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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Arrival. 2017

한하람 0 603 2017.03.22 15:40

날이 덥습니다. 이렇게 덥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을이 오겠죠. 가을하면, 형형색색의 단풍들을 생각하기 마련이죠. 이런‘가을-단풍’처럼 우리의 머릿속에는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일련의 생각의 형식들이 있습니다.


첫 호에서 말씀드렸던 재인식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번 호에선 이러한 생각의 형식들에 대해서 떠들어보고 싶어 준비했습니다. 최근 개봉하여 미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드니 뵐뇌브의 어라이벌(한국 개봉“컨텍트”)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생각할 때, 어떤“마디”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이 마디라는 말은 가령 이런 것들인데요.

 

제가 이 잡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편집자님 이메일로 칼럼니스트 지원을 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이후와 그 이전을 우리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 다름을 구분 짓는, 대나무 마디 같은 어딘가가 있습니다. 그것을 마디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로는‘분절선’이라고 부르죠.

 

이러한 마디를 만드는 한 뭉텅이의 시간적 성질들 곧,
ⓐ시간성과, 그 다음으로 우리가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물질적 성질들, 가령 컴퓨터나, 심심했던 저의 방과 글을 쓰고 싶게 만들었던 저의 선반 위의 책들이나, 그런 물건들이 모여 있었던 한 뭉텅이의, 간단하게 말하자면 장소를 장소이게 해주는 것들의 총체인 ⓑ영토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리아포스트라는 기획 안에 포함되는 칼럼 연재 시스템이나, 칼럼이라는 글쓰기의 분야들과, 칼럼니스트 모집 같은 일련의 규칙이라고 할 만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생활에서 주름처럼 우리의 행동들을 결정짓는 규칙적 성질들, 곧 ⓒ코드성, 이 세 가지는 한 개인의 삶에 어떤 모양이던지, 경험이 된 뒤 사후적으로“사건”이라고 규정됩니다.

 

우리가 사건이라고 인식한, 시간, 영토, 코드들이 우리 개인 개인의 삶에 다시 던져주는 시간의 마디들은 명백하게 우리에게 각인됩니다. 들뢰즈는 이러한‘사건’을 차라리 “배치”라고 이야기하길 제시합니다. 들뢰즈가 이 말을 하는 근저에는“존재의 일의성”이라는 개념이 전재되어 있습니다.

 

이 존재의 일의성(一意性)은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모든 것은 사실 자연, 혹은 실재라는 거대한 뭉텅이‘안에서’일어나는 여러 가지 양상들일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고급함”“저급함”과 같은 선형적(linear)이고, 위계적인(hierarchical) 사고들을 부수어주고 모든 세상의 사건들이 다 매한가지로 동등한 위치에서 일어나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런 것입니다. 신이 있고, 천사가 있고, 인간이 있고, 식물이 있고, 광물이 있던 시각에서 모든 것은 다 동등한 선상에서 서로 관계하고 어떤 작용을 일으키고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시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실상 한 가지 안에 있다는 것이지요. 모두가 동등해집니다.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삶의 순간에 어떤 성질들이 그저 한 모양으로 배치된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이 영화는 언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언어는 우리의 정체성에 크게 관여합니다. 한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아이는 A언어권 국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B국인이고 아빠는 C국인입니다.

 

이 아이는 성장하면서 B라는 언어를 배울 때는, B언어를 쓰는 엄마로 부터 주로 배울 것입니다. 그리고 C라는 언어를 배울 때는, 아빠로부터 주로 배울 것이고요.

 

A언어에 관해서는 엄마 아빠에게 A언어를 가르친 누군가 혹은 다수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아니면 선생님이나 친구들일 수 있겠고요.

 

언어라는 것은 우리 개인에게 언어가 가진 성격이나 자기동일성을 부여합니다. 엄마가 가진 B언어 사용자로서의 성격과 자기동일성을 아이는 받아드리게 되고 B언어를 사용할 때에, 아이는 엄마와 닮은 개인으로서 존재합니다.

 

C언어에서는 같은 형식으로 아빠를 닮은 개인이 되고, A언어를 사용할 때는, 같은 형식으로 누군가, 혹은 다수, 혹은 또래들을 닮아가겠지요. 그만큼 아이는 정체성의 분열을 겪습니다.

 

이러한 정체성의 분열은 양 부모를 같은 언어사용자로 둔 개인들에게도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제가 예를 극단적으로 들었지만, 언어라는 말에는 문화적이거나, 아니면 유전적이거나, 지역적, 장소적 특성들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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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분열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인간들은 언어 안에서 분열을 겪기 마련이고, 커가며 한 가지 주 언어를 찾고, 그에 따른 고정된 자아를 찾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빌뇌브 감독은 이러한 언어가 가져다주는 정체성의 고정을 문제 삼습니다. 그러한 고정들 때문에 벌어지는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분란들이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 그리고 막아야했지만 막지 못했었던 우리의 실존적 미숙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우주의 언어인 헵타포드어를 제시합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헵타(Hepta)”는 7을 의미합니다. 7은“영원”혹은 시간성을 벗어난 무언가를 암시하는 숫자이지요. 하나님께서도 7일째에 안식을 취하셨다고 하는데, 이 무한적 존재가 무한적이지 않다는 가정도 시간성을 벗어남을 암시하죠.

 

존재의 일의성과는 반대로 인간의 언어는 선형적입니다. 앞에서부터 뒤로 읽고, 의미를 나누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나누는 위계적인 형식을 공유하는 것이 인간 언어의 일반적 속성입니다.

 

서양과 동양의 각기 다른 주어술어 배치방식은 그러한 인간 언어의 위계적 특성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렇듯 인간은 언어라는 것을 통해서 먼저와 나중을, 나음과 덜함을 나눕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전 문단에서 이야기 드린 수많은 관계적 미숙함을 가져옵니다.

감독은 영원의 언어인 헵타포드어를 말합니다. 그 언어가 어떤 언어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영화 속에서 감독은 그 언어가, 앞뒤에서 한 번에 읽히고 순환적인 언어이기에 의미상에서 어떤 위계가 존재할 수 없다고 암시합니다.

 

놀라운 점은 그러한 언어가 우리에게 미래와 과거의 시간적 경계, 곧 앞서 말씀드린‘마디’를 허물어준다는 것이지요. 영화는, 그러한 허물어짐이 우리가 이기적인 도취에 빠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이상까지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분)는 산스크리트어의 전쟁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다른 학자가 그 의미를 논쟁이라고 해석한 것과는 달리, 그녀는“더 많은 소를 얻기 위한 열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개인과 개인의 온전함을 신뢰하며, 인간중심적으로 전쟁을 단지 정체성 간 의견의 차이인 논쟁으로 해석하는 것과는 달리, 루이스는 인간의 욕망을 고려하고 인간 개인의 온전한 정체성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객관적이고 비선형적으로 그리고 존재의 일의성 안에서 순환적으로 이해되어집니다.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나은 것과 못한 것 없이 인식되는 어느날을 말이죠. 자연적인 상태로서 모두가 모두를 자연의 흐름대로 대하고 다수가 소수를 자신들만의 규칙들로 억압하지 않는 어느 날, 그 날은 영화에서‘헵타포드어’로 암시되는 새로운 언어적 정체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간 서로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식의 휴머니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모든 규율과 모든 울타리가 사라져야한다는 자아도취적 자유주의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개인들이 서로 서로에게 보금자리로서 작동할“우주 속의 작은 우리”를 꿈꾸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들이 동등하게 경험되는 날을 바래봅니다. 그러한 바람들을 다시 한 번 대표해주는 영화, 드니 빌뇌브의‘어라이벌’이었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이번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문라이트’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한 하람 (인문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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