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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 오다, 하다, 피다......, 등의 동사들은 감, 옴, 함, 핌...등으로 ‘다’를 빼고 미음(ㅁ) 받침을 붙이면 동사와 같은 뜻의 명사가 된다. 헌데 ‘덜다’라는 동사를 명사형으로 만들려니 리을(ㄹ)이라는 받침 때문인지 한 글자의 명사를 만들 수 없었다. 리을(ㄹ) 받침과 ‘다’를 빼고 미음(ㅁ) 받침을 붙이니 ‘덤’이 되었는데, 더 적게 만드는 ‘덜다’와 더 얹어 주는 ‘덤’의 관계가 오묘했다.
‘덜다’와 ‘덤’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비워야 채워진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채우기 위해서 비우는 것이 바로 덤을 주는 것이리라. 덤을 주면 그만큼 손해인 것 같지만, 그 덤 때문에 다시 찾는 손님들이 있지 않은가?
커피솝에서 10잔째 커피를 free로 주는 것 또한 덤이지 않은가? 꽈배기 장사를 하면서 free쿠폰 카드를 만들어 놓고 원하는 고객들한테 도장을 찍어 주니, 꼬박꼬박 도장을 받아 free 꽈배기를 챙겨가는 단골들이 생기게 되었다.
한국인들을 만나면 free쿠폰과 상관없이 덤을 주곤 하지만, free쿠폰의 도장을 꽉 채워 꽈배기 한 봉투를 더 가져가는 손님들을 보면 고맙기 그지없다. 그 작은 덤 덕분에 손님이 늘어나며 상인과 손님과의 정이 돈독해지는 것을 체험하면서 비우면 비울수록 더 채워진다는 속담이 진리임을 확인했다.
팔고 남은 꽈배기들을 주위 상인들한테 나눠주고 있는데, 물물교환을 하고 싶어서 나눠준 것이 아니라 어차피 남는 것이니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으로 준 것인데, 꽃, 야채, 과일......, 하물며 그 비싼 메이플 시럽까지도 선물로 받게 되었다. 토요일 단 몇 시간의 장사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을 통해 누리는 풍요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그 풍요가 어디 물질적인 풍요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겠는가? 물질의 풍요와 비교할 수 없는 마음의 풍요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토요마켓에 내가 나가지 않은지는 꽤 된다. 토요일마다 스시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새벽에 꽈배기를 만드는 일만 도와주고, 남편이 혼자서 판매를 한다. 워낙 숫기가 없는 남편인데다 백내장 때문에 시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남편이라서 혼자 장사하기엔 불편한 점이 많지만, 가족 모두 다 바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을 제대로 잘 알아보지 못하여 먼저 인사를 할 수 없는 처지인데다 장사수완도 좋지 못하여 판매에 지장이 있긴 하지만, 워낙 독자적인 상품인데다 쿠폰을 비롯하여 여러모로 준비를 해 둔 덕분에 그럭저럭 단골이 늘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명문대학을 나와 화이트칼라로 지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체험 속에서 인생 수업을 해야만 할 상황이다. 남편이 뉴질랜드에 온 지 13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커 보인다. 내가 보기엔 50보 100보로 보이건만, 내 생각과 그의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차를 폐차 시킬 정도로 큰 사고를 겪고 자신의 눈이 운전할 수 없는 눈이란 것을 확인하고 나서 무척 암담했을 것이다. 워낙 과묵한 성격이라서 표현을 하지 않지만, 행동거지가 의욕을 잃은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내가 죽다 살아나고 나서 렌즈를 벗고 당달봉사로 지내면서도 요리를 하고 꽈배기 모양을 만들어 튀기고, 글을 쓰면서 안경을 쓰게 된 걸 보았기에 마음의 동요가 있었겠지만,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매일 커튼을 내려놓은 컴컴한 방에 혼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면서 지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아무런 말없이 그를 지켜보다가 한 번씩 큰소리를 낸다. 장님들도 씩씩하게 잘 사는데, 나머지 한쪽 눈만 더 수술을 하면 지금보다 훨씬 상황이 좋아질 건데, 세상 다 산 사람처럼 구느냐고 말이다. 그런 말을 하고 나면 내 속이 더 불편하고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남편은 지금 내일 팔 꽈배기 반죽을 하고 있다. 반죽 솜씨가 제법 좋아서 어디다 내 놓아도 손색이 없다. 이런 솜씨로 꽈배기를 만들어 판매를 하기에 미숙한 장사수완으로도 충분히 노동한 만큼의 대가는 얻고 있다.
장사 수완은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나는 것이고, 고객들과의 정도 소록소록 생겨나는 것이고, 그저 욕심 없이 살다보면 좋은 날은 꼭 있기 마련이다.
덤으로 사는 인생, 팍팍 덤을 주고받으면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만을 소원한다.
감사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