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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각형의 방, 코르크(Cork)의 정체

피터 황 0 2,230 2016.02.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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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오래될 수록 좋다는 생각이 보편적이다. 숙성이 되면서 풍미가 풍부해지는 와인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와인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코르크(Cork)는 와인이 개봉되는 순간까지 와인의 맛과 향을 지켜주는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코르크 마개에 와인을 마신 날짜와 장소, 함께 마신 사람을 적어서 보관하며 추억하기도 한다. 현재는 코르크 마개 대신 스크류 형태의 병 뚜껑(Screw Caps)이 등장했지만 코르크의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다. 이것은 실용성보다는 분위기와 멋을 중요시하는 와인의 문화 때문일 것이다. 

 

와인이 시간이 지날수록 코르크를 통해서 숨을 쉬면서 숙성되고 진화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병 속의 와인은 엄밀히 말하면 질식상태다. 거의 극소량의 산소만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르크는 재질 자체에 육각형 모양의 구멍이 많아 미량의 산소가 들어갈 수 있는데 이것이 와인 숙성을 돕는 역할을 한다. 코르크를 통해 들어가는 극소량의 산소는 병 속에 존재하는 산소와 함께 와인을 서서히 숙성시켜 색깔이나 맛, 향을 조화롭고 원숙하게 만들어 준다. 결국 와인은 코르크로 숨이 막힌 채 병 안에서 극소량의 산소로 숨을 쉬며 기나긴 세월 성숙의 시간을 갖고 변신 후에 우리와 마주한다는 얘기다.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가 코르크 마개를 건네주고 확인을 부탁하면 냄새도 맡아봐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젖어 있는 쪽이 말랑말랑한지 눌러보는 게 현명하다. 세워서 오랫동안 보관했다면 코르크가 딱딱하게 굳어있을 것이고 코르크의 틈이 벌어져 산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운송하면서 섭씨 60도를 넘으면 끓어 넘친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럴 땐 빙빙 돌아가도록 되어 있는 병목의 PVC호일이 딱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고 와인의 양도 확연히 줄어있다. 잘 보관된 좋은 와인은 코르크가 도장처럼 끝부분이 고르게 젖어 있는 것이다. 

 

코르크 나무는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굴피나무와 같이 껍질을 벗기면 다시 그 층이 형성되는 참나무 계통의 나무다. 수령이 40년 이상 된 나무에서 10년 간격으로 껍질을 벗겨 수확하는 데 이를 바크(Bark)라고 한다. 바크를 몇 년 동안 두었다가 조직이 수축하고 성분이 균일하게 되면 삶아서 탄력성을 높인다. 그 후 시원한 곳에 건조시켜 일정한 크기로 잘라 펀칭을 해서 코르크 마개를 만든다. 보통 100Kg의 바크를 가공해서 30Kg의 코르크를 만들 수 있다. 

 

코르크 마개가 와인에 쓰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경으로 샴페인을 발명한 프랑스의 돔 페리뇽 신부가 처음 만들어 썼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전에는 와인을 항아리나 가죽부대에 넣어 보관했다고 한다. 코르크에는 속이 비어있는 벌집과 같은 육각형의 방이 1입방 센티미터의 공간에 수천만 개가 들어있고 1입방 인치 속에 2억 개의 세포들이 수지 막에 쌓인 채 밀집되어 있다. 부피의 절반이 공기로 차있어 매우 가볍고 연하며 탄력성이 좋아 압력을 가해도 금방 원상복구가 된다. 그러나 코르크는 표면에 있는 작은 구멍에 곰팡이와 같은 해로운 미생물이 침투하거나 먼지 등이 들어가서 와인에 말썽을 일으키는 수도 있다. 그래서 코르크는 육각형 방의 크기와 그 방이 많고 적음에 따라 품질이 좌우된다. 

 

와인 병을 세워서 보관하면 코르크가 건조해지면서 바깥쪽 공기가 쉽게 들어와 와인의 질에 변화를 주게 된다. 그러나 와인 병을 눕히거나 거꾸로 두면 코르크가 와인과 접촉하여 팽창하므로 공기가 들락거릴 틈을 주지 않는다. 사실 공기유통은 거의 불가능하다. 산소는 그 양이 극소량(1년에 0.02-0.03입방 센티미터)이기 때문에 병 숙성에 관여하지 못한다. 그래서 와인은 항상 눕혀서 시원한 곳에 보관하여야 한다. 와인을 오랫동안 보관 한다고 해서 더 좋아질 것은 없다. 그렇지만 알코올 농도가 높고 묵직한 레드 와인은 세월이 지나면서 미세한 변화를 일으켜 서서히 맛이 부드러워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와인 자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한 것이지 결코 코르크가 숨쉬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코르크를 사용한 이유가 와인을 숨쉬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와인을 흡수하면 팽창하게 되어 더욱 견고히 입구를 막아 줄 수 있는 코르크의 물리적 특성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와인이 병 외부와 내통하며 숨을 쉬고 있다기 보다는 질식 상태로 잠을 자고 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 이유는 코르크 조직이 물이나 공기를 통과시키기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와인은 일단 병 속에 들어가면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다. 코르크를 통해 공기가 들락거린다면 와인은 본래의 맛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마시다가 남긴 와인을 며칠이 지난 후에 마셔본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바깥으로부터 유입된 산소가 와인을 급격히 산화시켜 오래 두면 식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와인은 개봉하고 나서 잠든 와인을 깨웠다면(디캔팅, Decanting)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모두 마시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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