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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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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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애호가의 이야기> 라는 책이 있다. 제목 그대로 초콜릿을 애호하다 못해 사랑하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단순한 시판 판 초콜릿에서부터 프랄린까지 다양한 초콜릿을 소개하면서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남자는, 어렸을 적 슬플 때면 어머니가 입 안에 초콜릿 조각을 넣어주고, 눈을 꼭 감은 채 열까지 세어보라고 하던 기억을 가장 핵심적으로 떠올린다. 그가 초콜릿 애호가가 된 계기이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그는 초콜릿만 있다면 그 어떤 슬픔이나 눈물도 버텨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어린 자신의 아들에게도 똑같이 달콤한 위로를 해준다.

 

단 것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척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초콜릿은 각별하다.

 

어렸을 때부터 초콜릿을 선물 받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보통 선물 받는 초콜릿은 곽 안에 여러 가지 모양이 든 상자들이었고, 그래서 두고두고 오랫동안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으레 부모님들이 그렇듯 우리의 체중과 치아 건강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엄마나 아빠도, 집을 찾아온 손님이 아이들에게 주는 초콜릿만큼은 차마 어쩌지 못했다. 그래서 초콜릿, 그것도 상자에 든 초콜릿은 내게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의미했다.

 

손님들이 가져오는 초콜릿은 대체로 비싸거나 유명한 상표였고, 종류도 길리안(Guylian)에서부터 고다이버(Godiva)까지 다양했다. 뉴질랜드에 오고 나서부터는 대체로 캐드버리 상표의 로즈(Roses)나 밀크 초콜릿 컬렉션, 페이버릿(Favourites) 등을 자주 선물 받았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길리안의 시쉘 컬렉션(Seashell Collection)이었다. 말 그대로 조가비 모양의 초콜릿들이 들어 있는 유명하고 상투적인 모음인데 이건 지금도 좋아한다. 특히 안에 심플하지만 진득한 가나슈가 들어 있는 가리비 모양 초콜릿을 제일 아껴 먹었다.

 

물론 엄마는 나나 동생이 초콜릿 선물을 받는 것을 그다지 탐탁잖아 했다. 초콜릿이 하나 둘씩 줄어갈 수록 필연적으로 최후의 한두 개를 사이에 두고 우리가 싸웠기 때문이었다. 이따금은 주먹다짐까지도 간 적이 있었고 (원래 아이들은 먹을 것에 필사적인 법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초콜릿 상자는 우리 손에서 빼앗겨 찬장 선반 높은 곳에 넣어졌다. 그리고 잊혀져서는 개미나 벌레가 잔뜩 꼬이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초콜릿에 얽힌 옛날의 기억은 초콜릿의 종류만큼 많다. 굳이 다 풀어놓자면 이 지면을 몽땅 할애하고도 모자랄 만큼.

 

어른이 된 지금은 아이였을 때와 달리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초콜릿을 사먹을 수 있다. 가끔씩 단 것이 폭주적으로 먹고 싶을 때를 대비해 일정량을 사서 비축해 두기도 한다 (물론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저장해두는 초콜릿은 보통 단순하고 보관이 쉬운 판 초콜릿이다. 휘태커(Whittaker) 상표를 가장 선호하지만 가끔은 와이카토(Waikato) 초콜릿처럼 다른 것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맛없는 초콜릿은 없으니까 (물론 민트맛만 빼고. 난 초콜릿을 먹고 싶은 거지, 치약을 먹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초콜릿을 직접 사먹는 것과 선물 받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누구에게 선물해도 실패할 확률이 적은 안전한 선물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초콜릿은 내게 사랑 (love, 혹은 care와 같은 개념의) 받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달고, 단순하니까. 그건 때때로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단숨에 전해준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초콜릿이 먹고 싶어져 서랍을 열었는데, 사다 둔 초콜릿이 없었다. 나는 몹시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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