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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제주에는 중국의 보복으로 중국 단체관광객이 줄었지만, 그저 단순히 단체로 우르르 떼지어 몰려 다니는 관광이 아니라 가까운 친지들과 주제를 가지고 가는 테마 여행이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한 테마 여행 중 하나로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 탐방 여행을 추천할 만 하다.
추사에 대한 연구는 많은 학자들이 해 왔고 지금도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대상이다.
그 중에는‘나의 문화 탐방기’를 쓴 전 문화재청장을 지닌 유홍준의‘완당평전(학고재: 2002)’을 비롯해 ‘국역완당평전(민족문화추진회)’등 많은 저술과 논문 그리고 학예지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김 종헌의 ‘추사를 넘어(푸른역사: 2007)’는 전문가의 학구적인 책이 아니라 일반인이 본 추사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 있다.
그렇다고 내용이 부실하거나 인기가 없는 책은 아니다. 비단 추사뿐 아니라 정판교의 작품 등 아주 희귀한 고서 자료들을 총 망라해 만든 책이다. 2007년 초판 발행 후 2011년 7쇄를 한 스테디 셀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김종헌은 기업체 임원(남영 비비안의 대표이사)으로 일하다 은퇴 후 카페를 경영하였다. 아내의 제빵 기술과 본인의 책에 대한 사랑을 접목시킨 것으로 그때의 경험을 책으로 내었는데,‘Peace of Mind- 빵 굽는 아내와 CEO 남편의 전원카페 (동아일보사: 2004)’이다.
하지만 본인이 관심 분야는 서예로 고서를 모으는 것이고 현재도 약 1만 여권의 고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카페에 사설 도서관을 가지고 있다. 고서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자연스레 추사 선생의 작품을 많이 접하고 연구하게 되었고,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추사 김정희는 시·서·화는 물론 금석학의 대가로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했다. 청 나라의 완적, 옹방강 등 당대 최고의 석학과 교류를 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추사의 고택 예산은 고택 뒤 암벽에 각인된 여러 글씨와 현판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은 71세 때 쓴 봉은사의‘판전(版殿)’으로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다.
하지만 그의 일생은 평탄치만 안 했다. 부원군의 자손으로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했지만 많은 옥고를 치룬다. 그 결과 제주로 유배를 간 것이다. 제주의 추사 유배지는 최근에 알려지고 있다.
추사의 글씨는 유배 전후가 확연히 다르다. 같은 글씨를 비교해 보면 일반인도 쉽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귀양 가는 길에 들른 해남 대둔사에 써준 무량수각(無量壽閣 :1840)은 대단히 획이 기름지고 두텁고 자신감이 넘치며 윤기가 흐르는 반면, 귀양 후 예산 화엄사의 무량수각(1846)은 기름기가 다 빠지고 메마른 듯 순진무구한 원형질을 드러내며 대단히 명상적이다.
좌절 속에서 핀 독자적인 글씨체가 태어난 것이다. 치졸해 보이는 단순미를 보여 준다. 바로 추사체의 탄생인 것이다. 제주에 설립된 추사유배지 박물관에 가서 전시되어 있는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그 차이를 알 수가 있다.
추사체는 정신적으로는 귀양이라는 역경 속에서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 밝혔듯이‘70 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내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든’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의 결정판이었다.
9년간의 유배생활은 비참했다. 곤장을 맞은 장독으로 고생하면서, 삭막한 곳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곳에서 그저 글을 쓰고 수선화를 키우는 것이 일과였다.
소창다명 사아구좌(小窓多明 使我久坐: 작은 창문에 빛이 밝으니 나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네)라고 쓴 글씨는 당시 자신의 처지를 잘 나타낸 글이다.
유배된 집에서 약 5리 정도 떨어진 대경향교에서 후학을 가르친 곳‘의문당(疑問堂)’현판은 추사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고, 원래 자리에는 복제품이 걸려 있다.
추사가 유배 생활에 그린 세한도(1840)와 제자인 이 상적과의 사연도 눈 여겨 볼 만하다.
역관인 이상적이 북경을 왕래하면서 수 많은 책을 추사에게 보내 주었고 세한도에 완적의 화제도 받아 왔다. 그가 보낸 책들의 물량을 모으면 수레로 한 차가 넘었다고 한다. 요즈음에도 그 많은 책을 보내주기 어려운데 교통도 불편한 제주로 그 시대에 귀한 중국의 서적을 그렇게 많이 보냈다는 것은 이 상적이 추사를 얼마나 존경했는지를 엿 볼 수 있다. 추사 역시 그에 감동해 세한도를 그려 준 것이다.
추사 박물관의 모습이 마치 세한도의 집을 형상화한 것 같으며 계단은 귀양 3천리를 채우기 위해 구비구비 돌아온 곡행(曲行)을 상징해 비스듬히 돌을 깔았다고 한다.
반드시 도록(圖錄)‘해국에 먹물은 깊고(서귀포시-2011)’한 권을 사거나 아니면 세한도 영인본 하나 정도는 사서 두고두고 음미할 가치가 있다.
최근에 추사 글씨의 속뜻에 대해 새롭게 조명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이성현의‘추사코드(들녁: 2016)이다. 서화에 숨겨둔 추사의 속마음을 정리한 것으로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