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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한하람 0 724 2017.05.24 15:23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1988

 

 

본 영화는 필립 카우프만 감독에 의해서 각색된 작품으로, 영화의 원작자는 작가 밀란 쿤데라입니다. 이야기는 탄압과 억압 그리고 자유에의 갈망으로 가득찼던,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운동 시기를 배경으로 주인공 사비나의 가벼움의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배반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지속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나게 되는 공허함을 보여줍니다. 

 

종국에는 더 이상 그녀를 탄압한다거나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 그녀로부터 뭔가를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허나 남은 것은 사비나 스스로가 느끼는, 존재에 대한 공허함뿐입니다. 안티 오이디푸스의 끝에는 견딜 수 없는 공허함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장황하고 긴 서사를 통해 하지만 결코 살살하는 법 없이, 인간 조건의 무의미함을 아주 날 것으로 우리에게 대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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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는 니체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낡은 도덕을 부수고 모든 것을 긍정하는 가치전도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니체는“있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을 것이란 없다.”고 이야기하고 우리에게“지금 당신이 직면한 실존적 상황이 영원히 반복 된다고 해도 좋을 만한 일들”만 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쿤데라는 이러한 니체의 사상이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삶의 가벼움을 선사해주었고, 인생은 한번뿐이기에 욕망하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식의 목가적인 삶을 열어주었다고 서사를 통해 넌지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원작에서“한번은 없는 것과 같다.(Einmal ist Keinmal)”로 대표되는 영원회귀적 가벼움이 우리를 공허와 무거움으로 짓누를 것이라 이야기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 저는 니체의 사상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저도 쿤데라처럼 이 세상이 참을 수 없이 허무하며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고 믿습니다. 허나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 자기 기만의 믿음을 통해서 각자의 삶에“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식의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 누군가는 사랑을 믿습니다. 초월자를 믿기도 합니다. 혹은 정치에 의해서 국가와 인간조건이 변화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반대로 어떤이들은 사랑도, 신도, 정치도 믿지 않습니다. 운명적 사랑이란 없다고 믿으며 가벼운 사랑을 합니다. 신은 없다며 무신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초월자란 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정치는 국내의 간판 사안들만을 변화시키고 그것이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국민으로서의 복무에 충실하도록 만들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절대로 인간 조건 자체는 개선될 수 없다고 믿습니다.

 

무엇인가 행동을 하려 할 때, 우리는 믿음이라는 것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팔을 들어올릴 때 조차 우리는 우리가 팔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핸드폰 충전기에 핸드폰을 접속시킬 때도 우린 그것이 충전될 것이라 믿습니다. 급여일에는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흑갈색의 액체와 함께 얼음이 동동 띄워진 컵에 고소한 향이 나는 것을 확인하면 우리는 그것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마셔도 되는 상황이라 믿게 되면 우리는 서슴없이 마십니다. 독이 들어있을 줄 어떻게 알고! 이러든 저러든 우리는 무언가를 믿고 산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며 무엇이라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얼마전 들었던 이야기인데, 간혹“초파리 자연발생설”이라는 가설을 우스개로 믿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분명 어제 마트에서 사온 과일봉투에는 과일들만 들어있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초파리가 있었다는 경험으로부터 추론하여 초파리는 자연적으로 갑자기 창조되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초파리가 항상 발생할 것이라 믿기 때문에 과일 관리에 더 신경을 씁니다.그리고 초파리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한 행동에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반대로 초파리의 탄생과정을 담은 과학적 사실들을 믿는 과학신봉자들에게는 조금 다른 일들이 생길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쩌면 그들은 무조건 약품처리한 과일만을 사먹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약품처리의 해로움에 관한 과학적 사실들을 믿기에 초파리의 아이러니에 빠져 그저 비타민 보충알약을 먹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알겠어요. 하지만 이 무가치하고 무의한 삶에서 기왕 그러한 무의미를 웃어넘기기엔 전자의 믿음이 조금더 건강한 자의 믿음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볼 때, 니체의 무한긍정은 쿤데라가 걱정하는 것처럼 도덕적 파국으로 치달아 공허함을 맞보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떠한 신념을 긍정함과 동시에 그러한 신념을 여러 이유에서 부정하고 저지하는 측면 또한 긍정하고 그 둘의 관계를 생성적 가능성으로서 다시 한 번 긍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벼움의 추구가 우리에게 공허함을 가져다 주지만, 그러한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해 무거움을 추구하는 것 또한 긍정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가벼움으로서의 무거움을 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각기 다른 개인이 당면하는 무거움을 각기 다른 가벼움으로 변화시키는 중화제의 역할로서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말들은 모두 이해되지 못하는 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우리 스스로의 말과 그를 통한 믿음은 이해되어지지 못합니다. 우리는 쉽게 이분법적으로 외적 세계와 내면의 감흥을 구분하지만 우리들 스스로는 그리 간단하게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 가벼움일 수도 있고,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이 가벼움일 수도 있는, 그리고 정치를 믿는 것이, 혹은 믿지 않는 것이, 종교를 믿는 것이, 혹은 믿지 않는 것이 가벼움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던 간에 우리는 결코 그것의 진정한 무게와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 아래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알던 삶이라는 것의 가벼움과 무거움, 그 폭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 각자에게 맞는“믿음의 분량대로”스스로 가벼움과 무거움을 조절하며 무의미와 무가치, 허무함 위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다채로운 삶의 가능성을 느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라는 것의 상대성과 그 끝에 있는 무의미함의 피할 수 없음을 조금 더 능숙하고 유쾌하게 축제처럼 받아드릴 수 있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무한긍정의 토대 아래 여러분이 원하는 어느 쪽이던지 가벼움으로서 선택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다음 호에서는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자전거 도둑 1948”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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