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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2010. 18:21 NZ코리아포스트 (222.♡.77.149)
왕하지의 볼멘소리
요즘, 강 사장은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모른다.
엊그제 태어난 것 같은 늦둥이가 잘 자라 집 안팎을 얼마나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지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것이다. 내가 이름을 잘 지어줘서 그런지 너무 똘똘하고 착하기까지 하다. 지난 주말에 강 사장 집에 갔더니 늦둥이가 파리채를 들고 파리를 잡으러 다니고 있었다. 아빠가 파리를 잡는 것을 보고 금방 배운 모양이다. 내가 강 사장 무르팍을 가리키며 “여기 파리 있다.”라고 말하자 잽싸게 달려와 아빠 무르팍을 파리채로 힘차게 두들겨 팬다.
아들한테 두들겨 맞아도 강 사장은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딸만 넷인데 늦둥이 아들이 하나 생겼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가진 건 돈하고 시간 밖에 없겠다 신선노름이 따로 없지, 그 정도면 아이들과 바쁘게 살고 있는 부인을 위해서 설거지라도 잘 해주면 좋으련만 손가락 하나 까닥 안하고 아들과 노닥거리기만 한다. 부인이 집에 없으면 라면도 끓일 줄 몰라 그냥 굶는다고 한다. 그렇게 굶어도 기운은 있는지 그 나이에 아들을 낳았으니 할 말이 없다.
병원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연락을 받은 강 사장은 찌지직하고 전기에 감전 된 것처럼 한참동안 멍하니 있다 가 손오공이 되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덕에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아내는 병원에서 영어 통역하며 산모 간호해주느라고 이틀 밤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삼시세끼를 스스로 챙겨 먹어야 하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밥이야 밥통에 가득 해 놓고, 국은 가마솥이 넘치도록 끓여 놓았으니 매 끼니마다 그 밥에 그 국을 퍼먹었다. 먹는 것은 그렇다 치고 설거지 하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인가, 병원에서 돌아온 아내가 주방을 보고 깜짝 놀란다.
"어머~ 왜 이렇게 주방이 깨끗해? 당신이 설거지 다 했어?"
개수대에 밥그릇 하나, 국그릇 하나, 커피 잔 하나, 수저, 젓가락 한개 그렇게 한 끼 먹은 그릇만 들어있으니 다섯 끼 먹은 그릇은 내가 다 설거지를 한 셈이었다.
반찬이야 김치 냉장고에서 통째로 꺼내다 먹고 넣어 두니 설거지 할 그릇이 안 생겼다. 먹은 밥그릇에 또 밥 퍼서 먹고, 먹은 국그릇에 또 국 퍼서 먹고, 마신 커피 잔에 또 커피 타서 마시고, 수저와 젓가락도 이틀째 계속 먹고 그러니 뭐 설거지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불편한 것은 밥그릇에 붙어 있는 딱딱해진 밥풀이 수저에 묻어 입 속으로 같이 들어갈 때 어금니가 조금 아프긴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만했다.
요즘은 어머니가 계시니 설거지에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또 하나의 색다른 문제가 발생된다. 어머니는 빈 그릇만 보면 설거지를 안 하고는 못 배기시는데 문제는 설거지한 그릇이 지저분하다는 것이다. 그릇에 고추 가루가 한두 개 묻어 있거나 얼룩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아내는 또 이것을 보고 못 견딘다는 것이다. 아내는 어머니가 설거지를 못 하도록 막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는데 난들 그것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그런데 진짜 설거지 잘하는 남자는 따로 있었다.
주말에 오클랜드에서 딸이 왔고 주방에서는 오래간만에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온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맛있게 음식을 다 먹었을 때 손자가 주방으로 덤벙 덤벙 걸어가더니 고무장갑을 낀다. 식구들이 모두 놀라 바라보는데 손자는 그 많은 그릇을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너 뭐해? 어디 아파?”
“쟤가 왜 저래? 평소 안 하던 짓을 하고~”
집안 식구들이 웃느라고 정신이 없어도 손자는 끄떡 안하고 설거지를 몽땅 해 치운다. 오늘 설거지는 엄마 몫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를 위하여 설거지 할 생각을 한 모양이다. 할미는 항상 부려 먹으면서 엄마를 위해서는 설거지까지 할 생각을 하고... 이런 고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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