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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디자인, 블렌딩(Blending)의 세계

피터 황 0 2,794 2016.08.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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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손님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맛 집들은 대부분 한 가지 메뉴로 승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창적인 비법으로 대를 이어가면서 전통의 맛을 변함없이 지켜가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된 손님이 손자와 함께 다시 와서 추억의 맛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와인의 경우는 한가지가 아닌 여러 품종이 블렌딩을 통해서 매력적인 모습으로 변화되어 우리에게 등장하곤 한다.  

 

포도는 품종에 따라 고유한 자신의 성격과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연이 주신 선물을 인간의 창조물로 만들기 위해서 과학적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이 블렌딩(Blending)이다. 블렌딩의 가장 큰 이유는 단일 품종이 연출하지 못하는 다채로움을 만들기 위해서다. 또한 매년 다른 자연조건으로 인해 빈티지마다 특색이 다르고 작황과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절하게 배합해서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커버하려는 목적도 크다. 해마다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와인 생산자들은 빈티지간에 블렌딩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샹파뉴 지역에서 만드는 넌 빈티지(Non-Vintage) 샴페인이다. 샹파뉴는 프랑스에서 가장 추운 와인산지로 해마다 기후의 기복이 큰 지역이어서 여러 해의 와인을 섞음으로써 품질과 맛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또한 같은 품종이라도 어느 밭에서 자랐느냐에 따라서 완숙하고 폭발적인 힘을 가지고 있거나 차분하고 우아하며 보다 섬세한 성격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대형 와인 생산자(슈퍼마켓 와인)들은 이렇게 각기 특성이 다른 밭에서 재배된 포도를 고루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의도하는 캐릭터를 대량의 와인에 불어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밭과 밭의 블렌딩을 하지 않는 와인의 라벨에는 단일 포도밭(Single Vineyard)이라고 표기하고 그 밭의 개성을 정확히 읽어서 와인으로 구현해야 되기 때문에 와인을 만들기가 어렵고 일반적으로 가격도 비싸다.    

 

와인 블렌딩의 본 고장은 프랑스 보르도(Bordeaux)다. 프랑스의 보르도가 와인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것이 단지 특급와인들이 생산되는 자연 조건만은 아니다. 보르도에서 손꼽히는 와인의 명가들은 숙련된 와인제조 기술과 더불어 자신만의 독자적인 블렌딩 비법을 통해 특급의 섬세한 와인으로 승화시킨다. 적게는 두 가지에서 많게는 다섯 가지의 품종을 절묘하게 혼합해서 포도 품종간의 장점을 두루 취함으로써 넓은 맛과 오묘한 향의 스펙트럼을 갖게 되고 뛰어난 복합 미와 조화미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사실, 한가지의 품종만으로도 세계적인 와인이 된 경우도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멜로 같은 단일 품종으로도 명품이 만들어지며 특히 피노누아 100%로 와인을 만들어 와인평가관들의 무릎을 꿇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극히 일부이며, 대부분의 와인은 와인의 완성도를 위해서 블렌딩이 필요하다. 사실 세계최고와인의 90%는 블렌딩와인이다. 소비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음식 또한 재료나 방식에 있어서 각양각색으로 발전해 가기 때문에 와인 또한 이에 발맞춰 변신해 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와인의 평가과정을 알게 되면 이해가 쉬워진다. 보통 와인의 색(Color), 향(Aroma, Bouquet), 맛(미각)의 3단계 과정을 거쳐서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마지막은 가장 중요한 ‘느낌’이다. 느낌은 와인의 안정성을 감별하는 데 이용된다. 즉 와인이 잘 숙성되고 윤기가 흐르며 알코올 도수와 당도가 높은가, 아니면 숙성이 잘 안돼서 자극적이고 산도나 타닌 함유도가 지나치게 높은가를 보여준다. 느낌은 특히 와인의 두 가지 품질 기준인 질감(Texture)와 구성(Structure)을 담당한다. 여기서 질감이란 와인의 수분과 알코올 성분을 증발시킨 후 남는 추출물과 당분, 알코올의 무게를 말한다. 질감은 특히 입안에서 느끼는 충만감으로 나타난다. 쉽게 말하면 미숫가루를 조금 풀어서 마실 때와 좀 더 풀어서 마실 때, 입안에서 다르게 느껴지는 느낌이 질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성(Structure)이라는 것은 질감의 요소와 산(Acidity), 타닌(Tannin)의 결합에서 느껴지는 느낌이다.

 

결국 와인을 시음할 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느낌들 사이의 조화(Balance)에 유의하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가 지나치면 좋지 않다. 좋은 와인은 삼킬 때 아무런 자극이 없어야 하고 인후의 옆면을 부드럽게 스치고 내려가며 풍부하고 다양한 향기(Aroma)를 여운으로 남긴다. 아로마를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을 여운(Finish) 혹은 뒷맛이라고 하는 데, 이 길이를 시간으로 재는 시음가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에게 있어서 블렌딩은 단순히 각 와인들의 맛과 향을 혼합하는 과정만은 아니다. 블렌딩을 거치면 각각의 포도 품종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향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더욱 복잡해지고 새로운 향을 탄생시키며 볼륨 감이 더욱 깊어져서 맛과 개성이 강해진다. 결국 블렌딩(Blending)은 와인을 ‘자연의 영역’ 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그래도 나는 우직하게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한가지의 품종으로 해마다 도전을 통해 실패와 성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와인이 좋다. 단순함은 궁극적인 완성으로 이르는 길이다. 나도 그렇게 자연처럼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너그러우며 봄의 햇살처럼 담백하고 소탈한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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