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개
3,222
23/02/2010. 10:22 NZ 코리아포스트 (219.♡.216.169)
왕하지의 볼멘소리
어머니가 삶아 말리신 고사리를 한국의 형님 댁에 보냈다. 설날아침 아버님 차례를 지낼 때 제사상에 올려 놓으니 아버님도 뉴질랜드산 고사리를 맛 보셨을 거다.
아내는 매일 저녁에 걷기운동을 하는데 고사리를 따다보면 운동이 덜 된다고 하여 내가 아내를 따라 나섰다. 도로가를 한 4~5 키로 씩 걷다보면 한 움큼 따게 된다. 매일 걷기운동을 하는 내가 대견스럽다는 듯이 아내가 말을 한다.
“당신 매일 운동하니까 몸도 개운하고 잠도 잘 오고 좋지?”
“다 어머니 덕분이지 뭐... ”
어머니가 항상 심심해 하시니까 고사리를 따오면 삶아서 말리시느라고 시간을 잘 보내신다.
어느 날 아내가 세일한다고 재봉틀을 사 왔다. 그런데 아내는 재봉틀 사용을 별로 안 하였다. 찢어진 옷들을 꿰매 달라고 부탁해도 다음에 해준다고 미루었다. 아니, 재봉틀을 뭐 하러 산거야? 비싼 돈 주고... 나의 불평에도 눈 하나 까딱 안하고 무조건 다음으로 미루는 이유는 재봉질 할 거 무지 많이 모아 놓았다가 왕창 한 번에 처리한다는 깊은 뜻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찢어진 바지만 입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한국 같으면 '거지' 소리를 들었을 텐데...
어느 날 옷장에서 재봉틀을 꺼내서 살펴보니 재봉틀이 너무 좋았다. 재봉질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고 재봉질이 너무 잘되어 그동안 쌓아 둔 옷을 몽땅 고쳤다. 팔꿈치가 많이 찢어진 긴 남방은 팔을 잘라 반팔 남방으로 만들고 무릎팍이 많이 떨어진 바지는 반바지로 만들고, 얻어 놓은 바지들도 기장은 줄이고 허리는 늘리고...(이런, 몸매 다 나오네...)
내가 고친 옷들을 아내가 바라보더니
"아이고~ 재봉틀 정말 잘 샀네. 내 옷도 좀 고쳐줘~“
아내는 자기 옷이며 찢어진 가방이며 한 보따리를 꺼내 놓았다. 좌우간 바느질 할 것을 엄청 쌓아 놓고 있었다. 고쳐 놓은 옷들을 바라보며 마냥 즐거워하는 아내의 모습이 아, 이제 바느질에서 해방이야~ 뭐 이런 표정이었다. 아... 찢어진 바지입고 끝까지 버텼어야 했는데...
아내가 물었다.
"당신 어쩜 이렇게 재봉질을 잘해?"
"다 어머니 덕분이지..."
중학교 때 나는 청바지가 입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사 달라고 말해도 거절할 게 뻔하지만 너무 입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 말했다. 만약 청바지를 사 주신다면 우리 반에서 1등 하겠노라고, 그러나 그 조건은 어머니에게 안 먹혀 들어갔다.
"너 공장 다닐래? 청바지 입고... 학생 놈이 교복 입으면 됐지, 쯔쯧,"
그 당시는 학교에 못 가고 청바지입고 공장에 다니는 우리 또래들도 참 많았다.
방과 후 친구들은 사복을 입고 놀러 다닐 때 나는 늘 검정색 교복을 입고 다녀서 동네 어른들은 나를 모범생이라고 불렀다.
그때 나는 집안구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낡은 재봉틀을 꺼내었다.
어른이 입던 찢어진 청바지를 얻어다가 땜빵을 하고 교복 바지 크기에 맞추어 재봉질을 했더니 멋진 청바지가 되었다. 빛 바랜 교복도 뒤집으니 검정색이 생생히 살아 있었다. 차이나칼라를 떼어버리고 멋진 재킷을 만들었다. 친구들이 어디서 얼마주고 샀냐고 난리들이었다. 그 뒤로 친구들 바지를 나팔바지로 고쳐 주고 아이스크림도 많이 얻어먹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커튼이 너무 얇아 두꺼운 천으로 새로 만들었는데 아내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다 어머니 덕분이야, 우리 아들은 사 달라는 옷 다 사주고 키웠더니 재봉질도 못해~ 장가가서 색시한테 구박이나 안 받을지... 쯔쯧,”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