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 새는 날아야 새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353] 새는 날아야 새다.

0 개 3,138 KoreaTimes
  Wildlife is something which man cannot construct. (야생 생물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것이다.) Once it is gone, it is gone forever. (한 번 사라지고 나면,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Man can rebuild a pyramid, but he can't rebuild ecology or a giraffe. (인간은 피라미드를 다시 건설할 수는 있지만, 생태 환경이나 기린을 다시 만들 수는 없다.)

  There are many species of animals that may  disappear from the earth within the next few years. (다가 올 몇 년 이내에 지구에서 사라 질지도 모르는 많은 품종의 동물들이 있다.) These endangered   species will die out and become extinct unless man can help. (이 멸종 위기에 처한 품종들은 인간이 도울 수 없다면 사라지고 멸종될 것이다.)

  Not long ago the United States issued a series of postage stamps calling attention to threatened   species, like the California condor and the polar bear. (얼마 전에 미국은 캘리포니아 독수리와, 북극곰 같은 멸종 위협을 받는 품종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일련의 우표들을 발행했다.)  But for some species it is already too late. (그러나 어떤 품종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너무 늦었다.) The American passenger pigeon was once a very common bird. (미국산 여행자 비둘기는 한 때는 아주 흔한 새였다.) Yet the passenger pigeon is gone forever. (그러나 여행자 비둘기는 영원히 사라졌다.) The last one died in a zoo in 1914. (마지막 여행자 비둘기는 1914년 한 동물원에서 죽었다.)

  The kiwi is also an endangered species. (키위 새 또한 멸종위기에 처한 품종이다.)   It's disappearing at a rate of 5.8% per year, threatened by imported predators such as dogs and stoats and by   loss of habitat. (키위 새는 개나 담비와 같은 외래 육식 동물들과 서식지의 감소로 인해 연간 5.8%의 비율로 사라지고 있다.)

  당연히 뉴질랜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멸종위기에 처한 키위 새는 보호 받아야만 하고, 이러한 키위 새가 뉴질랜드 인들의 자랑거리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과연 키위 새가 새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늘을 날지 못하는 새, 날지 않는 새 (flightless birds)가 새라고 불리 울 수 있을까? 생태학적으로나, 품종적으로 분류해 볼 때 키위 새는 분명 새에 속한다.

그러나 초월적 존재를 꿈꾸었던 갈매기 조나단이나 용맹한 캘리포니아 산 독수리 정도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참새처럼 이라도 새는 날아야 새가 아닐까?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유럽계 백인들은 자신들을 키위라고 자랑스럽게 부르기를 좋아한다. 심지어 뉴질 랜드에 살고 있는 중국계 사람들도 자신들을 키위 차이니즈라고 부르면서 이른바 뉴질랜드의 주류사회,  키위 사회의 일원으로 속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날지 않는 새, 키위인가?  뉴질랜드의 어두운 삼림 속에서 고립된 채로, 날지도 못하고 겨우겨우 목숨을 이어 가는 키위 새보다는, 차라리 키위 과일에서 따온 키위라고 자신들의 별명을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생 각해 본다.
  키위 과일은 중국의 양쯔강 유역이 원산지인 과일 이지만 오늘날은 뉴질랜드의 대표적 특산 과일이 되었다.  1960년대 전까지만 해도 키위 과일은 "Chinese gooseberry" 라고 불리웠다. 그런데 중국에서부터 유입되어 온 이 과일을 정성껏 가꾸고 개량하고 뉴질 랜드화 해서 세계 시장에 자랑스럽게 역수출하며 내놓을 때 뉴질랜드의 농부들은, 이 과일을 뉴질랜드의 특산 품으로 인식시키기 위해서 ‘키위’라고 부르기 시작 했다고 한다. 머나 먼 동양의 한 나라에서 들어온 이색적인 과일도 진심으로 감싸고 사랑하고 정성을 다하여 가꾸었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뉴질랜드를 대표할 수 있는 과일이 될 수 있었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오늘날  뉴질랜드 주류사회의 이른바 ‘키위’들은 이 땅에 들어와 사는 모든 이민자들을 포함해 세계인들을 향해 과연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 키위 과일을 받아들였던 열린 마음인가, 아니면 나만이 독특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며 좀 더 넓고 멀리 보기 위해 날 생각도 안 하는 키위 새의 마음인가?  새는 날아야 새다.  날지 않는 새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고립되고, 자기 노래 소리에만 도취되어 자기 세계 속에만 갇혀 살아가다가, 서서히 위기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