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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이 부른 ‘백만 송이 장미’의 원곡은 라트비아의 민요로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이다.
가사 내용은 ‘백만 송이 장미’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강대국에 나라의 운명이 휘둘리는 라트비아의 고난을 암시한 것이며. 제목에 나온 마리냐는 라트비아의 여신으로 최고의 신중 한 명이다.
알라 푸가조바가 불러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백만 송이 장미’의 가사 역시 원곡과 다른 내용으로 한 가난한 화가의 유명한 여배우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것인데,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 가사는 한국 대중들의 영혼을 울리고도 남았다.
조용한 파미에서 한국 문화와 동떨어져 살고 있는 나까지도 ‘백만 송이 장미’를 흥얼거리면서 살아왔으니 ‘백만 송이 장미’의 위력은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가 머릿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던 요즘 복면가왕 음악대장 덕분에 다시 듣게 되었는데, 내 영혼을 크게 정화시키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정화를 시켜주었다.
다음 블로그에 ‘행복 편지’를 쓰는 내내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와 함께 살았다. 아낌없이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은 소망인 ‘행복편지’가 ‘뉴질랜드에서 온 행복편지’라는 제목의 단행본이 되어 출판이 되었다. 그 책이 계기가 되어 수필가로 등단이 되었는데, 부끄러운 필력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백만 송이 장미’는 내게 있어서 대단한 인연의 노래였는데, 복면가왕 음악대장의 감성으로 이 노래에 다시금 빠져들게 된 것이다.
사랑인 본연의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시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직도 선택과 시도의 과정 속에 있지만, 내 삶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과정이 되겠지만, 본연의 나 자신을 찾기 위한 길을 꾸준히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사랑처럼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본연의 내 자신이 사랑이니, 결국 내 자신이 참으로 아름다운 존재임을…….
아름답다에 대해서 살펴보면, 알다(知)라는 동사 어간에 `-음` 접미사가 붙은 알음(知)에 `-답다` 접미사가 붙어서 아름답다가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는 아는 것이 아름다운 것의 본질이 된다는 것이다. 두 팔로 껴안을 수 있는 길이나 양을 뜻하는 ‘아름’에 ‘답다’를 붙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고전을 들여다 보면 나답다는 뜻과 아이답다라는 뜻도 포함 되어 있다.
전 우주적인 낱말인 ‘아름답다’란 말을 나는 참으로 즐겨 쓰며, 내 삶의 중심에 두고 있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몰랐었는데, 아름답다라는 말의 어원을 찾다 보니 그 이유를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내 내면은 이미 아름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백만 송이 장미를 피울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우리 본연인 것이다. 우리 DNA에 새겨져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덕지덕지 에고가 붙어 딱쟁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딱쟁이들을 떼어내는 것이 정화작업이며 그 정화작업에는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다.
시련과 고통이 함께 하는 삶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치 때문인 것이다. 사는 게 너무 힘이 들어서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고통이 고통으로만 느껴지지 않고 희망으로 보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백만 송이 장미를 피우는 사랑이 되어 본연의 나 자신인 별나라로 돌아갈 그날을 기리면서…….
감사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