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Ⅱ)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치과 (Ⅱ)

0 개 2,173 박지원

N의 동동거리던 발이 움직임을 멈춘 것은 의사가 주사바늘을 N의 입 속에서 뺀 이후였다. 기절했나?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지만, N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각도였다. 의사는 나갔고, 간호사는 멀뚱히 서서 구석의 ㄱ 자 테이블 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살짝 몸을 일으켜 누워있는 N의 발목을 잡았다. N이 고개를 들고 웃어보였다. 나는 안심했고, 그 때도 간호사는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검붉은 매니큐어가 반쯤 벗겨진 손톱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릴없이 마취가 잇몸에 퍼지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지구상에 N의 잇몸을 기다리는 사람이 넷이 있었다. N, 나와 의사 그리고 간호사. 간호사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이번에는 알콜솜을 만지작거렸다. 안 감아서 기름이 폈는지, 머리를 감고 나서 말리지 않은 채 묶은 것인지, 반들반들한 노란 염색머리가 눈에 거슬렸다. 조금은 살집이 있는 백인 여자였다. 이 일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멀거니 서 있는 참에,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 환자의 마취상태는 어떠한가? 간호사가 대답했다. 마취는 되었다. 의사가 다시 간호사에게 물었다. 환자에게 직접 물어보았는가? 간호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와 N이 황당하다는 듯 간호사와 의사를 번갈아 쳐다 보았다. 간호사는 우리와 대화가 없었으니, 아마 영어를 아예 모르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가끔 있는 일이다. 레스토랑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우, 주, 라익, 투, 오더? 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주아주 천천히 묻는 백인 웨이트리스의 또렷한 얼굴 같은 것들 말이다.

 

의사는 주저없이 드라이버처럼 생긴 도구를 꺼내며 N에게 입을 벌리라 말했다. 의사가 N의 벌어진 입 안으로 도구의 끝을 들이밀었다. N이 아! 하고 소리를 냈다. 간호사는 가만히 보고 있었고, 의사는 도구를 꺼내며 마스크 너머의 눈으로 간호사를 노려보았다. 간호사는 마스크 위의 눈을 내리깐 채 가만히 N을 보고 있었다. 번들거리는 머리카락. 

 

다시 주사를 놓았고, 발은 동동거렸고, 머리카락은 여전히 번들거렸다. 의사가 이번에는 나가다말고 간호사를 불렀다. Surgery 1에는 N과 나 둘만이 남았다. 우리는 간호사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마취주사가 얼마나 아픈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자줏빛 의자 위의 N은, 어제 비싼 돈을 주고 치과에서 지시한 약(아마도 진통제 였을 것이다) 을 먹었고, 이제는 마취제까지 3번을 맞았으니 돈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걱정했다. 나는 돈에 관해 조금 생각이 다르기에, 언제나 그렇듯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괜찮아, 우리 돈 많아. N은 사랑니가 붙은 입을 움직여 절규했다. 아니야 우린 이제 거지가 되어버릴꺼야! ..근데, 나 잇몸이 이상하다. 잇몸이 어떤데? 아무 느낌이 없어! 오오 신기하다, 그건 얼얼한 느낌이니? 모르겠어, 그냥 이상해, 없는 거 같은 느낌이야. 

 

의사가 들어왔다. 뒤이어 간호사도 따라왔다. 의사는 N에게 잇몸이 마취가 되었는지 물었고, N은 마취가 된 것 같다고 대답하려 했으나 입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 으어어, 했다. 의사는 충분했다 여겼는지, 아까와는 다른 드라이버같은 것을 꺼냈다. 이번에는 (-) 극 같이 생긴 드라이버를 꺼냈다. 어쩌면 정말 드라이버일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치과의사의 오전을 상상했다. 여보, 나 어제 책상을 조립하다가 두고 왔는데 창고의 공구박스에 있을 거야. 이따가 잠깐 들러서 갖다주고 갈 수 있겠어?

 

드라이버를 입 속에서 빼낸 후에 끝이 뭉툭한 집게같은 것을 N의 입 속으로 넣었다. 그 순간, N의 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약간 누런 이가 조명 아래 반짝이며 마술처럼 등장했다. 정말 옥수수같아 보이기도 했다. 옥수수 하나가 털린 N은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간호사는 suction을 하다말고 N에게 갑자기 촌스러운 썬그라스를 씌웠다. 썬그라스를 낀 N은 갑자기 1990년대 여자처럼 보였다. 미래도시처럼 하얗고 이상한 기계의 공간에 과거에서 온 여자가 누워있었다. 썬그라스를 늦게 씌운 탓인지, 의사가 간호사를 다시 노려보았다. 

 

그 후로는 누워있는 이를 꺼낼 차례였다. 드라이버와 집게와 드라이버와 집게와 또다른 갖가지 도구를 쥔 의사의 오른팔 팔뚝 위 힘줄이 민달팽이 기어가듯 꿈틀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옥수수가 등장했다. 마치 태양신을 숭배하듯, 그것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30분 정도 걸린 대작업이었다. 매복니는 힘들다더니 이거였던 듯 싶었다. N이 와아, 소리를 냈다. 의사가 실로 N의 입 속 어딘가를 꼬매기 시작했다. 게으른 옥수수의 흔적을 메우기 용이하게 만드는 작업이리라. 간호사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무엇인가 둘 사이에는 문제가 있는 듯 보였고, N의 입 속은 마취만 풀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끝났다. 얼음팩을 주며 주의사항들을 설명하는 리셉셔니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의사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계산을 하고, 우리는 나왔다. 하루 간의 얼음찜질과 더불어 4일 동안 N은 강제다이어트를 했고(이 때 옆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침내 김치를 오른쪽 이들로 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N이 말했다. “이빨이 뭐라고.” 

 

이것은 정보와 묘사의 연습을 위한 글이었으니, 정보도 남긴다. 첫 진료상담비 $205(X-ray 포함), 약값 $24.22, 수술비(일반 사랑니, 매복사랑니) $985. 거지는 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벙어리 장갑

댓글 0 | 조회 1,679 | 2016.05.26
너는 장갑이 싫다고 했다. 장갑이 왜 싫으냐, 물었더니 장갑은 다섯손가락 모두를 만들어야 해서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장갑이 싫은 것이 아니라 장갑을 만들기가 … 더보기

현재 치과 (Ⅱ)

댓글 0 | 조회 2,174 | 2016.05.11
N의 동동거리던 발이 움직임을 멈춘 것은 의사가 주사바늘을 N의 입 속에서 뺀 이후였다. 기절했나?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지만, N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각도였… 더보기

치과 (Ⅰ)

댓글 0 | 조회 3,679 | 2016.04.29
N과 함께 밥을 먹는데, N이 요즘 따라 자꾸 볼살을 씹는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양치를 하러 갔었던 N이 달려와 플래시를 켠 핸드폰을 건냈다. 사… 더보기

파랑과 검정

댓글 0 | 조회 2,544 | 2016.03.24
인식이 색깔을 바꾼다.아주 어렸을 때, 내게는 스물네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던 크레파스가 있었다. 그 중 몇 개의 색깔을 닳도록 사용하고는 했는데, 그 중 하나가 … 더보기

댓글 0 | 조회 2,450 | 2016.02.25
무뎌진 발 뒤끝의 아릿함. 침대 위에서 내려오던 내 발 뒤꿈치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옷가지들도. 방 안 가득 베어있던 담배향들도. 익숙한 손가락의 까칠함에 … 더보기

안경

댓글 0 | 조회 2,071 | 2016.02.11
오빠가 사라졌다.안경이 너무 오래도록 보이지 않아 이상한 느낌에 오빠의 방에 가보았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냄새에 비해 꽤 정갈한, 빛이 들지 않는 방이 눈에 들… 더보기

식물과 생각

댓글 0 | 조회 2,214 | 2016.01.28
8월부터, 웰링턴을 떠나 여기에 온 후 많은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고추, 애호박, 피망, 해바라기, 토마토, 가지.. 주로 먹을 것들인데, 이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보기

거미집(Ⅱ)

댓글 0 | 조회 1,963 | 2016.01.13
<<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누렇게 뜬 천장 구석에, 거미줄이 하나 쳐져 있었다. 거미줄 위에 다리가 긴 거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저 … 더보기

거미집(Ⅰ)

댓글 0 | 조회 2,207 | 2015.12.22
약 혹은 총기류를 쓰지 않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살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목을 매는 자살인 교사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투신의 방법. 노인… 더보기

욕망

댓글 0 | 조회 2,231 | 2015.12.10
사실 욕망이란 잃었을 때, 비로서 서서히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 거기까지 썼을 때, 카페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깊게 눌러쓴 검은 캡 모자, 닳아빠진 … 더보기

리더의 조건

댓글 0 | 조회 2,195 | 2015.11.26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반장이 되었다. 그 때는 반장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학급회의를 주재하고, 선생님이 없을 때 아이들을 조율하고. … 더보기

B 에게

댓글 0 | 조회 2,392 | 2015.11.12
안녕하세요. 동갑이지만, 매우 친한 사이이지만, 이번 편지에서는 말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편지를 쓸 때의 제 문체 성향 탓이니, 우리 사이가 멀어… 더보기

댓글 0 | 조회 2,051 | 2015.10.29
일어났다. 나는 푸른 약과 붉은 약을 한 알 씩 따뜻한 물과 함께 삼켜냈다. 오전 2시. 춤을 추고 싶어서, 클럽에 가기로 했다. 대충 옷을 걸치고 나와보니 이미… 더보기

댓글 0 | 조회 2,133 | 2015.10.15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어처구니없다, 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처구니 없다, 라는 것은 감정의 한 종류니까요. 제가 지금 감정이라는 것을 가질… 더보기

자존감 (A면-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화)

댓글 0 | 조회 2,157 | 2015.09.24
화가 난다. 그것을 틱낫한은 이렇게 표현했다. 온 몸 가득 독이 퍼진 것이라고. 독이 퍼진 것을 알아달라는 표현이니까, 상대방은 화난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더보기

남겨진 것들

댓글 0 | 조회 1,967 | 2015.09.09
이사 뉴질랜드에 와서 네번째 이사를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예 웰링턴이 아닌 다른 먼 지역으로 가는 일이었고, 생각보다 재미있고 힘에 부친 일이기도 했다. 처… 더보기

江(Ⅸ)

댓글 0 | 조회 2,235 | 2015.08.13
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잠이 든 다음 날 아침. 쓰레기통이 된 두 개의 배럴. 배럴 사이로 흐르는 습기와 강의 물냄새. 아침 산바람에 뒤척거리는 노란 텐트. … 더보기

江(Ⅷ)

댓글 0 | 조회 1,812 | 2015.07.29
일어났다. 4일 째. 아침. 강 위에서의 마지막 숙박지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중류에서 하류로 접어들고 있었다. 배를 타고 오는 동안, 강의 흐름은 조금씩 조… 더보기

江(Ⅶ)

댓글 0 | 조회 1,861 | 2015.07.15
짐을 모두 싣고 난 후 우리는 무릎까지 차오르는 강변의 물에 바지를 적셔가며 배에 올랐다. 강 위에서의 3일차. 하루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우리는… 더보기

江(Ⅵ)

댓글 0 | 조회 1,832 | 2015.06.24
오후 네 시. 눈을 떴다. 천둥이 치고 있었고, 하늘은 말라있었다. 정말 바짝 마른 파란 하늘 위에 구름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건조하게 붙어있었다. 오래된 페인… 더보기

江(Ⅴ)

댓글 0 | 조회 1,930 | 2015.06.09
다음 날 아침. 아직도 마르지 않은 축축한 항해용(?) 옷을 입고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평상 위에 올려놓았던 종이컵의 밥이 사라졌다. 은박지가 제멋대로 뜯어져 … 더보기

작업기(Ⅵ)- 발매 그리고 사기

댓글 0 | 조회 2,351 | 2015.05.27
초심을 찾기까지 아무런 곡을 작업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12월, 1월, 2월이 지나갔다. 긴 크리스마스 휴가와 왕가누이 여행, 부모님의 방문 등 그 사이에 … 더보기

신해철

댓글 0 | 조회 1,946 | 2015.05.13
오랜만에 글을 쓴다. 뭔가 오랜만이라는 느낌이다. 시리즈 아닌 시리즈물을 쓰다보니 어렵다. 분량조절에 실패한 탓에 자꾸 사골처럼 우려먹는 기분이다. 사골은 그래도… 더보기

작업기(Ⅴ)-패

댓글 0 | 조회 1,917 | 2015.04.30
우선 너무 기쁜 나머지 바로 답 메일을 보냈다. 보낸 답장은 내가 찍었던 단편영화가 첨부된 채였다. 그 의도는 “나는 이러이러하게 쓸모가 있으니 투자 대비 괜찮을… 더보기

江(Ⅳ)

댓글 0 | 조회 2,010 | 2015.04.15
그렇게 세 번째 뒤집혔던 배를 타고 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뒤집어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찰나에 첫 캠프사이트 Ohinepane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