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또는 슈퍼마켓에 갔다가 아는 사람과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매번 반갑다기보다는 당혹스럽다. 마주치는 그 한 순간만큼은 인생에서 제일 거북한 순간으로 꼽을 만큼. 상대와의 친밀도는 상관 없다. 그저, 얼굴을 아는 사람 - 또는 어렴풋이 기억하는 사람 - 과 의무적으로 인사를 나눠야 하고 아는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괴로운 것 뿐이다.
살면서 몇 번을 겪어야 하는 가장 어색한 몇 분. 아, 괴로운지고.
대체 얼마나 비사교적이길래 그러는 거냐고 묻는다면 내가 매사에 그러하듯, 변명도 설명도 않을 것이다. 사람을 만나서 놀고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건 좋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만이지, 하루 종일이나 매일매일 나가서 사람들과 필요 이상으로 어울려야 한다면 진작에 소라게가 되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차라리 일을 할 때는 기계적으로 웃고 정해진 말만 대본답게 읊으면 되니까 쉽지, 그때 그때마다 ‘흥미로운(interesting)’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정말 지고 싶지 않다.
사교와 사회 활동은 어렵다.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줘야 그나마 좀 살기 편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친분을 쌓지 않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왜 사람은 교류(interaction)의 동물이어야 하는 걸까.
마주치면, 그 얼굴을 알아보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손에서 땀이 확 차오른다. 그와는 정반대로 입안은 바싹바싹 마르는데 심장은 쿵쾅거린다. 아, 눈 마주쳤다. 그럼 또 별안간 공포감이 마구 치밀어 오르고 만다. 물론 그 순간은 보통 오래 가지 않고, 그 다음엔 자연스럽게 인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간단한 안부 인사와 잡담 몇 마디, 그리고 작별 인사. 만나서 반가웠어, 또는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연락 좀 하고 지내, 같은. 그런 말을 들으면 대개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수시로 연락을 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구태여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데, 이렇게 바깥에서 보면 아는 척을 해야 하는 의무적 지인 사이인 건 괴롭기 짝이 없다고.
어지간해선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성격 탓이다. 나는 잘 살고 있고, 그러니 남들도 잘 살고 있으리라 대충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끔 그게 아니라고 하면 딱히 위로 외에 뭘 해줘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위로라고 해봤자 시작부터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으니 오히려 그냥 인사 치레로만 들릴까봐 입을 다물게 된다. 뭐든지 - 특히 위로 같이 예민하고, 극도의 섬세함을 요구하는 언행은 - 진심이 들어가지 않으면 진짜처럼 느껴지지 못할 만큼 연기력이 어마어마하게 형편없다는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런 것은 싫기 때문이다. 겉치레만으로, 오로지 의무감만으로 보여줘야 하는 예의 같은 것은. 그냥 마주쳐서 하는 인사와 진심을 담아, 온 힘을 다해 달래줘야 하는 위로 같은 건 확연히 다르니까.
그냥저냥 좋게 아는 사이인 지인에게도 이런데, 싫어하는 사람이나 거북한 사람과 마주쳐 버렸다면 더더욱 최악이다. 더더군다나 그 사람들이 정작 나를 좋게 기억하고 있다면 그만큼 어색하고 궁지에 몰리는 것도 없지 싶다. 억지로 웃는 척, 반가운 척을 해야 한다는 건.
예를 들자면 전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의 상사를 만나는 것! 그야말로 모든 이들의 악몽이라고 감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실제로 이걸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으아. 으아.)
그러니,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길을 걷다 나를 봤을 때, 못 본 척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려준다면 감사하겠다. 나도 그럴 테니까.