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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김지향 0 1,031 2016.10.12 16:56

눈부시게 빛나는 분홍빛 벚꽃들이 일주일 내내 내리는 봄비를 맞고 축축한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회색 하늘에 화사한 핑크색보다야 보라색이 더 잘 어울리지만, 빛이 사라진 거리는 스산하기 짝이 없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즐거움에 힘든 줄도 모르고 지냈었는데, 마음과 달리 몸이 힘들었었나 보다. 입천장이 헐고 잇몸이 부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쉬라는 징조.

 

음악을 틀어 놓고 입안에 따끈한 물을 머금고 있었다. 입천장이 따갑고 쓰리고 아릿했지만, 잇몸과 이 역시 얼얼한 아픔으로 욱신거렸지만, 입안 전체가 편안해지고 있었다. 몸도 마음을 써주는 것만큼 스스로 치유하려 노력하고 있겠지.

 

주말인 오늘과 내일은 온통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지내기로 했다. 내 입이 원하는 것을 먹고, 내 눈이 보고 싶어하는 책을 읽고, 내 귀가 듣고 싶어하는 음악을 듣고, 내 몸이 원하는 자세로 뒹굴면서 놀기로 작정했다.

 

보통 사람들의 삶 그대로 자라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려나가면서 산 세월을 돌이켜 보니 남는 기억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보호자의 입장이 서로 뒤바뀌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는 중이다. 

 

지구 저 반대편의 뉴질랜드라는 타국에 와서 살기에 보통의 삶이라기엔 좀 무리가 있겠지만, 빈 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인생의 큰 틀 속에서 보자면 50보나 100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요즘 나는 나이를 잊고 산다. 내 병을 알고 나서부터 더욱더 그러하다. 내 병을 이기려 들지 않는다. 죽는 그날까지 병과 더불어 친구처럼 지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의사의 지시를 꼬박꼬박 잘 따르면서 약도 잘 먹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하늘이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나에게 일을 주었다.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일이며, 내 팔자에 없는 일로만 생각했었던 옷을 판매하는 일이다. 하지만 병을 이기려는 마음으로 그 일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생각보다 옷 파는 일이 재미있었다. 천차만별의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통해 그들 안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연민의 정이 일었다. 일을 통해 병을 이기려 했었던 나의 어리석음도 들여다 보였다. 일과 병을 친구로 삼아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을……

 

나는 모자가 참 잘 어울리는 여자다. 모자만 쓰면 나이를 잊게 된다. 그래서인지 모자를 즐겨 쓰는 편이다. 이 세상에서 모자가 가장 잘 어울리는 여자라는 찬사를 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 말이 아부일지라도 모자가 잘 어울리는 내가 참 기분 좋다.

 

옷에 어울리는 모자를 쓰고 매장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베레모부터 니트모자들까지 여러 종류의 모자를 쓰지만, 때로는 올림 머리를 하느라 모자를 쓰지 않는 날도 있다. 살아 움직이는 마네킹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따르느라 예쁘게 단장을 하고 손님을 맞이하지만, 영혼의 존재인 인간이 어찌 살아있는 마네킹으로만 만족할 수 있으랴.

 

병 때문에 살 찔 날이 없지만, 그 덕분에 옷 맵시가 좋다. 그런 면으로 내가 앓고 있는 병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병을 잘 다스려 가면서 일과 병행해 나가면 그만이다. 

 

쇼핑몰 상인들과 나누는 정 또한 매우 즐겁다. 맞은 편에 보이는 로또 매장의 판매원들은 $50짜리를 잔돈으로 바꿔주는 일을 해주며, 액자 맞춤 판매를 하는 옆집의 꽤나 예술적인 멋쟁이 여자도 항상 밝은 웃음으로 나를 대한다. 내가 입은 옷을 사고 싶어하기도 하고, 내가 권하는 옷을 입어보기도 한다.

 

이렇게 한 달 넘게 레빈을 다니면서 무리를 한 것 같다. 지난 주 내내 비가 오면서 몸도 덩달아 피곤하더니 드디어 입안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칼럼을 쓰고 있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아팠던 내 잇몸은 스스로 치유를 하고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나 자신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감사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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