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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 맺기와 지속에 대한 이야기
불교에 ‘억겁[億千萬劫]’ 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힌두교에서 43억2천만년을 한 겁으로 친다 하니 도저히 셀 수 없는 그 시간들을 그렇게 정의내리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억겁의 인연’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오백 겁의 인연이 있어야 옷깃을 스칠 수 있고, 이천 겁의 세월이 지나야 하루 동안 동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오천 겁의 인연이 되어야 이웃으로 태어날 수 있고, 육천 겁이 넘는 인연이 되어야만 하룻밤을 같이 보낼 수 있게 되고, 억겁의 세월을 넘어서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여행지의 숙소에서 겨우 “Hello!” 정도의 인사만 나누고 스쳐간, 먼 이국땅의 하룻밤 옆 침대를 썼던 사람들조차도 그 인연이 몹시 귀하고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요즘 관계와 지속에 대한 관심이 부쩍 크다. 그래서 예전에는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던 억겁의 인연이라는 말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고, 주변인들이나 TV 또는 책을 통해 그들의 관계를 관찰하며 공부하게 되곤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노력과 희생 없이는 관계를 맺거나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부부관계에 있어 그저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평생 사랑하며 잘 살아가고 있구나가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고 희생하고 상처받고 극복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오히려 그 관계 맺기와 지속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력과 희생이 당연한 일이라는 점이다.
또한 사랑에 대한 놀랍고 감동적인 부분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상대를 사랑하고 베푸는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그리고 이것 역시 모든 삶의 진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다음호에 계속>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