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만 50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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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첫 키스만 50번째

0 개 3,111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
언젠가 TV에서 방영한 '첫 키스만 50번째'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교통사고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 주인공은 사고가 나기 전만 기억하며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기억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그녀에게 남자 주인공이 매일 만나도 처음 만난 것처럼 첫 데이트를 하고 첫 키스를 한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더군요.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좀 황당한 스토리 같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더군요. 왜냐하면 내가 실제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1980년 1월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나는 종로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도로가 꽁꽁 얼고 하객들은 모두 지각 했지요. 나는 돈이 없어 석관동에다 단칸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시골부자인 장인어른은 방 2칸짜리도 못 얻는 가난한 사위에 대해 불평이 많으셨지요. 그렇게 추운 겨울에 결혼을 한 것은 처가 측에서 음력으로 한 해를 안 넘기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연애시절 종로의 레스토랑에 가면 아내에겐 정식을 시켜 주고 나는 샌드위치를 시켜 먹곤 했지요. 정식2개를 시키면 돈이 모자랐으니까요.

결혼 후 모처럼 그 레스토랑에 가서 외식을 하기로 하고 퇴근 후 아내와 종로1가에서 만났습니다. 나도 이젠 같이 정식을 먹어야지 생각했지요. 종로거리에서 친구를 만나면 "야 네 색시가 종로에서 제일 예쁘다."라고 말했지요. 그땐 아내가 포동포동하고 착하고 예뻤었지요.

요즘은 많이 틀려졌지만... 크흐흑,

그 날도 길바닥에 눈이 얼어붙어 많이 미끄러웠지요. 아내와 나는 팔짱을 끼고 걸어가다가 그만 둘이 똑같이 벌러덩 뒤로 넘어졌습니다. 나는 한 손에 가방을 들고 한 손은 아내랑 팔짱을 끼어서 아내를 돌 볼 새도 없이 똑같이 넘어진 것입니다. 내가 먼저 일어나 아내를 일으켜 세웠는데 아내는 피곤하다며 집에 간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아내는 결혼하기 전에 살았던 은마 아파트로 가는 버스를 타는 곳으로 걸어가더군요. 아내보고 우리 집은 석관동인데 왜 그 곳으로 가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나보고 "잘 가~" 라고 말하더군요.

처음엔 그냥 농담하는 줄 알았지요. 우리가 같이 사는 곳은 석관동이고 저 쪽에 가서 버스를 타야 한다고 재차 말을 하니까, 아내가 깔깔깔 웃으면서 "우리가 동거해? 웃겨~" 그러더군요.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해 은마 아파트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는 아내를 겨우 붙잡아 놓고 말을 시켜 보니 정말 우리가 결혼한 것을 전혀 기억을 못하더군요. 할 수 없이 내가 은마 아파트까지 데려다 준다고 말하고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가 말 하더군요. 집에서 쉬면서 며칠 지켜보라고, 그리고 구토증세가 있으면 즉시 병원에 달려오라고 말하더군요. 나는 아내에게 우리 집에서 보여 줄게 있다고 꼬드겨서 겨우 석관동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옷이며 화장품이며, 아내의 물건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내는 자기의 물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흑흑흑 울더군요. 눈물을 펑펑 쏟던 아내는 내가 당신을 너무 사랑하지만 이렇게 동거생활은 할 수 없다고 벌컥 화를 내더군요. 나는 벽에 걸린 결혼사진을 떼어서 아내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도 언제 결혼했냐며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하더군요. 앨범을 꺼내 결혼식 때 친구들과 가족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 주자 "정말 우리가 결혼했구나..."라고 말하고 내 볼에다 뽀뽀를 하고 아내는 어지럽다고 누웠습니다. 그리고 한 5분쯤 지났을까... 아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옷을 입으며 또 집에 간다더군요.

나는 결혼사진을 아내의 눈앞에 들이대고 진정시키고 아내는 내 볼에다 또 다시 뽀뽀해주고... 그 날 밤새도록, 집에 간다고 옷 입고... 결혼사진 보여 주고... 또 뽀뽀하고... 뭐 그렇게 긴 밤을 꼬박 새웠지요.

다행히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하루가 걸리더군요. 그 하루는 내 평생에 가장 긴 하루였습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나고 우린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어찌하다가 뉴질랜드의 왕가레이 시골에 살게 되었는데, 요즘은 그 할머니 잔소리가 하도 심해서 어떤 땐 내 머리가 돌아 버릴 지경입니다. 그럴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 때 보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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