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특별했던 날의 긴 하루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그 특별했던 날의 긴 하루

0 개 1,390 오소영

평상시 외출에는 버스가 마냥 편하다. 그 날은 상황이 달라서 서둘러 차를 몰고 나서야 했다. 며칠전, 새로 개통된 워터뷰(water viwe)터널을 신선한 기분으로 달렸다. 제법 긴 터널을 신나게 거의 다 빠져나오려는 순간이다. 갑자기 차에서 기분나쁜 소음이 들려왔다. 속력이 뚝 떨어졌다. 뒤의 차들이 계속해서 앞지르기로 달린다. (드디어 때가 왔나보구나...) 차가 다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티쪽으로 빠지는 고가가 유난히 높았다. 더는 못 구르겠다고 버티는 차를 간신히 끌고 올라가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세울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어쩌지?....겁이 덜컥났다. 운전대 잡고 굴리는 것 말고는 차에 대해서 아는게 없질 않은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머리가 띵 했다. 이런 때는 누가 옆에 있기라도 했으면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외로움 같은게 밀려왔다. (침착하자) 조금씩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연거푸 심호흡을 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일부터 처리를 해야 할 것인지 하나씩 순서대로 머리속에 정리를 했다. 제일먼저 다친 다리를 끌고나와 기다릴 딸애에게 전화를 했다. 발목을 삐여 급하게 침을 맞히려 가려던 참이었다.

 

“엄마 어떻게 해?...”걱정하는 물음에 긴 대답할 시간조차 아꼈다. 다음엔 한의원에 알렸다. 아이를 픽업해 치료해 주시겠다는 말씀이 무척 고마웠다. 더불어 AA에 연락이 힘들면 도와줄테니 알리라는 친절함까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책을 뒤져 전화번호를 찾고 전화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톡톡 차창을 두드린다. 경찰이 온 모양인가? 하고 시선을 돌렸다.

 

밝은 주황색 조끼에 헬멧을 쓴 중년의 남자였다.시동을 걸어보더니 별문제 없다고 고개를 갸웃해 보인다. 그 때 뒤에 있던 또 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가리겼다. 

 

왼쪽 뒷바퀴가 납작하게 주저앉아 있는게 아닌가. 아하 펑크였구나 !... 큰 불안에서 조금은 느긋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래서 올려다보면 아득한 고가 위. 막힌데없는 칼바람이 매섭게 달겨들었다. 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

 

그들은 나를 얌전히 차에 앉히고 걱정하지 말란다. 어느 공장으로 갈 것인지?. 출장비도 제법 만만찮을텐데... 이런저런 걱정으로 나는 AA에 연락을 원했다. 그 말을 신경써 듣지도 않는것 같았다. 알았다고 하면서 15분만 기다리란다.

 

30분쯤. 수시간을 보낸것 같은 지루함 속이었다. 거대한 몸체의 견인차가 어느틈에 시야를 막고 서 있다. 분에 넘치는 남자들의 환대였다. 

 

높다란 견인차에 나를 먼저 올려 태웠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 늙음을 들킨것 같아 잠깐 자존심이 꿈틀됐지만 그리 기분 나쁜건 아니었다. 마치 검은 갯벌에 방게들이 움직이는 것 같은 작은 차들을 그윽히 내려다보며 달리는 재미가 그럴듯했다. 특별한(?) 사람만이 타보는 이 차. 나는 두 번 째다.

 

십 년쯤 전이다. 친구분의 차에 동승해서‘실버데일’의 친지집을 방문했다. 종일 잘 놀고 저녁까지 먹은뒤 돌아오는 길이었다.

 

해동갑을 해서 나오니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씽씽 잘 달리던 차에 갑자기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못 가겠다고 버텼다. 알바니 어디쯤이었다. 차에서 내릴 수밖에... 길 옆에서는 늦저녁 바람에 헝크러진 마른 푸서리가 무수히 술렁댔다. 둥지를 찾아가는 게으른 새일까? 푸드득 머리 위에서 놀램을 주기도 했다. 급하게 조치하는 친구를 멀찍이. 밤풍경이 낯설은 나는 어둠을 헤치고 품속으로 안겨오는 바람이 몹시도 상쾌했다. 묘한 쾌감에 콧노래가 나올 것도 같았다. 

 

내가 이런 기분이란 걸 알면 조금도 미안해 하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 많이들 미안해 한다고 들었다. 귀가를 서두르는 차들의 빨강 꼬리 등을 보면서 재미있어 손뼉이라도 치고싶은데... 기다림 끝에 견인차가 왔다. 고장차는 큰 차 등에 매미처럼 업혔다. 

 

e19613d301fc37eeaaabe9ac17d7453e_1503364297_5545.jpg
 

높고 큰 유리창 너머로 밤 하늘이 참 시원했다. 검푸른 하늘에 하나 둘씩 반짝이는 찬란한 별들. 언제 떠올랐는지 둥그렇게 큰 달이 높직히 걸려있다. 참으로 청명한 밤 하늘이었다. (어머 저 달 좀 봐, 어찌 저렇게 밝고 아름다울까? 멋져라.) 혼자서만 즐기기엔 너무 아까웠다.

 

“저 달 좀 보세요, 정말 아름답죠.”참기 어려운 탄성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대답이 있을리 없다. 아 차.... 상황판단을 제대로 못했구나. 혼자서 철없음을 나무램 해야했다. 속으로 혀를 찼을지도 혹시 모른다. 끝없는 내 낭만끼를 옆에서 애교로 이해해 주었는지... 대답없는 친구가 차라리 고마웠다.

 

공장으로 가는줄 알았는데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자마자 주유소 넓은 마당에 차를 세웠다. 주황색 조끼의 두 사람이 뒤따라 왔음을 알았다. 견인차 기사는 차를 내리자마자“베리 비지”라는 말을 남기고 벌써 저만치 차를 몰고간다. 

 

두 사람이 내 차에서 ‘스페어 타이어’를 꺼내더니 열심히 갈아끼우는 작업을 했다. 그 와중에도 마음 불안한 내가 찬바람에 고생할까봐 자기들 차에 편히 모셔놓는 걸 잊지 않았다. 너무도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손을 툭툭털며 다 되었노라고 조심스럽게 안내를 해 앉혀 주었다. 얼마를 달라해도 아깝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지갑을 열며 물었다.

 

“오우 노댕큐 노댕큐..”

도리질을 하며 어서 가라고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준다. 어려울 때 남을 도와주고 만족해 

웃는 그 웃음. 봉사는 바로 그런 보람으로 하는 것임을 새삼 곱씹어본다. 

 

그들은 도로관리를 책임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친절함같은 것은 그들 개인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분의 책임감 그 이상으로 120%의 성과를 거두며 만족해 하는 사람들. 두어시간 늦긴 했지만 그 날의 일정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예정대로 마칠 수가 있었다. 그들의 덕이었다.

 

처음으로 경험했던 어려운 일이었지만 뜻밖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지금도 그 길을 지날땐 그들의 따뜻한 미소가 생각난다.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참으로 좋은 삶, 늦복에 있네

댓글 0 | 조회 312 | 2024.03.26
처음 영정사진을 찍었을 때가 육십대 후반 칠순을 목전에 두었을 즈음이다.친구들이 앞다투어 몰려가는데 나는 사실 가고싶지 않았다. 마음은 아직도 새파란 청춘인데 영… 더보기

잃었던 정서(情緖)를 마주하던 날

댓글 0 | 조회 374 | 2024.02.27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의 하루 . . .또 한 날 선물로 받은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어영부영 보내기엔 불안하고 괜스레 죄스럽다. 컴퓨터 앞에 앉아 몇자 쓰… 더보기

지워지지않는 이름, 그녀 ‘레베카’

댓글 0 | 조회 922 | 2024.01.30
내게 북유럽 패키지 여행은 아무래도 ‘러시아’가 핵심이었다.동행하자는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내 귓전에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정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여기는 지… 더보기

그의 끝나지 않은 사랑

댓글 0 | 조회 579 | 2023.12.22
그의 아내는 장난끼 많은 남편 곁에서 늘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어릿광대처럼 아무에게나 장난을 걸어도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지없이 행… 더보기

어그부츠와 미나리 형님

댓글 0 | 조회 459 | 2023.11.28
아직도 그 전화 번호를 잊지 않고 있다.833 8X8X 누르기만하면 자즈러질듯 반가워 하시던 그 형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리는 것 같다.전화 한 통화가 뭐 … 더보기

비목(碑木)을 노래하며, 2023년.

댓글 0 | 조회 472 | 2023.10.25
<초연이 쓸고간 깊은계곡 깊은계곡 양지녁에비바람 긴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먼~고향 초동친구 두고온 하늘가~~~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궁노루 … 더보기

‘청어’ 신선한 열정, 멋지다

댓글 0 | 조회 561 | 2023.09.27
봄이 문 앞에서 서성대며 보챈다. 어서 반갑게 맞이해 달라고 . . .오늘아침 단장님 굿모닝 톡에도 봄소식이 묻어왔다. 고목에 새 순이 돋아나니 우리도 힘내자는 … 더보기

발 동동 4시간....

댓글 0 | 조회 1,649 | 2023.08.23
맹_꽁이 멍_청이.내가 스스로에게 붙여 마땅한 조롱이고 별명이다.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날씨가 변덕스러워 망서리다가 햇볕이 반짝 보이길래 산책 나갈 채비를 서둘… 더보기

그들 마음의 온도는 몇 도 일까요?

댓글 0 | 조회 491 | 2023.07.25
찬란하던 해가 서산마루로 기울어간다. 황금빛 노을로 불타던 하늘이 서서히 검푸르게 변해가면서 어둠이 내려앉는다.기다렸다는듯 검은 장막속에서 남십자성이 아주 가깝게… 더보기

기쁨조 전령들아! 잠을 깨다오

댓글 0 | 조회 796 | 2023.06.27
그 날이 그 날이라고 평범한 일상을 투정했던 날들이 있었다. 비젼 없는 삶이 나름 따분하다는 불평이었다.그게 바로 한치 앞을 모르는 어리석음이었다. 세월앞에 오는… 더보기

묵은지 깊은맛, 우정(友情)구만리

댓글 0 | 조회 624 | 2023.05.23
여행가방을 꾸려 공항으로 달렸다. 출국장이 아닌 입국장 앞에서 차를 세우고 짐을 챙겨 내릴때 살짝 가슴이 떨려왔다. 들뜬 표정으로 나오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안… 더보기

늦바람 노풍(老風)에 미친(美親) 행복

댓글 0 | 조회 1,072 | 2023.04.25
세상의 중심에서 떠밀려난 소외감. 자식들 떠난 겨울나무로 나목되어 쓸쓸히 홀로선 외로움.우리만의 정서로 교감이 아쉬운 사람들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할 수… 더보기

지금 세상이 나는 좋다

댓글 0 | 조회 686 | 2023.03.28
때만 되면 어김없이 불러다 치료를 해 주는 안과병원. 그렇게 지금까지 수년동안 눈을 잘 지켜주어 밝게 살아가고 있다. 최첨단 기술좋은 시대에 살고있으니 행운이 아… 더보기

로드와 릴리앙

댓글 0 | 조회 733 | 2023.03.01
어김없이 또 새 해가 밝아왔다.둘러보니 어제와 다른게 하나도 없는데 마음은 왜 이토록 다르게 느껴지는지... 여러가지 상념들이 어지럽게 머리속을 헤짚는다.맨 처음… 더보기

설 명절, 서러워서 ‘설’ 이더라

댓글 0 | 조회 881 | 2023.01.31
어디선가 부침개 부치는 기름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다.눈을 슬쩍 감으니 온 세상이 흰눈으로 하얗다. 까악까악 검은 나뭇가지 끝에 조르르 까치들이 바쁘게 짖어댄다.… 더보기

추억 만들기 . . . 챈서리 핫도그

댓글 0 | 조회 1,339 | 2022.12.21
기다려 온 주말이다.내 일상과 다르게 사는 아이들을 오늘 하루 친구가 돼달라고 하려면 머리를 잘 써야만 한다. 커다랗게 울리는 시계의 초침소리가 더디게만 느껴졌다… 더보기

돈이 운다구요

댓글 0 | 조회 1,077 | 2022.11.22
돌고 도는게 바로 돈 이어서 그 호칭도 돈 이란 말인가.수없는 사람들의 손과 손으로 옮겨 다니는 것 이기에 위생적으로 보면 더럽기 짝이없는게 돈이다. 그렇더라도 … 더보기

기적은 있다

댓글 0 | 조회 888 | 2022.10.26
아무리 장수시대라 해도 누구나가 다 오래 사는건 아니다. 80대를 사는건 전체 인구의 불과 몇% 밖에 안되는 행운이란다.병원엘 자주 드나들만큼은 아니었지만 허약하… 더보기

어설픈 여행, 엉터리 효도

댓글 0 | 조회 1,131 | 2022.09.28
바람이 맵고 차다. 벌써 봄바람이 인사를 왔는가보다.바로 엊그제 산책길에서였다. 시커멓게 묵은 나무에서 삐죽빼죽 솟아난 여린 연둣잎이 너무 예뻐 사진에 담아 왔으… 더보기

노욕(老慾)

댓글 0 | 조회 866 | 2022.08.23
어느 날 부터인지 가슴이 뻐근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괜찮은가 싶다가도 생각이 나면 어김없이 또 아팠다. 어느 날은 조금, 어느 때는 좀더 강도가 심했다. 웬만큼 … 더보기

내 동생

댓글 0 | 조회 929 | 2022.07.26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처럼 눈이 많이 내린 날 은 처음이었다.지금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멀고 먼 76년 전으로 돌아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음력으로 … 더보기

우박비 쏟아지던 그 날

댓글 0 | 조회 856 | 2022.06.28
분홍빛 고운 햇살이 거실 깊숙이 내려앉아 쉬고있다. 창 밖 하늘빛이 새파랗다.이런날 누구와 만날 약속이 있다는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매일같이 질척이는 요즘같은 … 더보기

돌빵구지는 지금 어찌 변해 있을까? 궁금하네요

댓글 0 | 조회 937 | 2022.05.25
촘촘한 집들 사이로 골목길을 빠져 나가면 갑자기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시야가 환해진다.멀찍이 앞을 가로막는 뚝길이 길게 뻗어있다. 그 뚝엔 들풀들이 지천으로 엉켜 … 더보기

백년손님 맞이하기 - 불놀이

댓글 0 | 조회 800 | 2022.04.28
일상의 시간들을 거의 마치고 느긋하게 쉬고있는 어느 저녁 나절이었다. 늘상 딸처럼 살가운 ㅇㅇ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저녁식사 같이 하자는 전갈이었다. 오클랜드가 … 더보기

꽃보다 어여뻐라, 민경씨 고마워요

댓글 0 | 조회 1,530 | 2022.03.22
작년 1월이었다. 견딜수 없는 그리움을 달래보려는 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계절 바뀌면 포근하게 입으라고 바지 몇개를 준비해 평소처럼 우체국으로 갔더란다. 그런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