정확히 한국에서 만 54년 생애를 마감하고 후반 54년 인생을 뉴질랜드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108세로 인생 계획을 세우게 된 것도 나의 운명이 이끄는 바에 따른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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