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박종배
정석현
정동희
한일수
정윤성
크리스티나 리
Shean Shim
송영림
김준
엔젤라 김
오클랜드 문학회
박현득
박명윤
김영안
Mina Yang
써니 림
여디디야
강명화
새움터
수선재
휴람
봉원곤
마리리
김임수
이윤수
조성현
박기태
유영준
성태용
김철환
피터 황
Jane Jo
조석증
신지수
오즈커리어
Jessica Phuang
김수동
박승욱경관
최성길
동진
이동온
김지향
이현숙
한 얼
빡 늘
CruisePro

남겨진 것들

박지원 0 980 2015.09.09 09:52
이사

뉴질랜드에 와서 네번째 이사를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예 웰링턴이 아닌 다른 먼 지역으로 가는 일이었고, 생각보다 재미있고 힘에 부친 일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렌트라는 것을 해보았고, 인터넷과 전기 등도 계약해보았다. 

실은 급한 이사였다. 직장에서의 좋지 않은 일로 인해- 아, 이것은 부당한 일이다, 하는 생각에 웰링턴을 거의 도망치듯 떠났다. 

인생에서 도망을 참 많이 친 것 같다. 나는 내가 받는 대우가 부당하다고 생각되거나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도망을 쳐 버린다. 아니, 도망이 아닐 것이라고 내 마음을 스스로 다잡아본다. 돌이켜보면, 내 이사의 목적지는 언제나 한 가지였다. “행복.” 즉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나를 이끌어가는 여행같은 삶. 그것이 내가 뉴질랜드에서 이사를 했던 이유들이었고- 이번 이사는 감정의 진폭도, 물리적인 진폭도 컸었기에 비교적 힘들었던 것뿐이었다.

어디 사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자문하는 것. 이사는 그저 그것에 대한 행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행복한가. 그래서 행복해질 것인가. 다시 물어본다.


비가 오든 햇빛이 내리쬐든 풀을 뜯어먹는 양을 보면, 양이 되고 싶다. 수많은 갈래길이 아닌 커다란 초원에서, 그저 내 발 아래 모든 것들이 삶의 목적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풀을 뜯다가 잠깐 쉴 타이밍이 와도, 그들은 언제나 그들 존재의 이유 위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투명해지는 느낌으로, 그들은 나를 보고 있다. 

개가 집에 가자 재촉하면 저녁해가 붉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집으로 향한다.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려는 목적을 향해 하얗게 전진해나간다. 그들처럼, 삶의 모든 공간이 목적으로 차있으면 좋겠다. 이것이 비록 나의 시선일지라도, 그들의 시선 한 줌만이라도 닮고 싶다. 

역할극

한 사람이 있었다. 대부분이 그렇듯, 자신의 인생이 사회에서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이 평범한 사람이 한 역할극에 캐스팅되었다. 

다만 문제점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배역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전형적인 미스캐스팅이었다. 눈빛과 말투 등을 허세로 무장하여 가장된 자신감을 어필하려 했지만, 너무도 어색한 나머지 관객들의 표정에선 그저 웃음만이 흘러나왔다. 부자연스러운 말투와 표정,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 역할과 본래 캐릭터 사이의 간극을 적절하게 조합하지 못한, 자기모순에 빠진 평범한 사람이 연기에 몰입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마치 지금은 없어진 프로그램 <119 구조대> 에 나오는 70대 어르신의 괴상한 인터뷰같았다. 그렇다면 70대 어르신이 그러한 인터뷰를 매일 한다고 생각해보자. 웃기는 것도 웃기는 것일 테지만, 그 70대 어르신은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그러나 70대 어르신처럼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이들은 부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 애쓰며 “어떻게 살 것인가”의 단면을 고민하기 보다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초 단위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는 결국 번 아웃과 우울증 증세를 유발하며, 끝내는 아무 생각없이 자신의 부자연스러움에 지쳐서 자신의 인생을 끝장낼 것이다.
 
삶이란 분명 역할극의 부분도 있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가 관건이다. 만약-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역할극을 해야할 상황에 놓여있다면, 자연스럽다고 믿을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계속해서 의심을 해야 한다. 역할극과 자연스러움의 간극이 좁혀졌을 때- 행복의 초점 또한 조금씩 선명해질 것이다.  

남겨진 것들

목적을 뜯어먹으며 사는 양보다도 못한 삶이란 얼마나 불행한 인생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신적 이사를 끊임없이 갈구하지 못하는 삶이란 얼마나 외로운가.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플러스 광고

조앤제이 & 조대형 회계사/세무사
이민 비자전문 컨설팅 회계 세무 세무신고 회계사 GST 소득세 T. 093361155
미드와이프 김지혜
무료 산전 관리및 분만, 산후관리를 해드립니다. 와이타케레, 노스쇼어, 오클랜드 산모 환영 T. 021-248-3555
(주)웰컴뉴질랜드
뉴질랜드 여행, 북섬여행, 남섬여행, 패키지여행, 호주여행, 피지여행, 맞춤여행, 자유여행, 단체여행, 개별여행, 배낭여행, 현지여행, 호텔예약, 투어예약, 관광지 예약, 코치예약, 버스패스, 한 T. 09 302 7777

벙어리 장갑

댓글 0 | 조회 784 | 2016.05.26
너는 장갑이 싫다고 했다. 장갑이 왜 싫으냐, 물었더니 장갑은 다섯손가락 모두를 만들어야 해서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장갑이 싫은 것이 아니라 장갑을 만들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고… 더보기

치과 (Ⅱ)

댓글 0 | 조회 1,111 | 2016.05.11
N의 동동거리던 발이 움직임을 멈춘 것은 의사가 주사바늘을 N의 입 속에서 뺀 이후였다. 기절했나?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지만, N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각도였다. 의사는 나갔고… 더보기

치과 (Ⅰ)

댓글 0 | 조회 2,509 | 2016.04.29
N과 함께 밥을 먹는데, N이 요즘 따라 자꾸 볼살을 씹는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양치를 하러 갔었던 N이 달려와 플래시를 켠 핸드폰을 건냈다. 사랑니가 났다고 했다… 더보기

파랑과 검정

댓글 0 | 조회 1,622 | 2016.03.24
인식이 색깔을 바꾼다.아주 어렸을 때, 내게는 스물네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던 크레파스가 있었다. 그 중 몇 개의 색깔을 닳도록 사용하고는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파란색이었다. 내 … 더보기

댓글 0 | 조회 1,344 | 2016.02.25
무뎌진 발 뒤끝의 아릿함. 침대 위에서 내려오던 내 발 뒤꿈치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옷가지들도. 방 안 가득 베어있던 담배향들도. 익숙한 손가락의 까칠함에 화들짝 고개를 내저… 더보기

안경

댓글 0 | 조회 1,087 | 2016.02.11
오빠가 사라졌다.안경이 너무 오래도록 보이지 않아 이상한 느낌에 오빠의 방에 가보았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냄새에 비해 꽤 정갈한, 빛이 들지 않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의 방… 더보기

식물과 생각

댓글 0 | 조회 1,296 | 2016.01.28
8월부터, 웰링턴을 떠나 여기에 온 후 많은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고추, 애호박, 피망, 해바라기, 토마토, 가지.. 주로 먹을 것들인데, 이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보고자 하는 … 더보기

거미집(Ⅱ)

댓글 0 | 조회 901 | 2016.01.13
<<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누렇게 뜬 천장 구석에, 거미줄이 하나 쳐져 있었다. 거미줄 위에 다리가 긴 거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저 거미는 왜 저기 있… 더보기

거미집(Ⅰ)

댓글 0 | 조회 1,166 | 2015.12.22
약 혹은 총기류를 쓰지 않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살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목을 매는 자살인 교사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투신의 방법. 노인은 그 두 가지 중… 더보기

욕망

댓글 0 | 조회 1,247 | 2015.12.10
사실 욕망이란 잃었을 때, 비로서 서서히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 거기까지 썼을 때, 카페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깊게 눌러쓴 검은 캡 모자, 닳아빠진 갈색가죽점퍼를 입고… 더보기

리더의 조건

댓글 0 | 조회 1,115 | 2015.11.26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반장이 되었다. 그 때는 반장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학급회의를 주재하고, 선생님이 없을 때 아이들을 조율하고. 그래서 기어코 선거… 더보기

B 에게

댓글 0 | 조회 1,110 | 2015.11.12
안녕하세요. 동갑이지만, 매우 친한 사이이지만, 이번 편지에서는 말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편지를 쓸 때의 제 문체 성향 탓이니, 우리 사이가 멀어졌다거나, 그렇게는… 더보기

댓글 0 | 조회 1,070 | 2015.10.29
일어났다. 나는 푸른 약과 붉은 약을 한 알 씩 따뜻한 물과 함께 삼켜냈다. 오전 2시. 춤을 추고 싶어서, 클럽에 가기로 했다. 대충 옷을 걸치고 나와보니 이미 클럽 앞은 손목 … 더보기

댓글 0 | 조회 1,108 | 2015.10.15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어처구니없다, 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처구니 없다, 라는 것은 감정의 한 종류니까요. 제가 지금 감정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상태일까… 더보기

자존감 (A면-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화)

댓글 0 | 조회 1,173 | 2015.09.24
화가 난다. 그것을 틱낫한은 이렇게 표현했다. 온 몸 가득 독이 퍼진 것이라고. 독이 퍼진 것을 알아달라는 표현이니까, 상대방은 화난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고. 나는 그것이 … 더보기

현재 남겨진 것들

댓글 0 | 조회 981 | 2015.09.09
이사 뉴질랜드에 와서 네번째 이사를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예 웰링턴이 아닌 다른 먼 지역으로 가는 일이었고, 생각보다 재미있고 힘에 부친 일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렌트라는 것… 더보기

江(Ⅸ)

댓글 0 | 조회 1,135 | 2015.08.13
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잠이 든 다음 날 아침. 쓰레기통이 된 두 개의 배럴. 배럴 사이로 흐르는 습기와 강의 물냄새. 아침 산바람에 뒤척거리는 노란 텐트. N이 이를 닦자며 … 더보기

江(Ⅷ)

댓글 0 | 조회 933 | 2015.07.29
일어났다. 4일 째. 아침. 강 위에서의 마지막 숙박지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중류에서 하류로 접어들고 있었다. 배를 타고 오는 동안, 강의 흐름은 조금씩 조금씩 느려졌고, 선… 더보기

江(Ⅶ)

댓글 0 | 조회 985 | 2015.07.15
짐을 모두 싣고 난 후 우리는 무릎까지 차오르는 강변의 물에 바지를 적셔가며 배에 올랐다. 강 위에서의 3일차. 하루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우리는 배가 있는데 왜 … 더보기

江(Ⅵ)

댓글 0 | 조회 968 | 2015.06.24
오후 네 시. 눈을 떴다. 천둥이 치고 있었고, 하늘은 말라있었다. 정말 바짝 마른 파란 하늘 위에 구름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건조하게 붙어있었다. 오래된 페인트가 갈라지듯, 쿵… 더보기

江(Ⅴ)

댓글 0 | 조회 1,040 | 2015.06.09
다음 날 아침. 아직도 마르지 않은 축축한 항해용(?) 옷을 입고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평상 위에 올려놓았던 종이컵의 밥이 사라졌다. 은박지가 제멋대로 뜯어져 있었고, 누군가 핥… 더보기

작업기(Ⅵ)- 발매 그리고 사기

댓글 0 | 조회 1,110 | 2015.05.27
초심을 찾기까지 아무런 곡을 작업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12월, 1월, 2월이 지나갔다. 긴 크리스마스 휴가와 왕가누이 여행, 부모님의 방문 등 그 사이에 많고 작은 일들이 … 더보기

신해철

댓글 0 | 조회 1,106 | 2015.05.13
오랜만에 글을 쓴다. 뭔가 오랜만이라는 느낌이다. 시리즈 아닌 시리즈물을 쓰다보니 어렵다. 분량조절에 실패한 탓에 자꾸 사골처럼 우려먹는 기분이다. 사골은 그래도 오래 우린 맛이라… 더보기

작업기(Ⅴ)-패

댓글 0 | 조회 971 | 2015.04.30
우선 너무 기쁜 나머지 바로 답 메일을 보냈다. 보낸 답장은 내가 찍었던 단편영화가 첨부된 채였다. 그 의도는 “나는 이러이러하게 쓸모가 있으니 투자 대비 괜찮을 겁니다”의 의미였… 더보기

江(Ⅳ)

댓글 0 | 조회 1,083 | 2015.04.15
그렇게 세 번째 뒤집혔던 배를 타고 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뒤집어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찰나에 첫 캠프사이트 Ohinepane가 있다는 초록색 팻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