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박종배
정석현
정동희
한일수
정윤성
크리스티나 리
Shean Shim
송영림
김준
엔젤라 김
오클랜드 문학회
박현득
박명윤
김영안
Mina Yang
써니 림
여디디야
강명화
새움터
수선재
휴람
마리리
김임수
이윤수
조성현
박기태
유영준
성태용
김철환
피터 황
Jane Jo
조석증
신지수
오즈커리어
Jessica Phuang
김수동
최성길
동진
이동온
김지향
이현숙
한 얼
박승욱경관
빡 늘
CruisePro
봉원곤

라디오 - 침묵을 채우는 방법

한얼 0 888 2016.09.28 13:25

라디오를 원래 자주 켜놓는 성격은 아니었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는 대개 불쾌하게만 느껴졌고, 그런 목소리들이 아무래도 좋을 문제로 떠들어대는 걸 가만히 참으며 듣고 있을 성질은 못되기 때문이다. 보통 라디오, 혹은 오디오 기기는 내게 있어서 음악 CD를 틀어놓을 매개체 정도밖에 되지 못했고 그건 아주 최근까지도 변치 않았다.

 

음율에 맞춰서 미리 정해진 가사를 부르는 게 대화보다 듣기 편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은, 특히 낯선 이들 간의 것이라면, 어딘지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됨과 동시에 거슬리는 구석이 있다. 까닭 모를 적의 비슷한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 내내 이어폰을 귀에 꽂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소리는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이고, 허락 없이 주변 공기를 침범하는 바깥의 소음은 말 그대로 침입자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타인의 존재와 요소를 배제한다.

 

한국에 살 때는, 자동차에 USB를 꽂아 노래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 당시 내 기준으론 - 매우 충격적이기 짝이 없는 첨단기술(?)이 있어서 아주 행복했다. 출퇴근 내내 남의 목소리보단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간혹 USB를 잊어버릴 때가 있었고, 그럴 땐 가끔 기분 전환으로 라디오를 틀어보기도 했지만 이내 견디지 못하고 꺼버렸다. 출퇴근 시간의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광고들은 무척이나 방정 맞고 경박했다. 차라리 나레이터의 목소리 없이 음악만 24시간 내내 틀어주는 채널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주파수가 있다면 찾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모든 성우들의 목소리가 싫었던 건 아니었다. 가장 기억에 깊게 남은 건 <배미향의 저녁 스케치>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퇴근 시간이면 제일 쉽게 들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빠가 좋아하는 방송이었다. 여자 DJ라면 보통 높은 소프라노일 거라던 내 편견을 깨부숴준 프로그램으로, 나레이터의 음성은 원숙하면서도 낮고, 침착하고, 깊이가 있었다. ‘듣기 쉬운 목소리’ 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듣기 좋을 뿐만이 아니라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목소리. 고르는 음악들도 대체로 옛날의 흘러간 팝송들이어서 거부감 없이 청취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 돌아오고 나서는 다시 라디오를 거의 듣지 않는 생활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내가 일하는 직장에선 영업 시간 내내 라디오를 틀어놓기 때문에 반강제로 그 소음들을 견뎌내야만 한다. ZM의 시끄러운 방송, 세 명의 남녀 DJ가 웃고 떠들고 가끔은 어깨를 움츠리게 만드는 꽁트를 주고 받는다. 그들의 목소리는 물론 <배미향의 저녁 스케치>는 아니다. 꽤 견디기 힘들 정도로 항상 에너제틱하고 감정의 모든 세세함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따금씩 한 마디를 던지고선 박장대소를 하는데, 머리 위의 스피커들이 우렁우렁 울릴 정도로 시끄럽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이 방영할 때가 되면 항상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DJ들이 떠들지 않을 때면 광고와 음악이 주류를 이룬다. 보통 최신 유행곡들이나 빌보드 차트 순위에 오른 음악들이지만, 요즘 들어 10여년 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가 옛날의 히트곡들을 틀어준다. 가끔은 70~80년대의 음악이 나올 때도 있다. 그렇다보니 좋든 싫든 최신곡들에 대해선 아주 잘 알게 되었다.

 

라디오를 듣다 보면 음악이, 불과 내가 어렸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도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곰곰히 생각하면서, 음악은 변하는데 사람은 역시 쉽사리 변하지 않는구나, 란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플러스 광고

조앤제이
조앤제이 09-336-1155 각종 뉴질랜드 이민 비자 전문 Immigration Adviser Kyong Sook Cho Chun T. 093361155
미드와이프 김지혜
무료 산전 관리및 분만, 산후관리를 해드립니다. 와이타케레, 노스쇼어, 오클랜드 산모 환영 T. 021-248-3555
Global Lead Logistics International /지엘아이해운(주)
이사짐,운송,한국구매대행,포워딩,무역,상업화물,개인화물,한국배송 T. 09-410-3181

겨울 - 춥지만 믿지는 않은

댓글 0 | 조회 684 | 2016.12.07
한국에는 눈이 왔다고 호들갑스러운 연락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벌써? 아직 11월인데! 하지만 날씨는, 그리고 기온은 그런 틀에 박힌 시간 관념 따위엔 전혀 상관 않는 모양이다… 더보기

할로윈 - 믿고 즐기는 축제

댓글 0 | 조회 740 | 2016.11.22
할로윈이 왔다 갔다. 고작 24시간, 하지만 정말 파란만장한 하루였다.한국에서 살았을 때 할로윈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명절(?)이었다. 기껏해야 영어 학원에서 과자나 사탕을 나누어… 더보기

포스터 - 보다 세련된 영역 표시

댓글 0 | 조회 588 | 2016.11.09
나의 방, 나의 공간이란 개념이 생길 적부터 벽에 뭔가를 붙이는 것을 좋아했다. 붙이거나, 걸거나.대개는 엄마가 손수 만든 예쁘장한 섀도우 박스(Shadow box) 종이 공예이거… 더보기

나이트 마켓 - 관광, 혹은 작은 일탈

댓글 0 | 조회 1,476 | 2016.10.12
오클랜드의 명물이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마켓(Market)을 꼽을 것이다. 한글로는 7일장 정도라고 표현하는 게 적당할까. 데이 마켓, 나이트 마켓 상관 없이 모두 흥겹다. 돌아다… 더보기

현재 라디오 - 침묵을 채우는 방법

댓글 0 | 조회 889 | 2016.09.28
라디오를 원래 자주 켜놓는 성격은 아니었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는 대개 불쾌하게만 느껴졌고, 그런 목소리들이 아무래도 좋을 문제로 떠들어대는 걸 가만히 참으… 더보기

장난감 - 어려서도, 커서도

댓글 0 | 조회 1,098 | 2016.09.15
결혼한 사촌네 집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이제 곧 두 돌이 되는 조카의 어마어마한 장난감들 때문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책들은 물론이고, 산지사방이 장난감 투성이였다. 온갖 … 더보기

Indian Summer

댓글 0 | 조회 1,324 | 2016.08.25
한국은 최고 기온 40도를 돌파한 곳이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정말 해가 갈 수록 더워지는구나. 심지어 대구였던가 인천이었던가, 하여튼 어느 지역에선 길바닥에 계란을 까놓으니 … 더보기

시간 - 지켜야만 하는 것

댓글 0 | 조회 807 | 2016.08.10
시간을 지키는 것에 예민하다. 무척이나. 다른 사람들은 과민 반응이라고 할 정도로.조금이라도 늦을 것 같으면 손에 축축하게 식은땀이 배고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약속이 잡히면 그 … 더보기

길가의 고양이들

댓글 0 | 조회 894 | 2016.07.27
뉴질랜드의 거리에는 유독 고양이들이 눈에 띈다. 줄에 묶여 있거나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도 없이 저들끼리 혼자서 유유자적하게 길가를 활보하는 걸 보면 조금 놀랍다. 위험하지 않을까,… 더보기

해후 - 피하고 싶은 돌발 이벤트

댓글 0 | 조회 843 | 2016.07.14
알고 지내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 번 보지 않을 거라면, 아예 영영 마주치지 않고 지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물론 껄끄러운 이유로 다신 마주… 더보기

카페 - 재인식의 장소

댓글 0 | 조회 819 | 2016.06.08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단골로 삼는 카페가 흔히 나온다. 이야기의 무대가 될 수도, 혹은 그냥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 지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 더보기

숲 속을 걸어요

댓글 0 | 조회 871 | 2016.05.26
숲 속을 걷는다.대개는 운동 삼아서다. 숲으로 나오는 이유는, 이곳에 숲이 있으니까. 평소라면 동네 한 바퀴를 돌 테고, 콘크리트나 시멘트가 뛰기에도 더 편하지만 굳이 숲을 고집하… 더보기

초콜릿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

댓글 0 | 조회 885 | 2016.05.12
<초콜릿 애호가의 이야기> 라는 책이 있다. 제목 그대로 초콜릿을 애호하다 못해 사랑하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단순한 시판 판 초콜릿에서부터 프랄린까지 다양한 초콜릿을 소… 더보기

동생 - 애매하지만 사랑스러워

댓글 0 | 조회 891 | 2016.04.28
동생이란 존재는 애매하다. 자식은 아닌데, 거의 필연적으로 무조건 사랑하게 된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져버린 지금에도 불구하고 챙겨주고, 책임져야만 할 것 같은 막연한 무게를… 더보기

다 카포 - 몇 번이고 다시

댓글 0 | 조회 1,290 | 2016.04.14
반복이라는 것에 익숙하다. 일상에서, 취향에서,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에서도.좋아하는 영화가 있으면 몇 번이고 돌려 보고, 좋아하는 노래는 몇 년째 폴더에 넣어둔 채 즐겨 듣고, … 더보기

재즈 - 달콤한 한의 선율

댓글 0 | 조회 1,110 | 2016.03.24
재즈를 좋아한다. 음악 장르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사랑하고 있다. 귀에 하도 익숙해져서, 요리를 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처럼 몸에 익어 딱히 생각이 필요 없을 일을 할 때면 항상 재즈… 더보기

죽음에 관한 생각 몇 가지

댓글 0 | 조회 1,102 | 2016.03.10
죽은 고슴도치를 보았다.죽은 지 제법 오래 되어 보이는 시체였다. 자주 운동 가는 산길의 나무 울타리 옆에 오도카니 누워 있었는데, 등은 땅에 대고 배는 하늘을 향한 자세였다. 배… 더보기

사진 - 기억하고 싶은 것

댓글 0 | 조회 847 | 2016.02.25
사진을 찍는 것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내가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납작하고 평면적인 이미지로 나 자신을 보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같은 이유에서 초상화도 싫어한다. … 더보기

일의 조각들

댓글 0 | 조회 1,198 | 2016.02.11
그러고보면 나름대로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직장을 전전했다. 한국과 뉴질랜드를 넘나들면서.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본 일이라면 아마 과외일 것이다. 그냥 아는 사람에게 돈만 받고 해주는… 더보기

휴가 - 안락한 일탈과 자유

댓글 0 | 조회 1,230 | 2016.01.28
휴가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머나먼 곳으로.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이 포괄적인 의미의 ‘휴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가=집이 아닌 곳으로 여행을 떠나 노는 것’이라고… 더보기

담배 - 어른의 향기

댓글 0 | 조회 1,011 | 2016.01.13
남동생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깨닫고는 있었는데,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물론 동생은 왜 이제 와서 그러냐는, 새삼스럽기 짝이 없는 … 더보기

향수 - 조금은 아찔한 향기

댓글 0 | 조회 1,167 | 2015.12.23
자주 받는 선물 중에 향수가 있다. 좋긴 한데, 조금 묘한 기분이 든다. 뭐지? 나한테서 냄새나나......? 같은. (물론 주는 사람들의 의도는 순수할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믿… 더보기

이빨 - 얻기 위해 잃어야 하는 것

댓글 0 | 조회 1,400 | 2015.12.10
아침밥을 먹다가 이빨이 깨졌다. 정말 어처구니 없었다. 나름 건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만이었던 걸까. 잠깐 아연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딱딱한 걸 먹고 있었냐면, 그것도… 더보기

눈물에 대한 생각 몇 가지

댓글 0 | 조회 1,158 | 2015.11.26
눈물이 헤픈 편이다.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자극에도, 조금만 감정이 북받쳐 올라도 목소리가 먼저 떨리고 바로 눈 앞이 흐려질 만큼. 감정적이라고 부르는 게 더 옳은 표현일 지도 모… 더보기

결혼에 대한 고찰 하나

댓글 0 | 조회 1,282 | 2015.11.12
결혼. 고민은 많이 해보지 않았고, 생각도 그다지 해본 적은 없지만 궁금한 것이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사회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여 회의적인 편이긴 하지만 (세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