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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을 모시는 여자

김지향 0 694 2017.03.08 09:46

지난 주에 휴가를 좀 갖고 나서 이번 주부터 파미 매장에서 근무를 한다. 모처럼만에 집에 와서 생활하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휴가를 즐기는 동안 날씨 또한 얼마나 좋던지, 몸과 마음이 마음껏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뉴질랜드의 여름이 늦게 도착한 거 같다. 그 덕분에 며칠 동안의 휴가가 꿀처럼 달콤하고 행복했다. 몸과 마음의 샤워를 한껏 하면서 맑은 하늘과 환한 햇볕을 마음껏 즐겼다. 

 

사흘 전부터 파미 매장에서 근무한다. 왕가누이 매장과 달리 쇼핑 몰 안에 있는 매장이라서 자연과는 완전 격리된 장소에서의 근무지만 그 나름대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해 나가고 있다. 

 

매장에 나가면 제일 먼저 매장의 모든 전기 스위치를 켠다. 스위치가 하나하나 켜질 때마다 매장의 모든 것들은 하나 둘씩 일어나 기지개를 편다. 어두웠던 공간이 환해지면서 형형색색의 옷들이 모습을 들어내고, FM 방송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옷 틈 사이로 일렁인다.

 

카운터부터 말끔히 닦은 후 진열대들을 깨끗하게 정리하여 손님 맞을 준비를 해 놓으면 판매의 일상이 시작 된다. 이렇듯 매장 생활을 한 지가 벌써 반 년이나 된 것을 보면 시간이 정말로 빠르게도 흘러 간다.

 

그동안 많은 손님들과 소통을 하면서 영어에 대한 울렁증도 사라지고 담력도 늘어나 있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것도 장점으로 살려서 판매 실적을 높이는데 힘을 쓰다니, 바뀌어도 한참 바뀐 내 모습이다. 

 

뉴질랜드에서 16년이란 세월을 보냈는데도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한국어를 말하기에 적합하게 굳어버린 내 혀. 어색한 발음으로 영어를 쓰는 것 자체가 쪽팔리기 그지 없었다. 그런 쪽팔리는 발음으로 시제나 문법도 제대로 맞지 않으면서도 뻔뻔스럽고도 당당하게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요즘의 나를 보면 신기하기 그지 없다.

 

처음 만난 손님들에게 안 되는 영어로 넉살 좋게 너스레를 떠니, 마음씨 좋고 후덕한 노인들은 그런 나를 무척 귀엽게 여기면서 또 오겠다는 말들을 한다. 그런 내가 대견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니 나르시즘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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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마지막 손님이 옷값을 지불하면서 내가 patient 하다고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옷을 고르고 입어 보는 동안 내가 서비스를 잘했다는 의미의 소리인 것 같았다. 

 

난 그저 그녀에게 잘 맞을 것 같은 옷을 권하고 그녀의 바뀌는 모습을 봐주면서 그 순간을 즐긴 것뿐인데, 그런 내 모습에서 나의 인내심을 본 모양이다. 

 

그녀 자신이 인내심이 많은 여인일 것이다. 세상이 자신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그녀는 나를 통하여 그녀의 마음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나의 마음에 따라 얼마나 많이 다르게 보이던가?

 

매장에서 일하면서 어렷을 적의 부정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힘든 사람이 있었다. 남편만 보면 부정적인 말이 술술 올라 온다. 그렇게 바꾸려 노력을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는 말이 있듯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제일 어려운 것만 같다. 남에게 베푸는 친절의 반은 고사하고 십분의 일 만이라도 남편에게 베풀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만났으면 반가운 마음에 코맹맹이 소리를 흘릴 것도 같구만, 나는 왜 남편만 보면 잔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런 반면 전화로 대화를 나눌 땐, 꽤나 정중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바뀌어 버린다. 남편은 나에게서 매일 그런 목소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도 같다. 그걸 알면서도 왜 그 앞에만 서면 잔소리부터 나오는 것일까? 

 

그 잔소리를 묵묵히 다 들어 주는 남편이야 말로 도인같다. 나는 도인을 모시는 여자, 아니 도인이 나를 모시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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