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위해 필수적인 것 하나: 요리. 요리를 잘 하냐고 묻느냐면 그저 그렇다고 답한다.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굳이 소질이 있지는 않아도 그냥 저냥 하는 수준이라도 좋아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것 또한 개개인이 허락 받는 작은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못해서 정말 취미를 못 붙이는 것보단 나으니까.
물론 내게 요리를 할지 아니면 사먹을지를 묻는다면 (재정이 허락하는 한에서) 사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편하니까. 요리를 시작하자면 재료를 손질해야 하고, 그릇에 담고, 먹고, 치워야 하는 모든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득이한 노동을 거쳐야 하는 대신 외식을 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그렇지만 가끔은, 그저 그 노동을 위해 요리를 하기도 한다. 할 줄 아는 메뉴는 그다지 없지만 칼로 썰고 손질하고, 불 조절을 하며 끓이는 일련의 행동은, 어쩌면 재미나 즐거움에 가까울 것이다. 그 재미는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스릴이나 게임을 할 때 느껴지는 쾌감과는 다르다. 그보단 좀 더 차분하고, 정돈된 종류의 즐거움이다. 무엇보다 그냥 스위치를 꺼버리면 모든 게 종료되는 영화나 게임과는 달리 좀 더 생사(?)가 걸린 일이니까. 잘하든 못하든 그 뒷처리를 전부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는 또 나름대로 모험심이랄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어서 종종 이것저것 만들어보려고는 하는데, 그러면 부엌의 진짜 주인인 엄마가 싫어하기에 아직까지 내 레퍼토리는 그다지 넓지 않다. 끽해야 찌개 두어 종류, 반찬도 간단한 것 몇 가지. 이도 저도 안 되면 그냥 밥에다 넣고 비벼먹는 것 서너 개. 그것도 요리라면 요리이지 않은가. ‘순서대로 재료를 정량대로 넣고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요리의 정의라면.
작년에는 고추장과 참치를 밥에 비벼먹는 것에 꽂혀서 기회가 되는 대로 그렇게 해먹었는데 올해 꽂힌 요리도 그것과 비슷하다. 날계란을 밥에 비벼먹는 것이다. 물론 그대로는 아니고, 간장과 참기름도 넣어서. 간장에 버터나 마가린을 넣고 밥을 비벼먹는 요리도 있다고 하니 사람들의 식성은 궁극적으로는 다 비슷비슷하지 않나 싶다. 짠맛과 약간의 단맛이라던지, 달콤함과 매콤함의 콤비라던지. 맛의 조화는 기본적으로 대부분 다를 것 없고 그것을 어떤 재료에 어떻게 적용하는지의 문제니까.
맛있는 요리라면 사양할 것 없겠지만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다면 그마저도 귀찮아지고 마는 건 나의 성격적 결함일 것이다. 남에게 그런 수고를 끼치게 하는 것도 싫고, 내가 해먹자니 귀찮아서 결국은 그냥 사먹게 되는 식으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서도 ‘그럼 먹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은 결코 안 한다. 그러기엔 먹는 것을 (누구나 그렇듯)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베이킹도 좋아하긴 하지만 요리와는 별개라고 생각하니 여기에는 포함하지 않겠다. 베이킹은 보통 후식이나 식사 대용으로 먹을 것을 만드는 것이므로, 매일 하게 되는 요리(cooking)와는 다르다 (물론 그 취지만 틀리지 뭔가 먹을 것을 만든다는 점에선 같아도). 비슷한 맥락에서 레몬청 만들기나 상그리아 만들기 같은 것도 제외. 단, 라면 끓이는 것은 요리로 인정하고 있다. 라면도 우습게 볼 것이 아닌 것이, 양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거나 하면 단번에 실패해버리고, 의외로 제대로 만들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절대 내가 제일 자신 있는 ‘요리’가 라면 끓이기라서가 아니다. 이 점만큼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요리를 아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할 줄은 안다. 중요한 건 그 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