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기억하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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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사진 - 기억하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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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것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내가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납작하고 평면적인 이미지로 나 자신을 보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같은 이유에서 초상화도 싫어한다. 가끔 그림을 그리긴 하지만 자화상도 결코 그리지 않는다.

 

왜 내 얼굴을 보는 것이 그렇게나 싫은 지는 알 수 없다. 거울은 괜찮은데, 어째서 그 외의 다른 매체는 치가 떨리는지.

 

그래서일까, 내가 10대 이후로 찍은 사진은 거의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십대 중반쯤, 그러니까 사춘기가 시작되어 외모에 불필요하리만치 예민해지기 시작했던 시점 이후로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가족 사진이나 졸업 사진 몇 장 - 굳이 더한다면 여권 사진도 포함해서 - 외에는 없다시피 하다. 흔히들 말하는 셀카도 절대 찍지 않는다. 사진으로 찍혀 나온 내 얼굴을 보는 것이 끔찍하다.

굳이 못생기게 보여서는 아니다. 물론 난 ‘사진빨’을 전혀 받지 못하고, 그래서 출력된 내 얼굴을 보면 하나같이 넙데데하고 밋밋해 보이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아마도 부끄러운 것이리라. 거울이 아닌, 그러니까, 나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개될 수 있는 만일의 이 이미지가.

 

자신감 있게 셀카를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존경스러워진다. 저렇게 거리낌 없이 자신의 얼굴을 오만 곳에 도배할 수 있다니. 만용에 가깝기까지 한 용기다. 그들의 당당함이 부러워진다.

 

오스트리아의 황후였던 엘리자베트(Elisabeth)는 나이가 들 수록 사진을 찍히는 것을 꺼려했다고 하는데,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러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한다는 사실을. 그것이 늙는 것이든, 또는 다른 이유에서건 간에.

 

물론 내가 찍히지만 않는다면야 나는 사진에 완벽하게 평범히 반응한다. 심지어 좋아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나는 풍경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그래서 항상 핸드폰의 카메라 기능을 가장 앞에 둔다. 특히 하늘을 찍는 것을 좋아해서 하늘 사진만 가득한 폴더가 따로 있을 정도다. 파란 하늘, 저녁 노을 때 오색찬란한 하늘, 먹구름 앞의 무지개. 그 외에도 길을 걷다가 예쁜 구름이나 꽃을 보면 무조건 핸드폰부터 꺼내고 보고, 예의 여성들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엔 반드시 몇 장 찍어 추억으로 보관한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잊고 싶지 않으니까’ 겠지. 공감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찰나의 편린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뭐든지 금방 왜곡하고, 잊어버리고 만다.

 

그런 연유에서 굳이 스스로의 얼굴을 찍는 것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내 얼굴은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언제나 이곳에, 내가 볼 수 있는 곳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시간이나 사건사고로 인해 변한다 해도 그것이 내 얼굴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으므로.

 

나 또한 셀카를 올리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떤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젊었을 적의 싱그러움(?)을 기억하고 싶지 않겠냐고, 그러니 사진을 많이 찍어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거기에 동의하면서도 공감은 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것 또한 단순히, 현재의 젊음을 내가 맹신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영원하지 못할 것임은 알면서도, 그리고 사진은 젊음과 달리 불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진을 찍히는 것에 거부감을 좀 덜 가지게 되면 좋을 텐데, 현실은 카메라만 보면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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