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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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외롭다

0 개 2,705 정인화

나는 심리 상담과 치료를 한다. 상담은 술이나 마약등을 남용하는 유럽계 백인인 파케하(pakeha)가 주 대상이다. 스무 해 가까이 상담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부러워한다. 영어도 아주 잘할거라 믿는다. 차분하고 편안한 모습이 좋다고 할 땐 마음이 정말로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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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힘들다. 

내가 들어도 말이 안되는 영어 때문에 종종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루하루 잘 버티지만 가끔가다 피곤하다. 나의 어설픈 영어를 안 들키려고 부서 회의 중에는 오랜 동안 질문도 안하고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조용히 앉아 있는다. 

 

뉴질랜드에 온 지 벌써 서른 해가 가까와지는데 영어는 살아 온 세월만큼 빨리 늘지 않았다. 왜 그럴까. 나의 게으르고 소심한 성격의 장단점을 생각해 보는 대신에 한국에서의 암기 위주 교육을 탓해 본다. 교과서 영어와 생활영어의 차이를 뼈져리게 느낀다.

 

“I want to work with a counsellor who speaks proper English.”

“적절한 영어를 하는 상담원을 원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남아있다. 

 

순간 머리 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안 났다. 피상담인의 입 모양은 보였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영어가 부족하긴 했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니 짜증이 몰려왔다. 

 

평상시보다 더 높은 소리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변명하던 모습, 돌아보는 순간마다 부끄럽다. 인종 차별을 들 먹이며 혼자서 화냈던 기억은 씁쓸하다.

 

영어는 늘지 않았지만, 많이 편해졌다. 

 

무엇이 변했을까. 

 

어느 순간부터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상담원을 바꿔 달라는 사람들의 의도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언어 문제를 제기하는 내담자의 대부분은 누구와 연결되든 상관없이 상담을 시작하기도 전에 연락을 끊는다.

 

이드(id), 자아(ego)와 초자아(superego)에 관한 성격 구조 이론을 확립한 정신분석 이론의 창시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그의 딸 아나는 아버지를 이어 자아 심리학을 발전시켰다. 

 

그녀는 힘든 현실로 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은 억압, 억제, 부정, 투사를 사용한다고 했다. 또는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왜곡, 분리, 퇴행, 합리화, 지식화, 승화 등을 자아 방어 기제(ego defense mechanism)로 예를 들었다.

 

사람들의 상담을 하는 이유는 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내면 성찰을 힘들어하고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아픈 상처를 다시 건들고 싶지않다고 얘기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과거에 배웠던 방어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현재 생활이 불편한데도 말이다. 불편이 아픔보다 더 견딜 만 한가보다.

 

내면의 문제를 회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들의 부족함과 두려움을 인정하지 못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이들은 다르게 보여지는 사람들을 따스한 눈으로 보지 못하고 열등감을 투사함으로써 본인들의 행동과 생각을 정당화한다. 

 

일반적인 자기방어을 쓰는 이들의 투사와 동일시하면서 한국인로서의 자긍감을 잃어버리고 눈치를 보던 과거 내 모습이 가엽다. 웃기기는 하지만 나를 보호하기위해, 지금부터라도 아이들 처럼 투사에 대해‘반사’라는 말을 종종 외쳐야겠다.

 

영어권에서 태어난 동료들에게 내가 언어로 힘들 때마다 같이 슬퍼하고 아파하면서 도와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투사의 대상이란 점을 이해를 못 하거나 자기 일이 아니라는 식의 방관자의 태도를 보인다. 

 

다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현실에서 투사와 편견을 견디며 살아가는 많은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힘들고 외롭다. 펑펑 울고 싶은 날에는 밤 열 시에도 별말 없이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을 따스한 방바닥에 앉아 먹고 싶다.

 

영어는 능숙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나는 통찰력과 쌓여지는 경험은 조금씩 나에게 편안함을 준다. 가능할 때에는 서로 다름과 부족을 비난과 회피가 아닌 관용과 인내로 보자고 제안하는 여유도 생겼다. 자기방어가 줄면서 연민은 늘어난다.

 

상담실 안에선 아직도 영어로 인해 부딪히는 문제가 있다. 몇 해 전보다는 덜 하나, 동양사람과 접촉이 적은 새로운 피 상담자와는 아직도 발음과 표현 방식이 달라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곤 한다. 영어로 편해 지긴 아직도 멀었나 보다. 옅은 웃음이 스친다.

 

새움터 회원 정 인화는 1991년에 뉴질랜드에 이민 와 스무 해 가까이 상담과 심리 치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움터는 정신 건강의 건전한 이해를 위한 홍보와 교육을 하는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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