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은 사랑 받은 여자의 일생을 상징한다.
그런 말을 읽은 것이 에쿠니 가오리였던가, 아니면 다른 작가의 책이었던가. 출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인상에 깊게 남은 말이어서 기억하고 있다. 사랑의 가늠법이 보석만 있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현대의 물질주의적인 기준으론)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확실히 눈에 띄는 ‘사랑’의 표현법임직도 하니까.
그렇지만 굳이 보석과 사랑의 연관 관계를 떠나서 값비싸고, 아름답고, 희귀한 것으로 자신을 꾸미는 것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뉴질랜드에선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보석을 착용한다. 괜히 과시한다거나, 야해 보일까 싶은 두려움 한 점 없이 반지를 겹겹이 끼고, 목걸이를 마치 한겨울의 목도리처럼 두른다. 반짝반짝해서 (문자 그대로) 눈이 부시고, 또 동시에 그런 사람들을 보면 경외감에 (은유적으로) 반짝반짝해 보인다.
저렇게, 저렇게까지도 ‘나는 사랑 받는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니. ‘내게는 기리고픈 추억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남에게 사랑 받고 또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라고. 그렇지 않은가. 보석은 무조건 남에게서만 선물 받아야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내가 마음에 드는 것, 갖고 싶은 것을 직접 사서 하고 다닐 수 있으니까. 그래서 재력의 과시라기보단 애정의 과시로 보이고, 그것이 조금은 부럽고 아주 많이 존경스러워진다.
사람을 볼 때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장신구를 먼저 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장신구를 눈여겨본다. 거의 보통은 화려한 쪽으로 먼저 눈이 가지만, 대체로 제일 눈에 띄는 건 결혼 반지이다. 사람들의 결혼 반지를 구경하는 건 재미 있다. 단순하게 금으로만 만들어진 전통적인 스타일에서부터 복잡하게 꼬인 무늬, 작은 보석이 박힌 은반지 등. 내 부모님은 결혼을 하고 자식들까지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엔 결코 결혼 반지를 끼지 않았다. 잃어버릴까봐, 그리고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더욱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까지--아니, 그 반지의 존재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이제는 숨쉬듯 자연스럽게 그것을 끼고 있는 것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척 오빠와 언니도 볼 때마다 결혼 반지를 항상 끼고 있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에 또 호기심을 느낀다.
가끔은 코나 입술, 눈썹 언저리에 큼지막한 핀이나 고리를 매단 사람들도 있다. 가장 먼저 드는 감상은, 무겁지 않을까? 이다. 그 다음은 무진장 아프겠다, 정도. 가끔은 말을 하느라 입을 벌리면 혀 위에서 피어싱이 반짝이는 사람도 있다. 대단하다! 아픈 것도 둘째 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텐데, 그 배고픔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를 그렇게 장식하다니. 어마어마한 헌신이 아닐 수 없다.
콧잔등에서 반짝이는 피어싱은 볼 때마다 아름다워서 - 비록 내가 실제로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 매혹되고 만다. 코에 피어싱을 한 사람은 보통 인도계 여성들이 많은데, 짙은 피부색 위에서 색색깔로 빛나는 작은 보석은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그러다보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고통을 감내할 만한 가치의 아름다움이란 것이 진짜로 있기는 있구나.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장신구 착용의 최고봉은 역시 할머니들이다. 그분들은 정말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들에게 목걸이며 반지, 팔찌, 귀걸이 등은 훈장인 셈이다. 그렇기에 장신구를 많이 한 할머니들을 보면 저절로 경탄의 인사를 하고 싶어진다. 비록 색이 바래거나 진품이 아닐지라도, 장군의 메달처럼 그들이 거친 삶의 계단을 보는 것 같아서.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자신 있게, 불편함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보석과 자기 장식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