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힌치 골프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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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라힌치 골프클럽

0 개 2,427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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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힌치 골프클럽 올드코스 16번 홀(파3·192야드) 그린 뒤로는 페어웨이 빌라가 늘어서 있고, 멀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홀은 그린의 언듈레이션이 심한 데다 5개의 벙커가 그린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아일랜드의 라힌치 골프클럽은 수도 더블린 국제공항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다. 아일랜드 역시 스코틀랜드처럼 링크스 코스가 많다. 

 

라힌치를 이곳 사람들은 Leath-inch라 부르기도 한다. Leath는 2분의 1이란 뜻이고, inch는 island를 의미한다. 라힌치는 그 역사가 한 세기를 훌쩍 넘는다. 123년 전인 1892년 4월 11일 톰 모리스의 설계로 문을 열었다. 이후 1927년 앨리스터 매킨지에 의해 재단장됐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1998∼2001년 마틴 호트리가 레이아웃에 변화를 줬다. 대서양을 잘 볼 수 있고, 코스 전장을 최대한 넓혀 지금의 파72, 6950야드의 프라이빗 코스를 만들었다. 

 

티잉 그라운드 주변에는 마람 그라스(해변 사구에서 자라는 키가 큰 풀)를 심어 해변을 거닐 때 골프 코스가 가능한 한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톱 플레이어인 필 미켈슨은 라힌치의 회원이자 홍보대사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링크스 코스로 라힌치를, 파크랜드 스타일 코스로 오거스타내셔널을 꼽다 보니 그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유명 인사들이 매년 1000여 명 이상이라고 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출연했던 배우 크리스토퍼 리와 할리우드 스타 마이클 더글러스가 이곳에서 라운드했다.

 

라힌치의 18홀은 모두가 시그너처지만 그중에서 4번 홀(파5·475야드)은 페어웨이가 뱀처럼 구불구불 휘어져 있다. 티 샷을 페어웨이 오른쪽 가장자리로 보내야 두 번째 샷이 유리해진다. 특히 310야드 전방 페어웨이 중앙을 가로막고 있는 V자형 언덕을 넘을 때는 거센 바람과 경기 진행을 위해 언덕 위 움막집에서 적·청색 깃발로 수신호를 하는 노인을 볼 수 있는데, 그린이 보이지 않는 특별한 홀이기 때문이다. 

 

‘델’로 불리는 5번 홀(파3·154야드)이 가장 유명하다. 그린이 울퉁불퉁한 젖가슴 같은 3개의 모래 둔덕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 데다 대서양의 거센 바람이 분다. 필자는 티잉 그라운드에서 3번 우드를 잡고도 그린에 올리지 못했다. 변화무쌍한 날씨도 특징이다. 바람이 불고 보슬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햇볕이 내리쬐고 화창해진다. 그러다가도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 앞으로 걷기가 쉽지 않다. 바닷게처럼 옆으로 걸었던 추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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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사진은 리힌치 골프클럽 4번 홀. 페어웨이 언덕에서 진행요원이 골퍼들에게 깃발로 수신호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젖가슴 같은 둔덕에 숨겨 놓은 5번 홀 그린 전경 

 

필자는 2003년 6월 라힌치를 처음 방문했다. 2002년 월드클럽챔피언십(WCC) 선수로 나인브릿지를 방문했던 이곳 회원 파드리그 매클너니가 필자를 초청했다. 우리 일행이 바람막이 등으로 중무장한 데 비해 그는 반팔 차림으로 등장해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춥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골프는 자연에 대한 도전이고, 이런 기후에 항상 노출돼 있기 때문에 추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라운드를 마친 뒤 라힌치 북쪽 해안 절벽인 길이 8㎞, 높이 214m에 이르는 ‘클립스 오브 마더 돈벡(Cliffs of Mother Donbeg)’을 구경했고, 세계적인 흑맥주 기네스와 머피스로 잘 알려진 펍 마을도 경험했다. ‘아일랜드를 알고 싶으면 펍을 찾으라’는 말이 있다. 라운드를 마치고 흑맥주의 구수한 맛, 소박하고 독특한 펍 문화를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도 가졌다. 아일랜드인들은 척박한 땅에 살면서도 도전과 극복의 정신을 잃지 않고, 사람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박 3일간의 짧은 방문을 끝내고 아일랜드를 떠날 시간이 됐다. 우리 부부는 공항으로, 매클너니는 집으로 향하면 됐지만 그는 한사코 공항까지 배웅해 주겠다며 따라왔다. 그를 8년이 지난 2011년 5월에 재회했다. 

 

제주 나인브릿지에서 열린 WCC대회에 그가 선수로 참가해 다시 만났다. 모허 절벽을 배경으로 찍었던 사진을 모허 절벽의 돌에 새긴 시계를 선물로 가져왔다. 대회가 끝나고 다음 날 새벽이면 떠날 ‘친구’에게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란 말을 꺼내자 매클너니는 필자를 부둥켜안고 울기까지 했다. 

 

필자는 2012년 7월, 죽기 전에 다시 가보고 싶은 우정의 땅 아일랜드를 다시 찾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오후 10시쯤 더블린 공항에 도착했다. 매클너니와 함께 인근의 명소, 유명 골프장 등을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머물던 1주일 동안 숙식을 같이했다.  

 

매클너니가 더블린에서 노스아일랜드 북쪽의 벨파스트까지 4시간을 직접 운전하며 안내해줄 때는 큰 감동을 받았다. 지금도 아일랜드에서의 추억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햇살, 그 해풍과 함께 이 시간에도 깊은 풀 속에서 볼을 찾고 있을 그 친구가 정말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김운용: 호서대 골프학과 교수 겸 세계 100대골프장 선정위원

■ 제공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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