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바람벽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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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람벽이 있어

0 개 1,690 오클랜드 문학회

글쓴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셔츠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다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는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굿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에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쳐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즈 쟘’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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