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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NCEA internal 시험에 관련해서 필자의 애간장을 녹이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젠 그러려니.. 할 때도 됐건만 학생이 느낄 당혹스러움과 그 동안의 노력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고 혈압이 올라 흔히 말하는 ‘불을 싸지르고 싶어’ 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 학생은 NCEA Y13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과정에 따라 물리 실험보고서를 쓰는 internal 시험을 보았다. 아직 영어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준비했고 NCEA 특유의 말도 안 되는 평가기준을 수없이 경험한 필자는 조심에 또 조심, 당부에 또 당부를 해가며 써야 할 말과 안 써야 할 말, 해야 할 계산과 안 해야할 계산을 가르쳐 가며 준비를 시켰다. 시험 후 일주일이 지나 받은 카톡 사진엔 그의 실험보고서에 대한 평가시트가 실려있었는데 찬찬히 훑어보니 Achieve 마크는 충분하고.. Merit도 됐고… Excellence 마크는… 아이고… 하나가 부족해서 애석하게 Merit.. 이라고 생각 했으나 맨 밑의 최종평가란에는 당당히 ‘N’이 버티고 서서 학생이 Fail했음을 알려 주었다. 뒤이어 딸려오는 메시지.. 선생님이 공식을 쓰지 않아서 fail이라 했단다.
물론 규정상 그 공식을 써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은 그 공식이 이미 학교에서 주는 실험 설명문에 써 있는 공식이고 학생 또한 그 공식을 활용해 계산한 과정을 무려 한 페이지에 걸쳐 빽빽히 적어놓았으며 그 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그린 그래프에서 이미 Merit 마크를 받은 상태였다. 심지어 공식의 부분 부분을 나누어 더 높은 수준의 관련된 식으로 유도해 풀어놓기까지 했으니 정상적인 정신상태와 아주 기초적인 논리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Excellence를 줘도 모자랄 상황인 것이 당연하다.
학생에겐 일단 본인의 실수를 인정시킬 수 밖에 없어서 그렇게 조심하라 했건만 왜 공식을 빠트렸냐고 나무랐지만 필자의 마음이 불붙는 것같이 화끈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을 좀 가라 앉히고 선생님께 어필할 방법을 이야기 한 후 또 며칠이 지나.. 아이는 자신의 요구에 선생님이 재 평가를 해보고 최종적으로 몇 가지 구두테스트를 한 후 결국 Achieve를 주었다며 연락을 해 왔다. 다행이 선생님이 보기에도 fail할 상황은 아닌 것만은 분명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아직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완벽에 가까운 리포트를 쓰고도 ‘몇 백만년’이라는 표현을 ‘매우 긴시간’으로 써서 Fail하고 ‘Specific’ 대신 ‘unique’를 써서 감점되는 사례 등 믿지 못 할 일들이, 마치 판타지소설의 논리라고는 눈꼽 만치도 없는 해프닝들처럼 번번히 발생하는 작금의 현실은 NCEA의 평가방법이 바뀌지 않는 한 지속 될 것이 뻔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무조건 외운다. 한국의 암기식 공부법도 문제가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건 지식의 내용을 외우는 것이니 어떻게든 참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NCEA 학생들은 과학 기출문제의 답을 질문에 있는 단어와 답안지에 있는 단어를 연결해 가며 외운다. ‘문제에 이 단어가 있으면 이 단어를 답에 써야 해..’ 하는 식으로.. 그리고 이렇게 답만 달달 외우는 학생이 대부분인 현실 때문에 NZQA는 문제 형식, 내용의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고 작년, 재작년.. 그리고 10몇년 전… 그 오래된 문제들의 내용을 그대로 전승(?)하며 똑 같은 토픽에 똑 같은 형식을 재탕하고 있다.
명색이 시험이니 어떻게든 변별력은 있어야겠기에 토픽들을 뒤 섞어서 때때로 다른 유닛을 만들기도 하고 괜히 문제만 꼬아서 머리만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개선 보다는 그냥 ‘헤쳐 모여’에 가깝다. 참으로 답답한 상황인데 거기에 더해 더욱 슬픈 것은 필자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르치는 마음이 죄를 짓는 것만 같다. 이 아이들이 이렇게 손과 입만 훈련하고서 대학에 가면 어떤 충격과 괴로움에 직면할 지 너무도 확실히 알고 있는 필자가 어떠한 개선책을 찾아줄 수가 없음이 많이 괴롭다. 필자가 가르치는 물리와 화학의 경우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대학 1학년 과정에서, NCEA처럼 길고 긴 에세이에 속칭 ‘Keyword’를 필수로 써가며 답을 해야 하는 문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길어야 한 두 줄의 답이나 설명, 혹은 아예 객관식 시험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그럼 이렇게 비 논리적인 잣대를 적용해 아이들을 괴롭혀가면서 답안지만 달달 외우게하는 NCEA의 교육방식은 어디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학생들이 자신이 공부하는 과정을 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아군’이기보다는 ‘적군’인 경우가 더 많은 NCEA 과정을 생각할 때 지나친 억지 적용은 아닌 듯 하다. 어차피 필자나 학생들, 학부모들이 개선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로선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 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으니 속 상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좋은 길을 찾아내 달려 가도록 하자.
NCEA external을 준비하고 있는 모든 한국 학생들… 기출문제와 답안지를 잘 참고해서 공부하도록 하고 특히 물리과목의 경우 최근 맨 앞 페이지에 써 있는 공식들 (formula sheet) 중 적절한 공식을 찾기 힘들도록 문제를 꼬아서 내는 경향이 있으니 문제가 말하고 있는 상황을 주의해서 읽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정 이해가 안 된다면.. 그 동안 하던 대로 문제 내용과 답안지 내용을 비교해서 외워주길 부탁한다. 미안하다.. 이렇게 말 할 수밖에 없어서, 제대로 된 공부를 하도록 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